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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대원각을 기증하고 받은 것은 법명과 염주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2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상사는 요정을 운영해서 큰돈을 번 할머니(본명 김영한)가 1996년에 법정 스님에게 요정을 기부해서 개조한 절이다. 그녀는 80세 때에 7,000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여 동이 있는 한옥 요정 대원각(부동산 시가 1천억 원 상당)을 법정 스님에게 수행 도량으로 써달라며 기증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집안이 몰락하자 생계를 위하여 부실한 신랑에게 15살에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만 남편이 우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나고 그녀는 이듬해 진향(眞香)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조선 권번(일종의 기생조합)에서 전통적인 기생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였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때에 서울의 이름난 한량들이 만나려고 애태우던 유명한 기생이었다. 글재주가 있는 그녀는 문학잡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문단에 등단한 뒤 일본 유학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그의 문학 스승이었던 분이 독립운동과 연루되어 함흥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녀는 스승을 면회하러 함흥에 갔다. 그녀는 스승의 옥바라지를 위해 함흥에 주저앉고 생계를 위해 기방에 나갔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 부잣집에서 출생한 백석(본명은 백기행)은 일본 유학 뒤 1934년에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기자 생활과 문학 활동을 함께 하다가 1936년에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어느 날 동료들과 요정에서 회식하였는데, 그녀가 기방에 나온 첫날 백석을 만나게 된다.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백석은 술이 몇 배 돌자,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서울로 도주한 뒤 백석은 다시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게 된다.

 

그들은 꿈같은 시간을 보내었으나 완고했던 백석의 부친은 이들의 사랑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백석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고향에서 세 번이나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르지만, 매번 도망쳐서 그녀에게 되돌아간다. 그녀 또한 백석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뿌리치려고 세 번이나 도망치지만 백석을 떠나지 못한다.

 

어느 날 백석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자야는 이태백이 수 자리(국경을 지키던 일) 간 낭군을 그리는 자야라는 여인의 심회를 읊은 시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따왔다. 백석은 그녀와 3년 동안 동거하며 ‘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등의 시편들을 선사했다. 어느 날 백석은 그녀와 함께 만주로 도망갈 것을 제안하나 그녀는 따라가지 못한다. 홀로 만주로 건너간 백석은 그 뒤 생사조차 알 길이 없게 된다.

 

광복이 된 뒤 그녀는 서울에 살면서 백석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홀로 살면서 삼십 대 후반의 만학도로 1953년에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이름을 김숙으로 바꾸고 1955년에 서울 성북동의 대원각을 인수하여 요정 경영에 뛰어들었다. 대원각은 정치인과 재벌들이 자주 가는 요정으로 소문이 났다. 물론, 그녀는 돈도 많이 벌었다.

 

1987년 영남대의 한 국문학 교수가 백석의 잊힌 시들을 발굴하여 《백석시선집》이라는 책을 펴냈다. 월북시인이었기 때문에 숨겨졌던 백석의 시가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평론가 백철은 ‘소월에 버금가는 시인’이라고 백석을 높이 평가했다.

 

 

책이 출판된 지, 열흘쯤 지나 영남대 교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첫 느낌에도 매우 단정하고 기품 있는 할머니의 음성이었다. 그녀는 백석 시인과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한번 만나기를 청했다. 당장에 상경한 영남대 교수를 만난 그녀는 자기가 백석의 시에 나오는 연인임을 고백하고 백석과의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 국문학 교수는 그녀에게 백석과의 삶을 책으로 쓸 것을 권유하였다.

 

그녀는 1995년에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자서전을 내며 《내 사랑 백석》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자서전을 펴내고 일 년 뒤에 그녀는 모든 것을 정리하였다. 그녀는 법정 스님의 수필을 좋아하는 열렬한 팬이었다. 그녀는 거절하는 스님을 졸라서 대원각을 기증하였다. 법정스님은 시주받은 대원각을 1997년에 절로 고쳐 길상사(吉祥寺)라고 이름 지었다. 그녀가 스님에게 대원각(1000억 원 상당)을 기증하고 받은 것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과 염주 한 벌이었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