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불가에서는 ‘묵언수행([默言修行)’이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을 말하는 것이지요. 말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알림 소리,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괴롭히지요. 이러한 소음공해 속에서 우리는 정작 중요한 소리를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고독을 의미하기도 하고, 깊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사치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필요하지요. 침묵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도록 도와주니까요. 침묵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제공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은 매우 중요하지요.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활동은 침묵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말이 없다고 해서 소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우리문화신문=안동립 기자] # 열하일기를 따라서, 답사 10일 차 일자 : 2025년 4월 28일(월요일) 북경공항으로 이동하여, 북경 출발~인천 도착 (10:40~13:50) 예정인 아시아나 항공 OZ332편은 관제탑 지시로 기내에서 80분을 대기한 끝에 12시 5분에 출발하여 14시 40분에 인천제1국제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답사단이 10일 동안의 강행군으로 2,390km를 달렸습니다. 단동부터 흥성고성까지는 국도로 이동했습니다. 작은 마을을 통과하다 보니 오토바이, 승용차, 농기계, 자전거, 개, 사람의 무단횡단 등으로 무질서하게 뒤엉켜 급정거와 서행을 반복하며 일정이 늦어졌고, 이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달려도 날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버스로 이동하여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창대와 장복은 5달 동안 7,620리(3,048km) 길을 짚신 신고 걸었으니,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암의 예리한 관찰력과 시대를 앞선 기록 정신에 깊은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실학을 통하여 청나라가 받아들인 서양의 과학기술과 선진 문물, 종교까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소개되어, 새로운 문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 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전번에 소개한 일본인 스나가(須永)는 김옥균의 진정한 친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은 절해 고도 오가사와라 섬에서 인편으로 스나가에게 붓글씨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곁들였다. 「小笠原島夏日、為試病腕、寄贈知我者」(오가사와라 섬에서 여름날, 병든 팔을 시험해보기 위해 ‘나를 아는 이’에게 보낸다.) 김옥균은 스나가를 ‘나를 아는 이’이라는 뜻의 ‘知我者’(아지자)라 불렀다. 이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시경(詩経)》에 나오는 것인데 시경에는 이 단어에 이어서 「謂我心憂」(위아심우: 내 마음을 걱정하다)가 나온다. 스나가의 일기에는 오가사와라 고도에서 보낸 김옥균의 고통이 담겨 있다. 김옥균을 방문하고 돌아온 유혁로가 전해준 김옥균의 실황이다. “위장병과 류마티즘은 아직 낫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배앓이까지 앓고 있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개미와 독충, 뱀의 습격을 받습니다. 극히 쇠약하여 안색이 초쵀하고 몸은 말랐습니다… ” 스나가는 1888년 10월 13일 치 일기에 츠지 카쿠자부로(辻覚三郎)의 사망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누구길래? 바로 김옥균이 혁명에 실패한 뒤 제물포에서 일본배 치토세 마루호(千歳丸)를 탔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어떤 날의 하늘은 하나의 파란 그림종이 같지만, 또 어떤 날의 하늘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겹의 결을 가진 깊고 그윽한 그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토박이말 ‘겹구름’은 바로 이처럼 하늘에 깊이를 더하는 구름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겹구름’을 ‘비슷한 모양의 것이 여러 개 겹쳐 있는 구름’이라고 풀이합니다. 마치 물결이 겹치고 겹친 듯한 무늬를 이루거나, 솜을 얇게 펴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구름을 떠올리면 됩니다.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여러 낱의 구름이 포개지고 겹쳐져 만들어내는 바람빛(풍경)이 바로 ‘겹구름’인 셈입니다. 이처럼 깊은 느낌을 주는 말이니, 가락글 지은이(시인)들의 눈에도 그 모습이 담기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유안진 님의 가락글(시) 「춘천호반」에는 해 질 녘의 바람빛을 그리며 ‘겹구름’이 나옵니다. 겹구름 산 너머로 해는 기울고 / 산 그림자 드리운 호심은 고요한데 또한 오현종 님의 가락글 「아버지의 강」에서는 여러 겹으로 낀 구름이 걷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겹구름 다 걷히고 저녁별 뜰 때까지 / 아버지는 술잔을 놓지 않았다 두 가락글 모두 ‘겹구름’이라는 말을 통해 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시대 정궁인 창덕궁의 후원에 가면 가장 유명한 주합루 뒷편으로 연경당이란 건축물이 나온다. 후원의 경사진 지형의 한가운데 평평하게 조성된 양반가 같은 이 건축은 조선의 23대 왕인 순조(1800~1834)의 큰아들 효명세자(1809~1830)가 지은 것이라는 설명을 접한다. 사랑채ㆍ안채ㆍ행랑채ㆍ재·후원ㆍ정자ㆍ연못 등을 갖춘 주택 건축이다. 효명세자는 3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8살 되던 해부터 왕위 계승을 위한 대리청정을 하던 중 3년 3달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해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효명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버지 순조를 도와 왕권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외가인 안동 김씨 세력을 배척하고 인재를 널리 등용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역대 세자 가운데 예술문화 방면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특별히 춤사위를 즐겼기에 궁중 정재(呈才)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다양한 궁중 춤을 창작했다. 샘 솟는 예술적 상상력과 춤에 대한 애정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춤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효명세자는 우리의 문화예술사 차원에서는 참으로 아까운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며칠 뒤면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올해는 한가위 연휴가 길일뿐더러 중간 10일(금요일)에 연차를 내면 열흘을 쉴 수 있다고 좋아들 한다. 