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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사관이 임금의 곁에서 기록한 일기 시정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8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정에 보관하고 있는 사초에 이름을 쓰지 않는 것은 옛 제도가 아닌 것으로 단지 사람을 투박하게 만들 뿐입니다. 의논하는 사람 가운데 만약 이름을 쓴다면 직필(直筆)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나 이는 더욱 그렇지 않습니다. 옛적에 사필(史筆)을 잡은 자는 도끼가 앞에 있더라도 이를 피하지 않고 썼습니다. 만약 강개(慷慨)한 선비라면 임금의 허물에 대하여 면전에서 옳지 않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하게 말하는 법인데 유독 가정에 보관하고 있는 사초에 대해서만 두려워하여 꺼리겠습니까? 이미 올린 것은 추서(追書)할 필요가 없거니와 아직 올리지 않은 것은 옛 제도대로 이름을 쓸 것을 영원한 법식으로 만드소서.“

 

이는 《명종실록》 9권, 명종 4년(1549년) 1월 13일에 있는 기록입니다. ‘사관(史官)’이 임금의 곁에서 날마다 기록한 일기를 ‘시정기(時政記)’라고 하는데, 시정기는 매달 책으로 묶어서 춘추관에 보관하고, 시정기에 쓸 수 없는 긴밀한 이야기는 사관이 따로 적어 자기 집에 보관했지요. 사관이 집에 간직한 글과 시정기가 훗날 실록을 만드는 기초 자료인 ‘사초(史草)’가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사초에도 이를 쓴 사관의 이름을 밝히도록 한 것이지요.

 

 

이 사초는 임금이라도 볼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런데 연산군은 재위 4년이 되는 해 김일손이라는 사람이 쓴 사초를 들여오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에 신료들은 “그러면 후세에 직필이 사라진다”라고 간언했지만, 임금은 고집을 꺾지 않고 김일손을 잡아들여 피바람 곧 ‘무오사화’을 일으킵니다. 이후 사초를 본 연산군은 재위 12년 만에 왕위에서 쫓겨나 죄인으로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