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위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글인데 상강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있습니다. 내일은 24절기의 18째 “상강(霜降)”인데 상강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날이란 뜻으로 날씨가 추워져 첫얼음이 얼기도 하지요.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입니다. 옛사람들은 상강 초후에는 승냥이(갯과의 짐승)가 짐승을 잡으러 다니고, 중후에는 풀과 나무가 누렇게 떨어지는 낙엽의 때라고 보았으며, 입동이 되기 5일 전(말후)에 벌레들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국악원(원장 직무대리 강대금)은 ‘춘향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각색한 무용극 ‘춘향단전’을 오는 11월 14일(금)부터 16(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무용단 정기공연으로 선보인다. 그에 앞서 어제(10월 22일) 낮 2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춘향단전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향단의 시선으로 다시 쓴 ‘춘향전’, 고전을 새롭게 ‘춘향단전’은 지금까지의 ‘춘향전’과 달리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지켜보던 ‘향단’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기존 이야기에서 주변 인물로 머물던 향단은 이번 무대에서 사랑과 질투, 욕망에 흔들리는 입체적 인물로 재탄생한다. 몽룡의 오해로 춘향 대신 입맞춤을 받게 된 향단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집착하며 광기로 무너져간다. 춘향을 향한 몽룡의 일편단심, 학도의 일방적 집착, 향단의 왜곡된 사랑이 맞물리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향단의 시선으로 각색한 서사는 관객에게 새로운 춘향전을 경험하게 한다. 김충한 예술감독 연출로 선보이는 무용극, 6년 만의 도전 이번 공연은 2019년 무용극 <처용> 이후 6년 만에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선보이는 무용극이다. 연출과 안무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엄마ㆍ아빠 손을 꼭 붙잡고 온 아이들이 객석을 꽉 채웠다. 10월 19일 낮 3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2025 리:바운드 축제(RE:BOUND FESTIVAL)’ 첫 공연 잔치마당의 〈금다래꿍〉이 열렸다. 아동극에 처음 와본 나로서는 좀 어색하다. 무대에서 배우가 아이들을 상대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금다래꿍 금다래꿍 금다래꿍 금다래꿍 금다라졌네 보고지고 보고지구 이 옥녀 아가씨가 보고지구 몾 잊겠네 못 잊겠네 금다래 도련님 못 잊겠네 왜 생겼나 왜 생겼나 금다래 이 옥녀 왜 생겼나 천지만물 생긴 후에 부모 밖에 또 있나요” 할머니 역으로 무대에 올라온 배우가 ‘금다래꿍’ 노래를 가르쳐준다. 아이들이 신나게 따라 부른다. 할머니가 잃어버린 손녀딸 ‘분이’를 찾기 위해 나서자,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 나서서 함께 한다. 극장이 아이들의 노래와 함성으로 꽉 찬다. 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함께 손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어색했던 나는 이제 아이들과 하나가 된다. 무대는 동물 친구들이 하나둘 등장하면서 풍물 악기들도 하나둘 나타난다. 먼저 곰 친구가 북을 들고 나서고, 호랑이 친구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의정 홍언필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 하인들이 "물렀거라! 영의정 대감 행차시다."를 외치자 이에 깜짝 놀란 홍언필이 손사래를 치면서 "조용히 하거라."라고 말합니다. 높은 벼슬아치가 초헌(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외바퀴 수레)이나 보교(조선시대에 벼슬아치들이 탄 사면으로 휘장을 두루고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타고 행차할 때는 으레 종들이 "썩 물렀거라(벽제소리)"를 외치는 것인데 홍언필은 이를 못 하게 한 것입니다. 홍언필(1476~154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사헌을 6번이나 지냈고, 우의정ㆍ좌의정ㆍ영의정을 했던 명신입니다. 이렇게 홍언필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지만 늘 겸손하고 조심하며, 처세에 허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런 홍언필을 두고 소심한 사람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것이 공직자의 표본이 아닐까요? 이 홍언필에게는 환갑잔치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의정에 올랐고, 그의 아들들도 판서에 오른 자랑스러운 집안이어서 집안사람들은 크게 잔치를 치릅니다. 기생을 불러 노래를 시키면서 걸판지게 잔치를 엽니다. 그러나 이에 홍언필은 “내가 외람되이 한 나라의 높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국립국어원’ 누리집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는데 그것은 영어 <MISSION INFO SSIBLE>이 큼지막하게 쓰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알림창을 가져와 국립국어원 누리집 대문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대한민국 국무총리 직속기관이다. 곧 정부기관인 것이다. 2005년 1월 27일 국어의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된 국어 관련 법률 <국어기본법> 제14조 제1호에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정부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국어기본법에 규정된 것처럼 공문서 등을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영어가 커다랗게 쓰인 알림창을 누리집 대문에 올려놓은 것은 물론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생활을 향상하는 연구 사업을 추진하고 체계적인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기관 국립국어원이 가져와 이를 대문에 버젓이 올려놓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정부기관이 버젓이 국어기본법을 어기는 것은 기관 관련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와 부여군은 지난 10월 13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소산성에 대한 17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추가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17차 발굴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소산성 내 가장 높고 넓은 평탄한 터를 조사하여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임을 알 수 있는 대지조성과 굴립주 건물터 곧 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로, 지표면 위에 생활면을 설치한 건물과 와적기단 건물터를 발견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 발굴조사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얼음을 넣어 두는 빙고(氷庫)가 추가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부소산성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입니다. 