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가을 기온이 계속 포근해 가을이 길 줄 알았는데 11월 들어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면서 철모르고 달려있던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다 떨어졌다. 그러고는 그새 12월이다. 앙상한 가지에는 나뭇잎 몇 개만 달랑거리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은 벌써 길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바람이 불자 어딘가로 휩쓸려 날아간다. 새벽 산책길을 나서면 하늘에는 추운 공기 속에 파랗게 보이는 달이 외롭게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이럴 때마다 나에게는 제일 먼저 생각나는 동요의 노랫말이 있다. 산머리 걸린 달도 추워서 파란 밤 나뭇잎 오들오들 떨면서 어디 가나 아기가 자는 방이 차지나 않느냐고 밤중에 돌아다니며 창문을 두드리네 60여 년 전 초등학교 학생 때에 배운 동요다. 동요 제목은 '나뭇잎'이었다. 가사도 좋고 가락도 쉽고 따라 부르기도 좋아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되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다. 이렇게 초겨울 새벽과 아침 상황을 잘 묘사한 노랫말이 있단 말인가? 당시 음악 교과서에는 외국곡이라고만 나와 있어서 그저 그런 줄 알면서 이 노래 좋다고 감탄한 적이 제법 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클래식 기타를 배운다고 설치며 놀다가 일본에서 나온 악보집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손자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더니 목소리가 소프라노에서 테너와 바리톤으로 내려가고 목에 돌기가 튀어나온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목소리가 어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목젖의 구조도 변한다고 하는데 유난히 남자 아이들이 많이 튀어나온다. 나 자신도 처음에는 목소리가 굵어지는 것이 조금 창피했지만, 나중에는 그게 어른의 징표라니 나도 어른이 되는가보다 하며 인정하고 들어간 뒤에야 마음이 편해진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튀어난 목의 돌기를 사람들이 '아담의 사과'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 은연 중에 우리는 이것을 히브리사람들이 최초의 인류조상이라고 생각하는 아담이 이브의 권유로 사과를 먹다가 목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통해 이런 말을 들어서일 것이다. 교회 쪽에서 알려주는 '아담의 사과' 이야기는 이렇다. 야훼 하느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제일 간교한 것이 뱀이었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여름 지독히도 비가 많이 내려 단풍이 물들 10월까지 햇살을 본 날이 손꼽을 정도고, 그러다 보니 사과 등 과일이 빨갛게 색이 나지 않아 과수농가들이 한숨을 많이 쉬었다. 과연 올가을처럼 가을같지 않은 가을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달력이 이미 11윌도 하순이니 그야말로 예년 기준으로 보면 가을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가을이 다 갔다고 해야 할 터다. 문득 가을이란 계절의 이름은 무슨 뜻이고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진다. 더듬어 보니 사람들은 가을을 한자 ‘추(秋)’ 자로 많이 설명한다. 곧 ‘벼. 화’와 ‘귀뚜라미’의 합성어라고 말이다 ‘秋’ 자에 붙어있는 ‘火’ 자는 원래는 귀뚜라미 모습인데 획이 복잡해 火자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 '가을'이 있음에랴. 우리 말 어원이 있을 터인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 알려면 또다른 계절 ‘봄’과 ‘여름’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 ‘봄’은 동사 ‘보다’에서 왔다고 한다. 봄이 오면 모든 생물체는 겨울의 긴 휴지기를 끝내고 새롭게 태어난다. 식물은 싹을 돋우고, 동물들은 겨울이 끝났다고 기지개를 켠다. 따라서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싹틈을 ‘보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달 초 경주에서 성공적으로 끝난 ‘2025 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 정상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 정상들을 만나 관세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 가운데 화제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이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신라 금관 모형이었다. 이 선물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 대통령에게 "아주 특별하다", "훌륭하다"라며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고 직접 전용기에 실어 미국으로 가져가도록 수행원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금관은 지금 미국 대통령이란 절대권력을 써서 전 세계 질서를 다시 만들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정 조준한 것이어서, 외교라는 것이 우선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로써 몇 가지 문제가 질척거리지 않고 대범하게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금관 선물은 최근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인 국정 운영을 비판하는 '노킹스'(No Kingsㆍ왕은 없다) 시위가 열린 것과 맞물려 일종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소비되기도 했는데, 그것울 통해서 우리의 신라시대 금관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누구는 안 그럴까마는 중국인들은 특히 무언가 최고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 90년대 초 중국에 초대 특파원으로 들어가 서점에서 자주 목격한 것은 중국의 최고를 모아 알리는 책자가 많더라는 것이다. 지금도 갖고 있는 책 중의 하나는 《중국지최대관(中國之最大觀)》이란 것인데, 이 책은 ‘중국에서 최고(中國之最)를 모아놓았다(大觀)’라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보면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가 찬란한 오랜 문명국으로 허다한 세계의 최고, 또은 중국의 최고를 안고 있기에, 이러한 ‘최고’를 뽑아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중화민족문화를 드높이고 애국주의를 가르치는 유익한 시도인 것이다.” 라고 하면서 인류, 역사, 문화재, 정치, 경제, 교육 등 23개 항목별로 최고가 되는 사안들을 모아놓았다. 이 가운데 17번째 <교통> 항목을 보면 중국 역사에 나오는 최초의 다리는 서주(西周) 초기에 위수(渭水)에 건설된 부교(浮橋)로서, 문왕(文王)이 부인을 얻기 위해 “친히 위수에 나아가서 배로 다리를 만들었다”라는 기술이 《시경(詩經)》에 보인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돌다리는 중국 복건성에 있는 호도교(虎渡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중국 북경의 시 경계에서 서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따라 약 15킬로를 가면 노구교(盧溝橋)라는 지명이 나온다. 