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엊그제(8일)가 한로(寒露)였다. 이제 슬슬 찬이슬이 내리는 계절이다. 한가위 내내 가을비가 추적거리고 내리더니 기온이 확 떨어진 느낌이다. 이제 반소매옷은 어림이 없고 긴소매옷에 겉옷까지 갖춰야 할 때다. 강남 갔던 제비가 청명(4월 5일) 무렵에 우리나라로 왔다가 한로(10월 8일) 무렵에 돌아간다는 말처럼 철새들도 우리나라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봄이 되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올봄, 제비가 찾아와 둥지를 틀 무렵 일본인 지인인 마츠자키 에미코 씨가 한국을 찾았다. 그녀가 한국에 올 때는 ‘제비의 박씨’ 같은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오는데 가장 반가운 선물은 ‘일본 소식’이다. 일본 소식이야 인터넷으로 실시간 볼 수 있지만, 마츠자키 씨가 갖고 오는 선물은 좀 특이하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단체인 <시민이 만드는 일본·코리아 교류 역사박물관인 고려박물관(市民が作る日本とコリア(韓国・朝鮮)交流の歴史博物館), 아래 ‘고려박물관’>에 관한 소식을 잔뜩 가져오기에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선물이다. 참고로 마츠자키 에미코 씨는 고려박물관 회원이다. 물론 고려박물관은 별도로 누리집(https://kouraiha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그 역사를 보자. 《세종실록》 25년(1443) 12월 30일 기사에 ‘훈민정음을 창제하다’라고 되어 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ㆍ중성(中聲)ㆍ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세종실록⟫25/12/30) 이후 잠잠하다가 다시 세종 28년에 기사가 나온다. 3년 동안 훈민정음에 대한 음운연구와 구체적인 시행방안 등의 연구가 계속되었을 것이다. 이어 세종 28년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진다. 어제와 예조 판서 정인지의 서문이 있다. “이달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이루어졌다. 어제(御製)에,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살이 반백 년에 이르지만, 여전히 한국어로만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재일 소설가 김길호 작가다. 꼭 일본어에 한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외국에 건너가 처음 몇 해는 언어의 부적응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10년, 20년, 50년... 세월이 흐르면 모국어보다는 현지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쯤 되면 현지어가 모국어 보다 우선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김길호 작가의 일본어는 한국어를 뛰어넘는 언어일 텐데 왜, 무슨 까닭으로 그는 한국어 글쓰기를 고집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들을 절호의 기회가 지난 9월 26일 부산 동의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이경규 소장)주최의 <제24회 국제학술대회 '재일한인 연구 10년, 연구 성과에 대한 회고와 성찰', 아래, ‘동의대 재일한인 연구 학술대회’>였다. 평소 소식을 주고받던 김 작가로부터 ‘동의대 재일한인 연구 학술대회’ 소식을 들은 것은 행사 1주 전쯤이었다. 보내온 행사 일정을 보니 <주제1> 발표자로 재일동포 2세인 오문자 수필가의 <가교 역할을 희망한 재일코리안 여성의 염원>이고, 김길호 작가는 <주제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