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인 수요일 점심시간에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수들 몇이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축제 이야기가 나오고 미스 K 이야기가 나왔다. 미스 K가 미녀라서 그런지 매우 도도하다고 ㅌ 교수가 말했다. K 교수는 그녀가 그렇지 않다고,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이라고 부인하였다. 그러다가 K 교수는 미스 K를 축제에 초대할 수도 있다고 얼떨결에 밀해 버렸다. ㅌ 교수는 그 말을 받아서 그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결국은 그러면 내기를 하자는 데에까지 진전이 되었다. 미녀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걸고 점심내기를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두 교수는 증인으로 내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내기를 걸고 나서 K 교수는 연구실로 돌아왔다. K 교수는 바쁜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인 3시쯤에 미녀식당으로 전화했다. 마침, 미스 K가 직접 받았다. K 교수는 내일 축제에 데리러 갈 테니까 예쁜 옷 입고 식당에서 오후 3시에 기다리라고 전했다. 미스 K와 통화한 후 K 교수는 내기에 참여한 다른 세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오후 3시 30분에 K 교수의 학과 학생회에서 만든 천막주점으로 오라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통화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날도 K 교수는 아내와 2시간 뒤에 할인점 입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K 교수는 2층에 있는 책방에 들렸다. 신간코너에 가서 이책 저책 들여다보기도 하고, 여행에 관한 책과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둘러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수필 코너에 가보니 앗, 《진하게 블랙으로》라는 책이 눈에 띄지 않는가! 단 한 권 남은 책을 꺼내어 보니 출판년도가 1991년으로 찍혀져 있었다. 아마도 절판되기 전 마지막 한 권이 몇 년 동안 K 교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표지를 넘기다 보니 미스 K의 젊었을 때 사진이 전면에 나타났다. 눈이 아주 총명해 보이고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K 교수는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고 책을 샀다. 나온 지 7년이 지난 1998년에 책의 정가는 3,800원이었다. 소설은 6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장의 제목이 평범하지 않고 특이했다. 제1장 조금 슬프게 제2장 조금 부드럽게 제3장 조금 화려하게 제4장 더 세게 제5장 조금 가볍게 제6장 다시 처음부터 추상적인 장 제목을 읽으면서 K 교수는 불경스럽게도 선정적인 내용을 연상하였다. 집에 들어온 K 교수는 밤새워 책을 통독하였다. 쪽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여자의 말은 남자의 말과 달리 때로는 모호하다. 이성적이며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초대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거절하는 것인지 어정쩡하기만 하다. 그러나 말하는 어조와 분위기로 보아서는 받아들인다는 뜻 같기도 하고... "거절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겠습니다. 축제는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금요일 쌍쌍파티로 끝납니다. 학생들이 학과별로 주점이며, 타로점, 또뽑기, 솜사탕, 물풍선 터뜨리기, 연못에서 보트 타기, 세발자전거 타기 등 여러 가지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으니 목요일에 구경 한번 갑시다.“ “......” 미스 K는 대답하지 않고 예쁜 자태로 빙긋이 웃기만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자의 침묵은 긍정’이라는 속설을 믿어야 하나? 매주 일요일 K 교수는 아내와 둘째 아들을 차에 태우고 아침 일찍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대형 교회에 예배 보러 간다. 강남에서 수기리로 이사 온 뒤, 처음에는 집에서 가까운 시골교회를 다녔다. 시골교회는 교인이 한 50명 될까 말까 아주 작았다. 목사님은 마을 토박이로서 연세는 60이 넘으셨는데, 원래는 장로님이었단다. 신앙심이 좋으신 장로님은 50 넘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미스 K에게 종교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일요일 예배만 참석하는 일요교인인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 교회에 언니 따라 다닌다고 한다. K 교수 역시 아내 따라 일요예배에 참석하는 수준의 교인이기 때문에 설교 시간에 가끔 졸기도 한다. “저도 교회 가서 가끔 졸아요. 예배 끝나고 아내는 야단을 치지요. 그러면 내가 항상 대답하는 말이 있습니다.” “뭔데요?” “내가 조는 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고 목사님 책임이다.” “왜요?” “설교를 지루하지 않게 하면 자라고 해도 자지 않고 열심히 들을 텐데, 내가 조는 것은 설교가 재미없거나 지루하다는 증거라고 말입니다.” “말이 되네요. 호호호...” 설교가 지루하면 교인이 졸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교수의 강의가 지루하면 학생은 졸게 된다. K 교수는 모든 과목에서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강의를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였다. 내가 강의하는 도중에 조는 사람을 발견하면 그 즉시 나는 강의를 중단하고 ... (잠간 쉬었다가) ‘내 탓이요, 내 탓이요’라고 말하면서 내 가슴을 칠 것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해마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이 되면 교수들은 학생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스승에게 꽃을 선물하는 학생이 전에는 더러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도 많이 변하였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가 나날이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수는 그저 지식의 전달자에 머물고 학생 또한 ‘나는 등록금 내고 당신에게 취업에 필요한 지식을 배우겠다’라는 자세로 대한다. 스승에게서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하는 일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전통은 끈질긴 것이어서 개인적인 선물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학생회에서 꽃이나 넥타이 등의 가벼운 선물을 주는 일은 여전했다. 1998년 스승의 날에 K 교수는 주간 학생회장과 야간 학생회장으로부터 각각 장미와 안개꽃이 섞여 있는 꽃다발을 받았다. (당시 K 교수의 학과는 주간 40명, 야간 40명 정원이었다. 