이곳에서 고속도로를 내려 작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돌로 쌓아 올린 완평성(宛平城)이 있는데 이 성을 관통해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다 보면 돌로 만든 다리가 하나 나온다. 11개의 아치를 이어 받친 길이 265미터의 이 돌다리 위에는 양쪽으로 난간이 있고 난간 사이로 281개의 난간기둥(望柱)이 서 있고 이 난간기둥 머리에는 각양각색의 돌사자가 조각돼 있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거나 일어서 있거나 엎드려 있는 이 돌사자들은 자세도 다 다르고 더욱이 표정이 다르고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어떤 사자는 새끼를 데리고 놀고 있다(이것은 암컷이다). 어떤 것은 지구 같은 공을 발밑에 끼고 놀고 있다(이것은 수컷이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이 다리 위에 있는 사자가 모두 몇 마리인지를 세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도무지 셀 수가 없었다. 세다가 자꾸 틀리기 때문이다. 어느 끈기 있는 사람이 세어 본 결과 485 마리라고 하기도 하지만. 노구교(盧溝橋)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다리의 대명사였다. 위수(渭水)의 지류인 영정하(永定河)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몇 년 전부터 가을에, 눈에 띄는 행사가 서울의 한복판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도 지난 주말 사흘 동안 창신제라는 행사를 알리는 안내판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20회라고 했다. 입장권을 받아 자리에서 기다리는 2025년 창신제, 기대가 잔뜩 높아져 있었다. 창신이란 말은 법고창신(法古創新), 곧 '옛것을 참고하여 새것을 만든다'라는 뜻일 텐데 무엇을 참고하여 무엇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막이 오르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그 큰 무대에 전통음악연주단과 함께 흰 옷을 입은 100명이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합창단인 것 같다. 곧 악보를 꺼내 든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현악의 장중한 선율이 나오다가 합창단의 우렁찬 목소리가 강당을 흔든다. 수제천이란 음악의 성부를 네 가지로 나누어 목소리로 부르는 합창공연이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관현악을 맡았고 합창단은 이 공연을 준비한 회사의 직원들이라고 한다. 이들이 수준 높은 관현악곡 <수제천>을 합창으로 부르는 것이다. 정읍(井邑)이라고도 하는 <수제천(壽齊天)>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향악, 곧 우리가 발전시킨 우리의 전통음악 가운데 가장 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서는 대중가요를 따라 부를 수 없었고 오로지 동요만 배우고 불렀다. 중학교에서도 대중가요를 부를 수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가곡을 배우고 듣고 부르곤 했다. 그러기에 홍난파, 현재명 등 유명한 작곡가들의 가곡을 배워 지금도 거의 외우고 따라 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팝송을 듣는 것이 유행이 되니 팝송을 잘 부르는 것이 자랑인 시대가 되었다. 팝송이 아니라면 클래식이라고 하는 서양 음악이나 노래를 배우게 되어 '오 나의 태양'이나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등 서양 가곡, 혹은 아리아를 즐기게 되며 연애를 하려 해도 팝송이나 이태리 가곡을 원음으로 부르는 것이 멋있어 보이고 그에 따라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은 촌스럽지 않느냐는 대우를 받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70년대 이후 우리 가곡은 점차 찬밥 신세로 변하고 있었다. 예전 TBC-TV에서 일주일에 가곡 한 편씩 황금시간에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곧 그것도 없어지면서 대학의 성악과에서도 우리 가곡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줄어들어 커리큘럼도 주는 추세였다. 간혹 2021년 송년 가곡 콘서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국인 여성이 만들고 부른 노래가 빌보드 핫100 1위,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1위 등 글로벌 차트를 석권하면서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애니메이션(만화)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그 OST인 ‘골든’이란 노래 가사는 영어로 이렇게 부른다. “I was a ghost, I was alone, hah” (난 유령이었어, 혼자였지) “Given the throne, I didn’t know how to believe” (왕관을 받고도 믿을 수 없었지) “I lived two lives, tried to play both sides” (두 개의 삶을 살며, 다 잘 해내려 했지) “But I couldn’t find my own place” (하지만 내 자리를 찾을 수 없었어) “Called a problem child ‘cause I got too wild” (너무 거칠다고 문제아라 불렸지만) “But now that’s how I’m getting paid, endlessly on stage” (이젠 그게 내가 무대에서 성공하는 방식이 됐어)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시대 정궁인 창덕궁의 후원에 가면 가장 유명한 주합루 뒷편으로 연경당이란 건축물이 나온다. 후원의 경사진 지형의 한가운데 평평하게 조성된 양반가 같은 이 건축은 조선의 23대 왕인 순조(1800~1834)의 큰아들 효명세자(1809~1830)가 지은 것이라는 설명을 접한다. 사랑채ㆍ안채ㆍ행랑채ㆍ재·후원ㆍ정자ㆍ연못 등을 갖춘 주택 건축이다. 효명세자는 3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8살 되던 해부터 왕위 계승을 위한 대리청정을 하던 중 3년 3달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해 왕위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효명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 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버지 순조를 도와 왕권을 강화하려 노력했다. 외가인 안동 김씨 세력을 배척하고 인재를 널리 등용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책 구현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역대 세자 가운데 예술문화 방면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특별히 춤사위를 즐겼기에 궁중 정재(呈才)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다양한 궁중 춤을 창작했다. 샘 솟는 예술적 상상력과 춤에 대한 애정으로 조선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춤의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효명세자는 우리의 문화예술사 차원에서는 참으로 아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