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한가위 전전날 오후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 한가위 준비를 하던 주부(主婦)나 새로운 직종인 주부(廚夫,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조금이라도 식혀주었으니 말이다. 예년보다 보름 정도는 빨리 온 올해 한가위는 30도가 넘는 불볕 무더위로 하늘만 처다보다가 아침 기온이 내려가서 그나마 한가위 느낌이라도 가지게 되었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 도종환 '가을 사랑' 닷새라는 연휴가 이어지면서 고향을 찾는 차량도 다소 분산돼 예전처럼 아주 심한 고생을 하지 않았고 한가위 전날 귀성전쟁보다도 귀경전쟁으로 고속도로가 크게 막힌 것을 보면 연휴 분산효과는 확실했다. 아마도 그 전날 미리 고향을 갔다가 대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이반 한가위는 고향집에서 보낸 분들이나 도시로 돌아온 분들이나 한가위를 즐기는 방법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어디서건 흩어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9월로 접어들어 아침저녁 공기는 선선해졌지만 이미 중순인데도 한낮은 여전히 30도를 넘어 여름을 벗어나기가 이리 어렵나 하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토하게 한다. 우리들은 늦더위를 참아야 곡식과 과일이 익어 풍성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으니 참고 이길 자신은 있다. 더구나 다음 주가 한가위 아니던가? 곡식도 과일도 많이 많이 익어 우리의 한가위가 풍성해서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빌어본다. 지난주 친구 하나가 뜰에 핀 빨간 꽃 사진을 하나 보내준다, 이 꽃은 이쁘고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울퉁불퉁, 삐쭉삐쭉한 꽃잎들이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데 막상 여름을 다 지나고 이 꽃을 보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맨드라미꽃이다. 시골의 담벼락이나 울 안, 사립문 부근에 많이 피지 않았던가? 도회지에 그런 곳이 없어 이미 꽃을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친구 사진으로 보는구나. 사실 맨드라미는 보기만 해도 덥다. 꽃은 달린 것이 아니라 몸체를 누르고 있는 것 같다. 빛깔도 걸쭉한 붉은빛이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생각게 한다. 그러기에 이 꽃은 아름답다고 보기보다는 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저는 학입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 있습니다. 보통은 하얀 색이지만 지금 저의 몸에서는 황금빛 광채가 은은히 퍼지고 있는데 혹 보이시나요? 저는 가끔 두 다리를 곧게 펴고 날아오르기도 합니다. 제가 있는 곳이 박물관 전시장의 진열창 속이고 제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오동나무 판이어서 이따금 날개를 펴고 솟아올라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재미가 좀 없습니다. 누가 봐주면 좋겠는데 여기 프랑스 사람들은 제가 여기 있는지를 모르는 지 거의 오지 않고요, 저의 존재를 알 만한 한국 사람들도 별로 오지 않으니까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온 지 120년이 넘었습니다. 제 나이요? 학은 천 년을 살 수 있는 것 아시지요? 제가 처음 한국 땅에 내려온 것이 고구려 24대 양원왕陽原王(재위 545∼559) 때인데 그때는 막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 그때부터 치면 1,500살이 조금 안 됩니다. 당시 왕산악 선생이 중국에서 온 7줄의 칠현금이란 악기 대신에, 밤나무로 밑판을 대고 그 위에 오동나무로 울림통 덮개를 덮은 6줄의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기에 그것을 축하한다고 높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때 사람들은 검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잠시 눈감고 바람소리 들어보렴 간절한 것들은 다 바람이 되었단다 내 바람은 네 바람과 다를지 몰라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람처럼 떨린다 ... <바람편지>, 천양희 그래 이제 길고 긴 더위에 지친 우리들이 눈을 감고 마음을 열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여름 무더위가 언제 갈 것인가? 한낮부터 밤까지 땀을 흘리던 우리들의 바람은 이 바람이었다. 우리의 '바람'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새', 아니 '마침내' 오고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늘 그렇지만 새해가 시작된 게 어제 같은데 한 해로 치면 3분의 2가 가고 있다는 뒤늦은 인식과 함께 온다. 이제 올해의 3분의 1이 남았을 뿐이라는 탄식과 같은 것 아닌가? 곧 9월이라 뜻이다. 푸른 옷 벗어 놓고 새 옷을 입는구나 한 철이 지나가고 새 계절 맞이하니 9월이 물드는 것을 그 누구가 막으랴 ... <물드는 9월>, 오정방 초복ㆍ중복ㆍ말복을 지나고, 입추와 처서도 지나고, 9월이다. 입추(立秋)에서 보름이면 처서(處暑)인데 그것도 지났으니 이제 계절로는 분명 가을이렸다. 아직 한 낮에는 그렇지 않지만, 최장의 열대야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Transcendence(트렌센던스)’란 영어단어가 있다. '초월', '탁월' 등의 뜻이다. 이 단어의 형용사는 transcendent인데 이를 '초월하는', '초월적인'이란 뜻으로 푸는 것을 보면 Transcendence란 단어는 뭔가 개인의 존재로부터 초월한 정신세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경험으로부터 획득한 그 이전의 상태를 의미하기에 '선험(先驗)'이라는 말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몇십 년 전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즐겨했다는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이 알려지면서부터 우리들에게도 가까워졌지만, 사실은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 ~ 1804)가 새로운 철학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쓰기 사작해 이미 유명해진 개념이다. 칸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상(對象)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방식은 경험 독립적(선험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한에서 일반적으로 다루는 모든 인식은 선험적(초월적)이다." 올해 83살의 화가 곽훈 씨가 지난주 대구 문화예술회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는데 전시회의 제목이. <선험의 전이(轉移)>다. 선험이 어떻게 변하고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해 제79돌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빛바랜 수의(囚衣)를 입고 옥중 순국한 독립유공자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담은 한복을 입혀드리는 운동이 추진중이다. 