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임금이 술과 퇴선(退膳)ㆍ약봉(藥封, 종이에 싼 약)을 하사하였다.” 이는 《선조실록》 41권, 선조 26년(1593년) 8월 12일 기록입니다. 여기 나오는 ‘퇴선’은 임금이 들고 남은 음식을 신하나 아랫사람들에게 내려주어 먹을 수 있게 한 곧 ‘상물림’을 말합니다. 또 ”오늘 음식을 하사하고 그릇을 나눈 일을 알게 하여 대대로 내 자손을 보필하게 하라’고 일렀다.”라는 《영조실록》 13년(1737) 8월 14일의 기록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수라상이 12첩 반상이라 하여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엄청나게 차려진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임금이 혼자 먹는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이 상물림은 궁궐뿐 아니라 감영 등 관아에서도 있었지요. 예를 들면 감사가 밥을 먹고 나면 이 물림상은 이방, 호방 등 6방과 비장(무장), 수청기생이 번갈아 차례를 정해가며 받아갑니다. 우리 겨레의 아름다운 풍습이었지요. 《표준국어사전》에서 ‘물림’을 찾아보면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림 가운데는 상물림 말고도 큰상물림, 대물림, 안방물림, 밥물림 따위도 있습니다. 큰상물림은 혼인 때 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최근 MBC 연예뉴스에는 <"난 친일파 이인직 후손"…가수 전범선 고백 재주목>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랐습니다. 뉴스에서 “최근 전범선은 유튜브 채널 뮤지엄피의 영상에 출연해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가 이인직이라고 밝혔다. 이인직은 '혈의 누' 등을 집필한 일제강점기 신소설 작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된 친일파다. 해당 영상에서 전범선은 ‘저희 할아버지가 엄청난 친일파셨다.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을 때 옆에서 일본어 통역을 했던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였다. '우리나라를 넘기겠다'는 이완용의 말을 일본어로 통역한 사람이 이인직’이라고 설명했다.”라고 이어졌습니다. 전범선은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최근 한국의 200년 근현대사를 정리한 책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펴내기도 한 인재인데, 조상의 친일 해적을 고백한 대단히 용기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학창시절 이인직이 《혈(血)의 누(淚, 1906)》, 《귀(鬼)의 성(聲, 1908)》, 《치악산(雉岳山, 1908)》, 《은세계(銀世界, 1913)》 따위 신소설을 쓴 작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특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냈다. 이보다 앞서 상이 《무원록》이란 책은 사형에 관한 옥사를 판결하기 위한 것인데 본문이 까다로워 누구나 쉽게 알기 어렵다고 하여, 능은군(綾恩君) 구윤명(具允明)에게 언해를 짓도록 명하였다. 이때 와서 책이 완성되자 형조에 명해 간행하여 안팎에 널리 퍼뜨리도록 하였다.” 이는 《정조실록》 32권, 정조 15년(1791년) 3월 15일 내용으로 《무원록언해(無冤錄諺解)》를 펴내도록 했다는 기록입니다. 원래 《무원록(無冤錄)》은 '죽은 사람에게 원통함(冤)이 남지 않도록 하라'는 뜻을 담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 수사 및 법의학 지침서입니다. 본래 중국 원나라의 왕여가 1308년에 펴낸 책이었습니다. 먼저 세종은 최치운 등에게 명하여 원나라의 원본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증보하여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펴냈는데 1442년부터 조선의 모든 법률적 검시는 이 책의 규정을 따르도록 법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보하여 영조 24년 (1748년)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을 펴냈고, 정조 때에 한문을 모르는 지방의 하급 관리도 쉽게 읽고 수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글로 토를 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1442년) 8월 12일에는 “신개ㆍ권제 등이 지은 《고려사》를 올렸다>”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고려사》는 조선 전기에 왕명으로 편찬된 고려 왕조의 공식 역사서입니다. 