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후, K 교수는 연구 보고서의 결론 부분을 쓰느라고 밤 11시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퇴근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서기 직전 갑자기 미스 K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미스 K는 혼자서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K교 수가 “잠간 들를까요?”라고 물었다. 미스 K는 “네. 기다릴게요~ 오세요~~”라고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남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감미로운 응답이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다니 방해받지 않고 모처럼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다. S대가 있는 봉담면은 아직 시골이라서 별을 쉽게 볼 수 있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소확행(小確幸)’이라던가? 차를 운전하면 연구실에서 미녀식당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K 교수는 미스 K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K 교수는 지난번 축제 때에 별난 선물을 하나 사 두었다. 학생들은 축제 때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장사를 한다. 어떤 학과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대여해 주기도 한다. 어떤 학과에서는 연못에서 탈 수 있는 보트를 빌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레이브 할아버지가 바둑을 배운 뒤에 체스를 그만둔 까닭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이니까 모두 361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체스는 가로세로 8줄, 그러니까 모두 64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변화가 많고 재미있다. 바둑 모임 회장인 브라운 씨는 논리학 교수답게 바둑과 체스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글을 시러큐스 대학 학생회에서 발행하는 일간 신문(The Daily Orange)에 기고한 적이 있다. K 교수는 그 글을 우연히 읽어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첫째, 바둑은 시간이 갈수록 판이 채워지는데 체스는 시간이 갈수록 판이 비워진다. 알다시피 체스는 상대방 말을 하나씩 잡으면 판에서 내려놓는다. 물론 바둑에서도 무리진 돌들을 포위하여 잡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바둑판에는 돌이 많아지고 공간이 적어진다. 둘째로, 바둑에서 죽은 돌은 게임이 끝나면서 상대방 집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곧 죽은 돌 하나가 한 집과 맞먹는 역할을 한다. 체스에서 죽은 돌은 임무가 끝난다. 그러나 간혹 졸(pawn)이 상대방 진지 끝줄까지 전진하면 죽은 말 하나를 다시 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공과대학의 ㅍ 교수와 ㅎ 교수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미녀식당으로 갔다. 키가 훤칠하고 예쁜 종업원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뒤, 컵에 물을 따르는 종업원에게 사장님 계시느냐고 물으니 출타중이란다. “아가씨는 여기 종업원이냐?”라고 물으니 인접한 대학의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항공관광과 2학년 학생이라고 한다. 항공관광과란 스튜어디스를 배출하는 학과다. 스튜어디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는 직종이다. 요즘 새로운 추세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던 이공계열보다는 연극영화과, 신문방송과 등 연예계와 언론계에 사람이 몰린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를 모집하면 수천 명이 모여들어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다. 과거에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이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 세상이 변하였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연예인 되기가 판검사 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미녀를 보러 왔는데 미녀가 없으니 식사하면서 하는 대화가 약간은 김빠진 맥주 같다. 대화의 주제는 남자들의 단골 메뉴인 여자 이야기가 아니고 어쩌다 보니 바둑이야기가 나왔다. ㅍ 교수가 “러시아의 체스 최강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