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외교적인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사장님 부자 되시라고 확실하게 밀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부자 되면 한턱낼게요.” 미스 K가 응답했다. “제가 파스타 밸리 홍보 이사를 맡으면 어떨까요?” K 교수가 엉뚱하게 제안했다. “좋아요. 홍보 좀 많이 해 주세요.” 미스 K가 반색하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영업 이사 자리를 주세요.” 경영학 전공인 ㅊ 교수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영업도 매우 중요하지요. 잘 부탁합니다.” 미스 K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감사를 맡겠습니다.” ㅈ 교수도 질세라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님!” 미스 K가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K 교수가 화제를 돌리며 의미심장하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K리조트에서 혼자 살려면 심심하지 않아요?” “조금은 그래요. 10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좋은데, 때로는 심심하기도 해요. 그래서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고...” 뭐라고?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다” 이 여자는 분명히 혼자 사는 이혼녀임에 틀림이 없다. 결혼 생활이 순탄하다면 절대로 이렇게 발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계에서 파스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페스토소스 파스타라고 바질(허브의 한 종류)을 곱게 갈아 만든 신선한 자연의 향이 깃든 파스타를 많이 먹는다. 중부 지방에서는 넓적한 모양의 파스타로 만든 라자냐가 유명하다. 라자냐 위에 치즈 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남부 지방에서는 삼면이 바다라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해산물을 곁들인 파스타를 많이 먹는데, 대표적인 요리가 봉골레와 살딘파스타다. 파스타에 사용하는 치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유명한 것이 모짜렐라 치즈이다. 모짜렐라 치즈는 샐러드에 넣어서 먹기도 하지만 그냥 직접 먹기도 한다. “모짜르트 치즈라는 것도 있어요?” K 교수가 모처럼 끼어들었다. “모짜르트 치즈가 아니고, 모짜렐라 치즈랍니다.” ㅇ 교수가 교정해 주었다. “아, 그래요? 이거 참.... 음식 분야는 통 캄캄해서.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그만 무식이 탄로 났네요.” K 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큰길가도 아니고 장사가 됩니까?” ㅈ 교수가 물었다. 미스 K가 대답했다. “낮에는 학생들이 많이 오지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맥주는 1잔만 먹어서 운전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 시내 같으면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여기는 시골이고 또 집에까지 골목길로 가면 2km 정도에 불과하므로 염려할 것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여는 순간, K 교수는 “아차,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간수업은 밤 9시 20분이면 끝난다. 보통 때는 강의 끝나고 손 씻고 바로 퇴근하면 9시 40분에 집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12시가 넘어버렸으니, 아내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K 교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본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 야간 강의 끝나고 원고를 쓸 게 좀 있어서 늦었어요.” “이상하네. 내가 연구실로 전화해도 안 받던데.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그래요? 왜 전화가 안 울렸을까? 아, 알았다. 내가 강의하는 동안에 연구실 전화를 학과 사무실로 돌려놓았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지. 조교는 9시 반이면 퇴근하니까.” K 교수는 순간적으로 둘러대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이사 온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마을과 호수 사이는 모두 논이고,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에는 젖소 목장도 있고, 마을 안쪽 야산 아래에는 작은 절이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작은 도로는 경운기가 다니는 길인데, 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논과 야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약 20가구가 산다. 수기리는 작고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었다. 수기리로 3월에 이사 오면서 호돌이는 수기분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새로 전학한 학교는 전교생이 38명밖에 안 되는 분교였다. 정확한 이름은 봉담 초등학교 수기 분교다. 분교에는 선생님이 3명뿐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교실 하나에서 2개 학년을 합반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호돌이가 전학 와서 3학년은 모두 4명이 되었다. 전학하고서 학교에 다녀온 첫날 호돌이가 “엄마, 나 이제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우리 반에서 4등이네”라고 말해서 온 가족이 함께 웃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은 남자였다. 시골 분교로 전학을 온 이후 호돌이는 학교에서 마음 놓고 장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사실 K 교수가 시골로 이사 온 것은 둘째 아들인 호돌이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호돌이는 형보다 무려 10년 늦게 늦둥이로 태어났다. 호돌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열리던 해에 태어났고, 당시 올림픽 대회의 마스코트가 풍물굿 모자 쓴 호돌이였는데, K 교수는 아들 이름을 호돌이라고 지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살던 K 교수는 호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둘째 아이는 원래 장난이 심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편이지만 이 녀석은 장난이 심했다. 남자애들이 장난하는 것이야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녀석은 도가 지나쳤는지 날마다 선생님에게서 벌을 받고 야단맞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남자면 또 모르겠는데,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는 여선생님이 대부분이다. 호돌이의 담임 선생님도 20대 후반의 여선생님이다. 담임 선생님은 호돌이 때문에 수업이 안 된다느니 집에서 주의를 좀 주라느니 등등 아내를 통해서 들어보니 문제가 심각하였다. 