《고려사》는 세종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하여 1451년(문종 원년)에 완성되었고, 김종서와 정인지 등이 주도하여 완성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총망라하여 오늘날 고려사 연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사료입니다. 임금의 연대기인 '세가', 제도와 문화를 기록한 '지', 인물 개인의 일대기인 '열전', '연표' 등으로 구성된 인물ㆍ제도 중심의 역사서입니다. 역사를 두려워하고 역사를 제대로 알려고 했던 세종은 사적 사실과 지식을 백성들과 더불어 삶의 등대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세종은 임금이 되자마자 잘못된 《고려사》를 바로 잡게 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통치 내내 매달려도 못 끝냈을 정도로 역사 기술을 철저히 하고자 했지요. 생전에 완성하지 못하고 문종 1년(1451)에야 인물과 제도 중심의 종합 역사서 곧 기전체 《고려사》 펴냄을 끝내고 그다음 해 시간 흐름 중심으로 한 편년체 《고려사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요즘 세계는 한국 문화를 'K-컬처'라고 부른다. K-팝, 드라마, 영화, 게임까지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BTS 아리랑'은 세계 음악 차트를 뒤흔들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전통 놀이를 글로벌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강남스타일'은 하나의 몸짓으로 전 세계를 연결했으며, 최근 애니메이션 'K-POP 데몬헌터스'는 음악과 서사가 결합한 통합형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이 모든 시작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서광일 대표는 도서출판 '더 로드'를 통해 펴낸 신간 《K-컬처의 원류, 우리가 잘 몰랐던 국악 이야기》에서 글을 쓰게 된 문제의식을 이처럼 밝힌다. "K-컬처는 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현대 산업 시스템에서 답을 찾지만, 지은이 서 대표는 "K-컬처의 성공은 산업이 아니라 문화의 구조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단언한다. 책에서 지은이는 "풍물의 장단, 판소리의 서사, 탈춤의 참여성, 그리고 아리랑의 공감 구조가 오늘날 K-컬처의 핵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라고 설명한다. 풍물은 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 시인이 시에 자기 시에 ‘동해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동해의 ‘해(海)’라는 한자말과 우리말 ‘바다’를 겹쳐서 쓰는 분명한 동의어 중복입니다. ‘역전앞’, ‘너른광장’, ‘처갓집’, ‘해변가’처럼 말입니다. 이를 보고 인공지능 <제미나이>에 ‘동해바다’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미나이’는 “동해 바다는 한반도 동쪽에 위치하며, 맑고 푸른 물과 깊은 수심, 아름다운 일출로 유명합니다. 강원도와 경상북도 등지의 해변은 넓은 백사장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많은 여행객이 찾는 대표적인 치유와 휴식의 공간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동해바다는 '동해'에 '바다'를 쓸데없이 덧붙여 쓰는 잘못된 말이다.”라고 지적했더니 “국어학적으로 '동해바다'는 틀린 말이 아닌 표준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동해바다'가 '동해'를 강조하여 이르는 단어로 정식 등록되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표준국어대사전》에 그렇게 돼 있더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다. 많은 사람이 쓴다고 하더라도 12년 이상 국어교육을 받은 사람들로서는 할 말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혜성(彗星)이 동방에 나타났는데, 꼬리가 있었으므로 별도로 문신(文臣)을 차출하여 살펴보게 하였다. 며칠 뒤에는 필수(畢宿, 28수(宿) 가운데 열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별자리. 서양 천문학의 황소자리)의 궤도 안에 나타났는데, 색깔은 희고 거리는 북극성에서 87도가 되었으며, 점점 다른 별자리로 옮겼으니, 북극성에서 1백 32도의 거리가 되었고, 10월에 이르러서 비로소 사라졌다.” 이는 《순조실록》 27권, 순조 25년(1825년) 8월 7일에 나오는 혜성(彗星, Comet) 곧 살별(꼬리별)이 나타났다는 기록입니다. 혜성은 태양계 외곽에서 해를 중심으로 타원 또는 포물선 궤도를 돌며 얼음과 먼지로 구성된 '더러운 눈뭉치(Dirty Snowball)' 형태의 작은 천체입니다. 