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어제 한낮에는 수레 안에서 찬바람을 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만큼 뜨겁기도 했습니다. 뜨거워진 길에서 그리고 그 위에 늘어선 수레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랭이가 숨씨(공기)를 더 데우고 있었지요. 시들해진 호박잎을 보며 이런 날이 이어지면 도랑물도 마르겠다 싶었습니다. 흔히 이런 도랑물, 시냇물, 바다와 같이 땅위에 있는 물을 싸잡아서 '지표수(地表水)'라고 하는데 토박이말로 '땅윗물'이라고 합니다. '땅위에 있는 물'이라는 뜻만 놓고 생각하면 '땅윗물'도 맞는데 이 말과 맞서는 말인 '지하수(地下水)를 놓고 생각하면 좀 생각해 볼 말입니다. '지하수(地下水)'는 말집(사전)에 '땅속의 토사ㆍ암석 따위의 빈틈을 채우고 있는 물'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이를 한 마디로 줄이면 '땅속물'이라고 할 만합니다. '지하(地下)'와 맞서는 말이 '지상(地上)'이 맞다면 '지하수(地下水)'의 맞선말은 '지상수(地上水)'라고 해야 되는데 '지표수(地表水)'라고 한 까닭도 있지 않을까요? '지상'은 땅의 겉뿐만 아니라 그 위까지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상수(地上水)'보다 '지표수(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조(正祖). ‘바를 정(正)’자를 쓴 묘호에서 보듯이 정조는 ‘바른생활 임금’이었다. 정조가 남긴 글이나 생각을 보면 늘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빈틈없이 살려 했던 ‘반듯함’이 느껴진다.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극기(克己)가 없으면 감당하지 못하는 막중한 군주의 자리를, 마치 군주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양 소화해 냈던 임금이 정조였다. 정조의 말과 생각을 담은 정장권이 쓴 이 책, 《정조의 말》은 규장각 신하들이 기록한 정조 어록집인 《일득록》을 지은이 정창권이 풀이해 쓴 책이다. 《정조처럼 소통하라》라는 책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고 《일득록》을 읽으며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줄 만한 대목을 가려 뽑았다. 《일득록》은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의 161권부터 178권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문학 5권과 정사 5권, 인물 3권, 훈어 3권 등 모두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 가까운 거리에서 정조를 보좌하던 규장각 신하들이 보고 들은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정조가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깨우치기 위해 편찬하도록 명했다. 《일득록》에서 보이는 정조의 모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부지런했다. 정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외교적인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사장님 부자 되시라고 확실하게 밀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부자 되면 한턱낼게요.” 미스 K가 응답했다. “제가 파스타 밸리 홍보 이사를 맡으면 어떨까요?” K 교수가 엉뚱하게 제안했다. “좋아요. 홍보 좀 많이 해 주세요.” 미스 K가 반색하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영업 이사 자리를 주세요.” 경영학 전공인 ㅊ 교수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영업도 매우 중요하지요. 잘 부탁합니다.” 미스 K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감사를 맡겠습니다.” ㅈ 교수도 질세라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님!” 미스 K가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K 교수가 화제를 돌리며 의미심장하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K리조트에서 혼자 살려면 심심하지 않아요?” “조금은 그래요. 10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좋은데, 때로는 심심하기도 해요. 그래서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고...” 뭐라고?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다” 이 여자는 분명히 혼자 사는 이혼녀임에 틀림이 없다. 결혼 생활이 순탄하다면 절대로 이렇게 발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가을이 되면 많은 식물이 열매를 맺습니다. 식물들은 씨앗을 보냄에 있어 때론 바람에 의하여, 때론 동물에 의지하여, 꼬투리 터짐의 힘으로 씨앗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 안간힘을 쓰지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씨앗이 머무는 곳은 노력보다는 우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씨앗은 땅을 잘 만나야 하고 땅은 씨앗을 잘 만나야 합니다. 자갈밭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없고 비옥한 땅에 떨어진 씨앗은 뿌리를 못 내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인생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곧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살아보니 그놈이 다 그놈이더라."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인생에서 만남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우연한 만남이든 섭리적(攝理的) 만남이든 만남은 중요합니다. 인생의 변화는 만남을 통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몰랐던 세상을 배우고,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힘든 시기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뜻밖의 경쟁 상대를 만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만남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로키산맥 정상 부근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엎드려 산다고 한다. 가까스로 싹이 트고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지악스러운 찬서리와 거친 비바람을 맞받으며 이겨내려면, 무릎 꿇고 엎드린 모습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작나무를 베어내 바이올린을 제작한다. 세상의 어떤 나무보다 공명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김주영의 <아라리 난장>에서) 싹이 트고부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찬 서리와 거친 비바람을 맞받으며 꿋꿋이 살았던 한 소년공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기적이 어제 새벽에 일어났다. 나는 그날만큼은 해돋이를 보아야겠다고 며칠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그날 서울의 해는 5시 12분에 뜬다고 했다. 자칫 놓칠세라 새벽 2시 무렵부터 침대에서 뒤척인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퍼뜩 깨어나 시간을 보는 일을 반복한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황홀한 해가 솟았다 사라졌다 한다. 몰록 시상(?)