빙고는 17차 조사구역 동쪽 끝부분에 있는데 평면은 네모 모양이며 내부 단면은 U자형이고, 규모는 동서 길이 약 7m, 남북 너비 약 8m, 깊이는 2.5m지요. 바닥 가운데에 길이 230cm, 너비 130cm, 깊이 50cm로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든 뒤 남쪽에 깬돌을 채운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빙고 안에서 생긴 물을 빼내기 위한 물 저장고(집수정)로 짐작됩니다. 이러한 빙고는 얼음을 장기간 보관하기 위한 특수시설로 강력한 왕권과 국가 권력이 있어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전통연희단 잔치마당(대표 서광일)이 주최하는 창작판놀음 《1883 인천 그리고 기산 김준근 / 부제 : 기산, 시간을 그리다》가 오는 10월 24일과 25일, 인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인천광역시가 후원하는 2025 지역대표예술단체 선정작으로, 국악과 미술, 무용과 영상이 결합한 융복합 공연예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신작은 19세기 말 인천 개항장의 역사와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箕山 金俊根)의 예술세계를 현대 무대 위에 되살린 작품이다.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기산의 풍속화 속 인물과 사건을 연희ㆍ음악ㆍ영상으로 재해석하며, 시공을 초월한 감각적 예술의 세계를 그려낸다. 풍물놀이, 탈춤, 줄타기, 검무, 죽방울놀이 등 전통연희를 중심으로 창작음악과 무용, 영상미술이 어우러져 국악과 미술의 새로운 융합무대를 선보인다. 작품의 기획은 인천 출신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윤 평론가는 “1883년 제물포 개항을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과 조선의 전통문화가 충돌하고 융합되던 그 시기의 예술적 에너지를 공연예술로 구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고, 그 제안이 본격적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60여 년 전 보릿고개 때 이야기다. 덜 영근 보리를 베어 밥 지어 먹는 것만이라도 행복이었고, 좁은 방 한 칸 이불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발 뻗고 자면서도 누워 잘 집이라도 있다는데 행복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50평이 넘는 호화 저택에 살면서도 행복 타령을 하고 있다.” 이는 일취스님이 학자원을 통해 펴낸 책 《연꽃 속에 진주를 줍다》 가운데 <동화 속에 잠든 행복>이란 소제목에 나오는 눈에 띄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구절이 나오기에 앞서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뜻을 따라간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뜻은 오직 한 가지다. 오늘보다 더욱 나은 내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참는 것이 제일이고, 뜻을 이루고자 할 때는 먼저 욕심을 절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라는 《법구경》 구절을 보여준다. 스님은 180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며 법구경 한 대목을 읊은 뒤 인간사를 더듬으며, 담담하게 속삭인다. 스님은 그동안 <우리문화신문>에 ‘산사에서 띄우는 편지’를 연재했었고, 최근엔 ‘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라는 제목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문화신문>에는 한자말 ‘가치(價値)’ 대신 우리말 ‘값어치’란 말을 씁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가치’와 ‘값어치’는 같은 말이 아니라면서 바꿔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 진주에서 ‘토박이말바라기’ 상임이사(맡음빛)를 하고 있는 이창수 님께서는 오히려 ‘값’이나 ‘값어치’가 ‘가치를 껴안는 폭 넓은 말이라며 ‘값’이나 ‘값어치’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우리문화신문에 글을 올렸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값어치’를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가치”라고 풀이했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일정한 값에 해당하는 쓸모나 가치”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또 우리 말꽃지음몬(문학작품)에도 이 말을 부려 써서 사람의 소중함과 삶의 무게를 멋지게 나타냈는데 예를 들면 안정효 님의 《하얀 전쟁》에서는 “죽음의 값어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무게로 측정된다.”라고 표현했다면서 꼭 ‘가치’란 말을 쓸 필요가 없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값어치’의 뜻풀이 속에는 ‘가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물건값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성과 쓸모까지 아우르는 큰 그릇이지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4얼 24일 「부여 무량사 미륵불 괘불도(扶餘 無量寺 彌勒佛 掛佛圖)」는 국보 지정을 받았습니다. 1997년 7점의 괘불이 동시에 국보로 지정된 이후 약 30년 만에 새롭게 나온 국보 괘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 괘불도는 길이가 약 14m에 달하는 초대형 규모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신체를 아름답게 장식한 모습의 보살형 입상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장엄신(莊嚴身, 괘불에서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신체를 아름답게 꾸민 부처님) 괘불의 시작점을 연 작품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요. 초대형 작품임에도 균형 잡힌 자세와 비례, 적ㆍ녹의 강렬한 색채 대비, 밝고 온화한 중간 색조의 조화로운 사용으로 종교화의 숭고함과 장엄함을 효과적으로 구현하였습니다. 화기를 통해 법경(法冏), 혜윤(慧允), 인학(仁學), 희상(熙尙) 등의 제작 화승과 1627년(조선 인조 5년)이라는 제작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데, 기존에 국보로 지정된 다른 괘불도들보다도 제작 연대가 앞섭니다. 또한, 화기에 ‘미륵(彌勒)’이라는 주존의 이름을 밝히고 있어, 일찍이 충청 지역에서 유행한 미륵대불 신앙의 전통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