주야간이 있어서 학생회장이 두 명이었다.) K 교수는 꽃다발 하나는 풀어서 연구실에 있는 꽃병에 꽂고, 나머지 한 다발을 들고서 밤 10시쯤 미스 K를 찾아갔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서 꽃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언젠가 비디오로 보았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창(娼)”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사창가를 찾았다. 여자는 할아버지가 낑낑대기만 하고 잘하지 못하자 면박을 주었다. “할아버지! 빨리하고 내려가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렇게 구박하지 마아. 할머니가 다녀오라고 해서 왔어.” 속설에 따르면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그걸 해서 성공하면 그 여세가 두세 달은 가고, 따라서 할머니는 덕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현명한 할머니는 젊은 여자에게 한번 다녀오라고 늙은 할아버지에게 돈을 쥐여 준다나. 출처는 알 수 없지만 일리가 있지 않는가? ㅋ 교수는 최근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골프는 사실 젊어서부터 배워야 자세도 제대로 잡히고 점수도 잘 나오는 운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골프가 돈이 드는 비싼 운동이기 때문에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골프를 배울 수가 없다. 1990년대 이후에는 나라 경제 사정이 좋아져서 요즘 대학생은 학교에서 1학점짜리 골프 과목을 누구나 수강하여 골프를 배울 수가 있다고 한다. 경제가 발전하니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K 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외교적인 발언을 하였다. “우리가 사장님 부자 되시라고 확실하게 밀어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부자 되면 한턱낼게요.” 미스 K가 응답했다. “제가 파스타 밸리 홍보 이사를 맡으면 어떨까요?” K 교수가 엉뚱하게 제안했다. “좋아요. 홍보 좀 많이 해 주세요.” 미스 K가 반색하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영업 이사 자리를 주세요.” 경영학 전공인 ㅊ 교수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영업도 매우 중요하지요. 잘 부탁합니다.” 미스 K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나는 감사를 맡겠습니다.” ㅈ 교수도 질세라 한 자리를 차지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님!” 미스 K가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K 교수가 화제를 돌리며 의미심장하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K리조트에서 혼자 살려면 심심하지 않아요?” “조금은 그래요. 10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참 좋은데, 때로는 심심하기도 해요. 그래서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고...” 뭐라고?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싶다” 이 여자는 분명히 혼자 사는 이혼녀임에 틀림이 없다. 결혼 생활이 순탄하다면 절대로 이렇게 발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계에서 파스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페스토소스 파스타라고 바질(허브의 한 종류)을 곱게 갈아 만든 신선한 자연의 향이 깃든 파스타를 많이 먹는다. 중부 지방에서는 넓적한 모양의 파스타로 만든 라자냐가 유명하다. 라자냐 위에 치즈 가루를 뿌리기도 한다. 남부 지방에서는 삼면이 바다라서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해산물을 곁들인 파스타를 많이 먹는데, 대표적인 요리가 봉골레와 살딘파스타다. 파스타에 사용하는 치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유명한 것이 모짜렐라 치즈이다. 모짜렐라 치즈는 샐러드에 넣어서 먹기도 하지만 그냥 직접 먹기도 한다. “모짜르트 치즈라는 것도 있어요?” K 교수가 모처럼 끼어들었다. “모짜르트 치즈가 아니고, 모짜렐라 치즈랍니다.” ㅇ 교수가 교정해 주었다. “아, 그래요? 이거 참.... 음식 분야는 통 캄캄해서.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텐데, 그만 무식이 탄로 났네요.” K 교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큰길가도 아니고 장사가 됩니까?” ㅈ 교수가 물었다. 미스 K가 대답했다. “낮에는 학생들이 많이 오지만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맥주는 1잔만 먹어서 운전하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 시내 같으면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여기는 시골이고 또 집에까지 골목길로 가면 2km 정도에 불과하므로 염려할 것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여는 순간, K 교수는 “아차, 너무 늦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간수업은 밤 9시 20분이면 끝난다. 보통 때는 강의 끝나고 손 씻고 바로 퇴근하면 9시 40분에 집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12시가 넘어버렸으니, 아내는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K 교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본다. “왜 이렇게 늦게 와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 야간 강의 끝나고 원고를 쓸 게 좀 있어서 늦었어요.” “이상하네. 내가 연구실로 전화해도 안 받던데. 두 번이나 전화했는데...” “그래요? 왜 전화가 안 울렸을까? 아, 알았다. 내가 강의하는 동안에 연구실 전화를 학과 사무실로 돌려놓았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지. 조교는 9시 반이면 퇴근하니까.” K 교수는 순간적으로 둘러대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가 이사 온 화성군 봉담면 수기리는 작은 농촌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다. 마을과 호수 사이는 모두 논이고,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른다. 마을 가운데에는 젖소 목장도 있고, 마을 안쪽 야산 아래에는 작은 절이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작은 도로는 경운기가 다니는 길인데, 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논과 야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약 20가구가 산다. 수기리는 작고 아름다운 전원 마을이었다. 수기리로 3월에 이사 오면서 호돌이는 수기분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다. 새로 전학한 학교는 전교생이 38명밖에 안 되는 분교였다. 정확한 이름은 봉담 초등학교 수기 분교다. 분교에는 선생님이 3명뿐이었다. 선생님 한 분이 교실 하나에서 2개 학년을 합반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호돌이가 전학 와서 3학년은 모두 4명이 되었다. 전학하고서 학교에 다녀온 첫날 호돌이가 “엄마, 나 이제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우리 반에서 4등이네”라고 말해서 온 가족이 함께 웃었다. 다행히도 담임 선생님은 남자였다. 시골 분교로 전학을 온 이후 호돌이는 학교에서 마음 놓고 장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