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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펜스 룰을 어기면서 미스 K를 만나고 있다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점심 식사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조교를 불렀다. 조교는 서울에서 통근차를 타고 출퇴근한다. K 교수는 《캘리포니아 좋은 날씨》라는 책을 사 오라고 조교에게 제목을 적어주었다. 다음 날 조교에게서 1, 2권으로 된 책을 받아서 책장을 넘겼다. 안 표지에는 책의 저자인 남자가 손에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남자는 남자가 잘 안다. 강인한 인상을 주는 호남형 남자였다. 여자들이 좋아할 그런 남자였다. 인물 소개를 읽어 보니 그 남자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약관인 스무 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단에 데뷔했단다. 그 뒤 연극인으로 성장하였는데, 유명한 극작가 동랑(東浪) 유치진(1905~1974)이 창설한 동랑 극단의 기획실장을 오랫동안 맡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연극, 영화, 출판, 광고,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일대 돌풍을 일으킨 인물로 소개되었다. 또한 그는 뒤늦게 기업계에 뛰어들어 나산 그룹 기조실장, 논노 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 남자는 상도 많이 탔다. 연극 <오늘 같은 날>로 1994년 한국희곡문학상(대상)을 받은 거 말고도 일간스포츠 광고상, 중앙일보 광고대상, 기독교 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 남자의 경력은 평범한 K 교수에 견주면 무척이나 화려했다.

 

다시 한 장을 넘겼다. 첫 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이 글의 사건과 인물, 상황과 구성은 모두 허구이며 설령 실제와 닮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따름이다. 어쩔 수 없이 소설이란 또 하나의 거울일 수밖에 없지만...”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연재소설에 대해서도 필자는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둘째 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살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모든 남자에게는 적어도 자신들만 아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의 네 사람의 여자가 있다고. 또 그 그림자가 있다고. 나는 내 인생의 복판에서 겪은 그 사계절의 이름을 민들레ㆍ진달래ㆍ개나리 그리고 찔레라고 이름했다.... 언제나 풋나기인 나를, 언제나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변함없이 믿어주며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나의 아내요 삶의 진정한 동지인 진달래에게 이 글을 바친다.”

 

그 남자의 소설 속 진달래는 미스 K가 틀림없다는 것을 K 교수는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의 소설을 밤새워서 흥미롭게 읽었다. 자전적인 소설임이 분명하였다. 전남 벌교에서 태어나 문학 소년으로 성장한 저자는 연극계에 종사하다가 미스 K를 만나 1981년에 혼인한다. 혼인한 뒤에 기업인으로 자리를 옮겨 돈도 잘 벌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 남자는 한때 잘 나가던 나산그룹을 거쳐서 패션 회사인 논노그룹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논노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는 갑자기 미국으로 피신하게 된다. 한국에 들어오면 그는 빚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 의류 패션계의 선두 주자였던 논노‘Non-No’는 회사 이름이면서 대표 브랜드였다. 논노 회사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부동산 투자 실패로 1992년에 처음 부도를 내었다. 논노 회사는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재기를 노렸으나 1995년에 다시 한번 최종 부도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설 속에서 그 남자는 그리운 아내가 있는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줄을 타고 빌딩의 외벽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귀국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내와의 갈등 장면이 나오지만, 이혼했다는 표현은 없었다.

 

그 남자의 회사가 부도가 나서 갑자기 미국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더니 옷가지 몇 개만 챙긴 채 다급하게 집을 나갔다. 아내와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는 김포 공항으로 갔는데, 그게 그만 기약 없는 이별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남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소설을 썼다.

 

며칠이 지나 K 교수는 아침 10시 20분쯤에 가정대학의 ㅁ 여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점심 한번 같이 하자고. 이미 두어 번 같이 식사한 적이 있는 ㅁ 여교수는 좋다고 승낙했고, K 교수가 12시 45분에 가정대학 앞으로 차를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그 시간이면 다른 교수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시간이다. K 교수는 같은 학과의 바 교수와 함께 갔다. K 교수는 못생긴 외모와는 달리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S대학에서 여교수들과 점심 식사를 가장 많이 한 교수일 것이다.

 

불혹의 나이인 40살에 교수가 된 이후, K 교수가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학교에서 여자 교수와 식사할 때는 단둘이 만나지 않고 반드시 2:1로 만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을 K 교수는 예외 없이 철저히 지킨다. 대개는 같은 학과의 후배 남교수와 동행하여 여교수를 만난다. 이러한 원칙 때문에 K 교수는 학교에서 많은 여교수와 만나 식사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도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별다른 소문 없이 잘 지내왔다.

 

이러한 원칙은 K 교수가 이전 직장인 연구소에서 터득하였는데 어찌 보면 삶의 지혜이다. 이전 직장에서 한번은 여직원과 둘이 직장 근처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다른 부서 여직원이 멀리서 살짝 보였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고 소문은 점점 변질되고 아주 곤혹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K 교수는 직장에서 여자와 함께 식사할 때는 절대로 1:1로 만나면 안 된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 것이다.

 

*펜스 룰(Pence Rule)은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배우자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 남자들의 행동 원칙을 말한다. 미국의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2002년 의회 전문지인 ‘더 힐(The Hill)’과의 인터뷰에서 “아내를 뺀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 동반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이 발언이 2017년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로 다시 조명을 받으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서 유명해졌다.

 

펜스 부통령 이전에 세계적인 복음 전도사였던 빌리 그래엄 목사(1918~2018)가 사역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4가지 원칙을 1948년에 선언한 적이 있다. 첫 번째가 성적 순결로서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여행하거나, 만나거나, 식사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이다. 펜스 룰의 모태가 된 행동 원칙이라고 볼 수 있다.

 

K 교수는 펜스 룰을 어기면서 미스 K를 만나고 있다. 겁 없는 남자의 위험한 도박이라고 볼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