이렇게 연휴가 길다 보니 호기를 놓칠세라 모두 가방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난다. 때를 맞이한 듯 여행업계는 호황을 맞이했고, 나라 밖 항공권은 이미 매진된 상태다. 국내 주요 관광지의 숙소 또한 방 잡기 어렵다. 사람들은 긴 연휴를 맞아 맛집 찾아 즐기고 여행할 꿈에 젖어 있다. 그런데 문득 질문이 생긴다. “한가위라는 명분 아래 나라가 국민에게 긴 휴일을 허락한 참뜻은 무엇일까?”, “단순한 휴식과 유흥에 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올 초 필자가 부탄의 전통 명절을 취재하던 중 한국의 전통 명절인 설과 한가위가 부탄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번 한가위 명절을 기해 한국과 부탄 명절을 비교하면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부탄은 전통문화를 삶의 중심에 두고 오랜 세월 동안 소중히 지켜온 나라다. 특히 두메 마을에 가보면 수백 년 전의 환경과 정서가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유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이 근대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전통이 빠르게 약화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정보와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뉴스, 누리소통망(SNS), 대화, 광고 등 온갖 종류의 메시지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지요. 이러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과장된 정보는 진실처럼 포장되어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지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붐을 타고 동영상을 왜곡하기도 하고, 음성을 모방하기도 합니다. 가짜가 더 진짜 같고 진짜가 더 가짜 같은 이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아동 성매매와 관련되어 있다는 가짜 뉴스가 미국을 몰아친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진실은 밝혀졌지만, 그사이에 선량한 유권자들이 판단에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됩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과장된 정보와 치료제에 대한 허위 정보가 온라인에 도배되었지요.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헛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린 때때로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미국 침례교, 특히 남침례교에는 경건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노예들을 이용하여 목화나 사탕수수의 대농장을 경영하던 경건한 침례교인들은 주일이면 말쑥하게 데려 입은 옷을 입고 교회로 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에게 신실한 기도를 올립니다. 이렇게 경건하고 신실한 그들은 흑인 노예들을 부리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나요? 예! 많은 농장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흑인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노예들에게는 구원해야 할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유색가축’을 기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은 그런 하느님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인을 아주 존경할 분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하느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에 욕이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도인 주인을 섬기는 종들은, 그 주인이 신도라고 해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주인을 더 잘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섬김에서 이익을 얻는 이들이 동료 신도요,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석복(惜福). 누릴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사물은 성대하면 반드시 쇠하게 되니, 절제와 겸양으로 누릴 복을 아껴 오래오래 보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약간 모자란 느낌이 들 때 그치는 슬기로움과도 통한다. 복록은 무한정 있지 않으니 아껴서 조금씩 누리고, 나 혼자 누리지 않고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현명하게 누리는 길이다. 정민이 쓴 이 책, 《석복》은 이와 같은 슬기로움을 가득 품고 있다. 고문헌과 고사에서 오늘날 꼭 필요한 지혜를 찾아내 명쾌한 해설을 곁들였다.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이 청량한 죽비처럼 정신을 깨운다. 이런저런 욕심과 근심으로 혼탁해진 마음에 맑은 슬기로움 한 사발을 들이켜는 느낌이다. 책은 ‘마음 간수’, ‘공부의 요령’, ‘발밑의 행복’, ‘바로 보고 멀리 보자’의 네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석복’은 그 가운데 ‘마음 간수’ 편에 실려있다. 석복의 지혜는 광릉부원군 이극배와 홍언필의 몸가짐에서 잘 드러난다. (p.12) 엮은이를 알 수 없는 《석복수전서》의 첫 장은 제목이 ‘석복’이다. 복을 다 누리려 들지 말고 아끼라는 뜻이다. 여러 예를 들었는데 광평부원군 이극배(1422~1495)의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온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우리가 만날 토박이말은 그 이름부터 하늘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구름칼’입니다. 이 예쁜 이름의 연장은 아주 오랜 쓰임새를 품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우리 곁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구름칼’을 ‘삿자리를 겯기 위하여 나무를 얇고 길게 오려 내는 데 쓰는 칼’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뜻을 제대로 알려면 ‘삿자리’와 ‘겯다’는 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삿자리’는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를 말하고, ‘겯다’는 갈대나 대나무 같은 것의 씨줄과 날줄을 어긋매끼게 엮는 것을 뜻합니다. 곧, ‘구름칼’은 우리 조상들이 갈대 자리를 만드는 데 쓰던 연장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구름칼’이었을까요? 말집(사전)은 그 생김새를 ‘날은 활 모양이며 두 손으로 잡아당겨 쓴다’고 알려줍니다. 바로 이 ‘활 모양으로 휜 날’에서 우리 조상들은 하늘에 둥실 떠 있는 구름의 부드러운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고된 일을 하는 연장 하나에도 하늘의 멋을 담아 부르던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구름칼’이 어떻게 생겼는지 더 쉽게 알수 있는 찍그림(사진) 하나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