이 떠오른다. 해가 뜬다. 날마다 뜨는 해가 일천 년 만에 뜬다. 새해 봄에는 야산에서 따온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신다. 늦게 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열대지방에 두 나라가 있습니다. 싱가포르와 캄보디아지요. 싱카포르는 도시국가로 밭 한뙈기 없고 인구밀집형 도시국가입니다. 잘 살기 어려운 나라였지요. 그런데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9만달러가 넘는 세계 5위의 부국입니다. 대신 캄보디아는 땅덩어리가 넓고 3모작이 가능하며 앙크로와트라는 매우 훌륭한 관광자원이 존재하기에 못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3천달러로 세계 최빈국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두 나라가 극단적이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건 싱가포르에는 훌륭한 정치가가 있었고 캄보디아는 그렇지 못한 이유가 큽니다. 이광요는 싱가포르를 중계무역을 통해 세계의 정상으로 우뚝 서게 했고 캄보디아는 정치인들이 국부를 외국으로 빼돌려 자신의 주머니 채우기에 바쁩니다. 그러니 정치인을 잘 뽑는 것은 국운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먼 옛날, 중국에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난 어느날 남루한 옷을 입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갑니다. 그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소나무가 우거진 기분좋은 언덕배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호수, 어린 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숲 속의 작은 빈터, 군데군데 녹은 얼음, 거무스레하고 물기에 젖어있는 호수. 우리가 상상하고 가보고 싶은 숲을 28살의 청년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는 이렇게 묘사했다. 월든이란 호숫가에 들어가 살면서 묘사한 숲의 이야기다. 이 청년이 기록한 미국 동부 숲의 이야기는 단순한 숲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 찬미이며 동시에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통렬한 반성,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다. 우리가 숲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그런 숲에 가고싶어하는 마음을 일깨워준 것이 이 책이었다. 소로우가 묘사한 숲이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기후가 다르고 지형이 다르니 같은 숲이야 있겠는가만은 어릴 때부터 크낙새가 운다는 광릉의 숲이 아마도 소로우가 묘사한 숲의 이미지로 우리 가슴에 들어와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광릉 숲에 가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을 것이지만 막상 거기가 어딘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몰라 못 가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산목련(山木蓮) 어디 갔다 이제 왔는가 묻네 (돌) 희디흰 마음 늘 그대로인데 (달) 긴긴 밤 외롭게 기다렸으니 (빛) 그리움에 지쳤나 해쓱하네 (심) ... 25.6.2.불한시사 합작시 중국 대륙에서 돌아오자마자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머나먼 라틴아메리카 남미의 다섯 개 나라를 다녀 왔다. 오랫만에 찾은 산방이 낯선 느낌이었다. 그래도 반겨주는 가족 뿐만 아니라 불한티기슭 산방의 산목련이었다. 새벽 찬공기와 물소리 속에 고개숙인 흰 꽃망울들이 기다렸다는듯 내게 말을 걸어와 묻는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이제 왔는가?"하고. 그 속삭임 그대로 합작시를 발구(發句)했다. 이곳 불한계곡에 친숙한 시벗들이 우리의 대화를 꿰뚫어 보듯 화답하여 한 편의 맑고 멋진 4행시가 완성되었다. 산목련(山木蓮)은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산에 피는 목련'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지방에 따라서 함박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화처럼 꽃이 먼저 피는 목련과는 달리 잎이 먼저 우거지고 나서 하얀 꽃이 탐스럽게 핀다. 꽃받침잎은 3장의 난꽃 형태이다. 목련꽃은 3-4월 이른 봄 북해의 신을 연모해 북쪽을 향해 피지만, 산목련은 6-7월 초여름에 뿌리쪽을 향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은 하늘이 많이 낮았습니다. 아침에는 구름에 해가 가려 어제보다 훨씬 시원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뒤낮(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기별을 들었는데 낮밥(점심)을 먹기도 앞에 비가 내렸습니다. 일을 마치고 갈 때는 빗길을 뚫고 가야겠습니다. 이레끝(주말) 시골에 갈 일이 있어서 나랏길(국도)을달렸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었는데 고라니 주검을 둘이나 보고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언제 어느 수레에 치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길가에 옮겨 놓아서 다시 치이지는 않게 되어 있는 것이 나아 보이기는 했습니다. 제가 듣기로 그렇게 죽은 멧짐승들은 거두어 가서 태운다고 하더라구요. 타고난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하고 그렇게 간 것도 가슴 아픈데 말이지요. 차라리 땅보탬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사람도 땅보탬이 쉽지 않는 누리인 것이 참일이라 제 바람에 그치지 싶습니다. '땅보탬'은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힘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온갖 살이(생물)들이 죽어서 땅에 묻힘'을 가리키는 말로 쓸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어서 땅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슬기가 엿보이는 좋은 말을 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딱 하루를 조선시대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시간을 되돌려 조선시대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하루를 살 수 있다면 어떨지 궁금하다. 낯선 도시에 가서 ‘한 달 살기’가 유행인 것처럼, 원하는 시대로 가서 하루를 살아볼 수 있다면. 물론 어떤 신분으로 돌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같은 조선 시대여도 임금과 신하, 상민과 노비의 하루는 완전히 달랐으니 말이다. 이 책, 《조선 사람의 하루》는 나랏일에 매진했던 임금과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도승지, 양반가 안방마님, 박 의원, 김 서방, 노비 칠복이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루를 살았는지 재밌게 재구성한 책이다. 그 가운데 임금의 하루는 한마디로 ‘바쁘다 바빠’였다. 조선은 임금이 제도적으로 편히 쉴 수 없는 나라였다. 임금의 하루는 한양의 종각에 있는 종을 33번 쳐서 새벽을 알리는 ‘파루’와 함께 새벽 5시쯤 시작되었다. 일어나면 간단한 죽으로 요기를 하고 웃어른께 문안 인사를 드렸다. 공식 일과는 조회와 경연으로 시작되었는데, 약식 조회인 상참은 매일 열리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잘 열리지 않았다. 정조 임금은 상참을 연 것이 10번이 채 되지 않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