아내는 늦둥이로 낳은 호돌이에게 사랑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호돌이가 사고를 쳤다고 젊은 여선생님이 젊지 않은 아내를 학교로 호출하면, 아내는 기분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많으니 K 사장님 금방 부자 되겠네요.” “그러면 좋겠어요. 오늘은 유달리 손님이 많네요. 아마 K 교수님이 오셔서 그런가 봐요.” “그렇다면 내가 매일이라도 오겠습니다." "그러시면 더 좋고요.“ “부자가 빨리 되어서요?” “그렇기도 하고, K 교수님을 매일 볼 수 있으면 그것도 좋지요.” “정말이에요?” “정말이라고 믿으세요? 호호호.” 미스 K는 스스럼없이 농담을 해가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K 교수는 맥주를 하나 더 주문하여 미스 K와 함께 세 사람이 쨍하고 잔을 부딪쳤다. K 교수는 직접 물어볼 수는 없고 대화 중에 미스 K의 이혼 여부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여 보았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K 교수는 미스 K의 친구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그런데, 미세스 정이라고 하셨죠? 아이들은 다 컸나요?” “아들 하나인데 거창고등학교 1학년에 다닙니다.” “거창이라면 경남 거창 말입니까?” “예, 거기에 기독교 대안학교가 하나 있어요. 좋은 학교에요.” “아, 신문에서 소개된 기사를 한번 보았어요. 그런데 거기는 학생들이 전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하죠?” “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살다가 1년 전에 학교 후문 근처로 이사를 왔다. 큰아들이 작년에 K 교수가 근무하는 S대에 입학하였다. K 교수는 통학 시간도 줄이고 전원생활도 즐길 겸 학교 근처 농촌 마을로 이사 왔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으면 20분, 자전거로는 6분, 차로는 3분 거리였다. 시골 마을에는 버스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는 이제 아내 차지가 되었다. K 교수는 비가 오지 않으면 걸어서 학교에 가고 걸어서 집에 온다. 다른 교수들은 그러한 K 교수의 삶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전원생활은 평화롭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재미있었다. 아내도 전원생활에 만족하였고, 아이들도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였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순탄한 삶이었다. 그러나 전원생활은 도시 생활과 견주면 단조롭고 약간은 지루하였다. 남자의 삶이 지루해질 때 사건이 발생하는 법이다. 그날은 야간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었다. 야간 수업이 끝난 후 밤 10시쯤에 K 교수는 자기가 쓴 수필집 앞 간지에 두 줄로 ‘K 사장님에게 저자 드림’이라고 써서 봉투에 넣었다. 그러고는 늦은 밤에 차를 몰아 미녀식당으로 향하였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예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미스 K는 사귀어볼 만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미모와 지성과 재능을 겸비했다면 도전해 볼만한 값어치가 있는 여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의 이혼 여부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K 교수는 조강지처 아내를 팽개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미스 K가 혼인해서 잘 살고 있다면 식당 여주인 이상의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정말이지, 두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사랑의 불장난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스 K가 이혼녀라면? K 교수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모범생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인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산 친구들을 보니 자기의 삶이 너무 단조롭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술집 여자, 유부녀, 또는 이혼녀를 대상으로 한 두 번은 외도 경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는 맨정신으로는 잘 못하고 으레 술자리에서 꺼내게 되는데, 평생 한 우물만을 파온 K 교수로서는 그것이 그렇게 부러워 보인다. 어떤 때에는 친구가 유능하고 자기는 무능해 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ㅁ 교수는 K 교수에게 《월간 에세이》라는 잡지를 소개하였다. ㅁ 교수는 그 잡지에 ‘과학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는데, ‘환경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한번 연재해 볼 생각은 없겠느냐고 물어본다. 자기가 아는 편집자를 소개해 주겠단다. K 교수는 “생각해 보겠다”라고 미지근한 답변을 했다. ㅁ 교수의 말에 의하면 월간 에세이에 쓰는 글은 길이를 두 쪽 이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독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참을성이 없다는 점이다. 다섯 쪽을 넘어가면 벌써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글은 짤막해야 잘 읽히고, 그래서 길이를 두 쪽 이내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장편소설을 써서 인세 받기는 아예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파게티는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불고기 스파게티에 불고기는 없었지만, 매운맛이 약간 나도록 고추장을 넣은 소스를 쳐서 만들었는데, 라면에 불고기 소스를 넣은 것처럼 그런대로 우리 입맛에 맞았다. 아마도 불고기 소스를 친다고 해서 불고기 스파게티라고 이름을 붙였나 보다. 음식 이름이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동안 K 교수는 전공과목 교재를 2권 써 본 경험이 있다. 전공 교과서의 경우 워낙 시장이 좁다 보니 한 해에 1,0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낄 수 있다. 계산해 보시라. 한 학과의 정원이 40명이라면 25개 대학교에서 교재로 선택해야 1,000부가 팔린다. 공대교수로서 전공 서적 아닌 수필집을 내는 일은 흔치 않다. 수필집의 경우 10만 부는 팔려야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인세는 대개 정가의 10%이다. 책 가격이 10,000원이면, 한 권의 인세가 1,000원이고 10만 부가 팔리면 1억 원의 인세가 들어온다는 계산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1,000원씩이 쌓여도 10만 부면 큰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워낙 책을 안 읽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10만 부 팔리기가 어렵다. 책 대부분은 초판 2,000부를 넘기지 못한다. 출판 역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1954년에 발표된 정비석 작가의 소설 《자유부인》이다. 이 작품은 대학교수 부인의 불륜을 주제로 했는데,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으며 사회적인 반향이 엄청나게 컸다. 《자유부인》은 10만 부가 팔려서 ‘우리나라 첫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