해에 가까워질 때만 독특한 꼬리를 만들어내는 천체로, 우주 초기의 물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태양계 기원의 비밀을 푸는 종요로운 열쇠라고 합니다. 조선은 나라 기관인 관상감을 통해 혜성의 위치, 크기, 꼬리 길이 등을 날마다 철저한 기록으로 남겼는데 《조선왕조실록》에만 무려 1,575번 등장합니다. 특히 영조 35년(1759년), 모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국양금협회 임은별 단원이 중국 으뜸 권위의 양금 전문 국제대회인 ‘2026 제1회 둔황컵(敦煌杯) 양금 전문 연주대회’에서 으뜸 영예인 종합대상을 받으며 세계 처음 한국인 양금 국제대회 3년 연속 종합대상이라는 뜻깊은 기록을 세웠다. 올해 처음 열린 둔황컵 양금 전문 연주대회는 중국악기협회의 지도 아래 상하이민족악기제1유한회사가 주최한 국제 규모의 전문 경연으로 중국 양금 예술의 표준화ㆍ전문화ㆍ국제화를 목표로 닻을 올린 으뜸 권위의 양금 전문대회다. ‘양금의 둔황, 명성을 세계에 울리다’를 구호로 약 한 달 동안 진행된 이번 대회에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 체코, 베트남, 말레이시아, 프랑스, 인도, 이란 등 세계 각국의 우수한 연주자 약 800명이 참가했으며 중국인 외의 외국인 참가자만 70여 명에 달하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지난 7월 27일 열린 결선에서 임은별 단원은 뛰어난 음악성과 완성도 높은 연주를 인정받아 대회 최고상인 종합대상을 받았다. 특히 올해 처음 신설된 양금 전문 부문에서 대한민국 연주자가 초대 종합대상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한국 양금의 국제적 위상을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의미 있는 성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찜통더위 여전히 한창인데 도둑같이 찾아온 입추(立秋). 여름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까스로 마련되는 가을의 거점. 위는 정연복 시인의 <한여름의 입추>라는 시 일부입니다. 시인은 “찜통더위 여전히 한창인데 도둑같이 찾아온 입추(立秋).”라고 노래합니다.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13번째 입추(立秋)로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해가 지나가는 길인 황경(黃經)이 135°에 도달하는 때지요.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종요로운 때이므로 비가 내리지 않고 맑은 날씨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입추가 지난 뒤 비가 5일 이상 계속되면 비가 멎기를 바라는 기청제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는 비가 오기는커녕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위 시 <한여름의 입추> 뒷부분에는 “여름의 끝 아직 저만치 있어도, 가을 또한 첫발을 내디뎠으니. 익을 대로 푹 익어버린 한여름 속에, 머잖아 아기같이 가을은 생겨나리.”라고 언어의 농축을 합니다. 지금 불볕더위기 기승을 부려 열대야로 몸살을 앓고 온열환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잦지만, 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양평군(陽平君) 허준(許浚)은 일찍이 선조(先朝) 때 의방(醫方)을 펴내라는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이리저리 떠도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이어 생각건대, 선왕께서 펴내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길이 잘 든 말 1필을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책을 내의원이 국(局)을 설치해 속히 찍게 한 다음 안팎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 《광해군일기[정초본]》 32권, 광해 2년(1610년) 8월 6일 기록으로 허준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했고, 임금이 속히 펴내라고 했다는 기록입니다. 《동의보감》은 허준(1539∼1615)이 16년 동안의 연구 끝에 완성한 책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 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했는데 총 25권 25책으로 나무활자로 발행하였습니다. 《동의보감》은 내과학인 『내경편』, 『외형편』 4편, 유행병ㆍ곽란(토하고 설사를 하는 급성 위장병)ㆍ부인병ㆍ소아병 관계의 『자편』 11편, 『탕액편』 3편, 『침구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