국가보훈부와 빙그레는 8월 한 달 동안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 87명에게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시켜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처음 입는 광복’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에 포함된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내에서 옥중 순국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가운데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에 수의(囚衣)를 입은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이 대상이다. 이들 가운데는 안중근(1962년 대한민국장), 안창호(1962년 대한민국장), 강우규(1962년 대한민국장), 신채호(1962년 대통령장) 등의 독립유공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온라인 사진전(처음입는광복.com)에는 독립운동가 87명의 복원 전ㆍ후 사진과 인물별 공적이 정리돼 있다. 좋은 발상이지만 나라가 진정으로 챙겨야 할 데는 또 있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분들의 후손들이다. 우리 주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갖다 바쳤다. 후손들은 교육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 집에는 청동으로 된 약간 길쭉한 솥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 솥의 양쪽에는 고리가 있다. 고리는 터져 있어 거기에 긴 막대를 끼면 지상 위로 올려 세울 수 있고, 그 밑에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이거나 그 물로 고기, 푸성귀 등을 익혀 먹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동이 가능한 주방용 솥 혹은 냄비인데, 보통 청동으로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 솥을 청동솥 혹은 한자어로 동복(銅鍑)이라고 한다. 1995년 무렵 필자가 북경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 놓은 것이다. 북경 골동품 시장은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눈이 아플 지경이고 그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짜 위조품이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 솥에 눈길이 꽂혔을까? 그것은 이와 비슷한 청동솥(동복)이 김해의 대성동 유적에서 나왔기에 그것과 비교가 된다는 생각에 선뜻 소장하게 된 것이다. 김해 대성동 유적은 1990년대 초 김해읍(당시) 한쪽 언덕에 조성된 3~4세기 가야시대 무덤군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인데 여기 29호분과 47호분에서 각각 사진과 같은 동복(편의상 동복이라고 부르자)이 나온 바가 있다. 필자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느 날 들판에 나갔던 양치기 소년은 외롭게 버려진 하얀 망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소에서 나온 우유를 먹이며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하얀 망아지는 늠름한 말이 되어 소년이 양을 칠 때에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켜주었다.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유대가 커 갔다. 그즈음 말타기 대회에서 1등 하는 자는 원님의 사위로 삼겠다는 마을 원님의 공약이 온 초원을 바람을 타고 이 소년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소년도 하얀말과 함께 출전한다. 그리고 당당히 1등을 한다. 그런데 힘차고 멋진 말과 부와 기백을 겸비한 강한 청년이길 기대했던 원님은 1등을 한 사람이 가난한 양치기 소년임을 알고는 말은 빼앗고 소년에게는 상 대신 매를 때려 내쫓는다. 자신을 돌봐준 소년과 갈라진 하얀말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소년이 있는 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뒤쫓아오던 군사들에 의해 집 바로 앞에서 화살에 숨을 거둔다. 눈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하얀말을 죽음으로 맞이한 소년은 당장 복수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기왕에 저세상으로 떠난 하얀말과 평생을 함께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하얀 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 그리고 털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몽골에 왜 가려고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별 보러 간다는 것이리라. 우리나라가 산업화한 이후 밤하늘에도 매연이건 연무건 완전히 걷히지 않아 도시에서는 영 별을 제대로 보기 어렵고 그러기에 몽골의 사막 한 가운데에 가면 별이 잘 보일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녀오신 분들의 증언도 많이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사실 여름이 우리나라가 무덥기에 습도가 낮은 시원한 사막의 밤을 즐기자는 것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몽골의 밤하늘은 어디에서 보면 좋은가? 수도인 울란바토르 일대도 이미 상당히 매연이 번지고 있어 도시 안에서는 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수도 옆 30분을 나가면 교외에 테레지라고 하는 멋진 풍경구가 있긴 한데 별을 보는 최적지는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가 간 것은 고비사막의 한가운데다. 수도에서 포장도로로 7시간, 다시 비포장도로로 1시간, 보이는 것은 누런 모래와 자갈과 말라죽은 이끼류뿐. 길도 없는 길을 타이어 바퀴 자국만 따라 잘도 찾아 달려 마침내 천막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곧 석양이 진다. 밤이 오는 것이다. 아 드디어 밤이구나. 사막의 밤이구나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계 최대의 제국이 있었다. 자국의 강력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하여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동유럽을 정복했다. 서쪽 끝으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부터 동쪽 끝으로 사할린까지 남쪽 끝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까지를 아우르는 단일 대제국이었다. 이 제국으로 동양과 서양이 모두 한 나라에 속하게 되어, "모든 나라들은 누구도 누구한테서도 어떠한 폭행도 당하지 않은 채 황금 쟁반을 머리에 이고 해가 뜨는 땅에서 해가 지는 땅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1206년 건국 이후 1368년 명나라에 의해 고비사막 일대로 축소되기 전까지 이 제국은 곧 세계 그 자체였고 이들에 의해 세계사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 대제국을 이룬 주인공은 칭기즈칸이었고, 주역은 몽골족이었다. 100만 명도 안 되는 이들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는가? 2024년 7월초 몽골 여행에 나선 필자는 7월10일 오전 10시 몽골의 수고 울란바토르의 거대한 중앙광장에 있었다. 광장에는 전통적인 병사 복장을 한 의장대와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고 광장 끝 몽골정부청사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곧 거대한 몽고 국기가 등장했다. 마침 이날이 몽골의 독립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