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풍양 조씨는 열다섯 살 나이로 동갑내기 남편 김기화와 결혼을 했지만, 스무 살이 되던 1792년에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남편을 좇아 세상을 뜨려고 했지만, 남편을 잘못 보살펴서 일찍 죽게 한, 복 없는 여자로 남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야기와 함께 자기의 기구한 삶, 남편의 발병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한글로 기록해서 《자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은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풍양 조씨의 생애를 통해 당대 사회의 분위기와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 Pungyang Jo-ssi’s Personal Record: Documenting a Life of Sharing A book vividly written in Hangeul by a woman of the Pungyang Jo clan [Women and Events That Shined a Light on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승윤, 홍윤수, 이슬기 등, 3인이 제창한 <계면 두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였다. <계면-界面>은 <계면조-界面調>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고, <두거-頭擧>는 첫 부분을 높이 들어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점, 이 곡에 얹어 부르는 노랫말은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七月) 기망(旣望)”으로 시작하는 시조시(時調詩)로, 자연 속에서 시(詩)와 술을 즐기던 당시 사대부들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풍류(風流)문화의 멋이 가감 없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함께 제창한 홍현수, 이슬기는 이 분야의 석ㆍ박사 과정을 수료한 정통파 가객으로 전국 경연, 또는 전문 악단과의 협연(協演), 그리고 개인 독창회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현재에도 많은 제자들을 지도해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계면조 평롱-平弄>과 이 노래를 불러 준, 가창자들을 소개해 본다. <계면조 평롱>이란 악곡은 앞에서 소개한 <이수대엽>이나 <중거>, <평거>, <두거> 등의 악곡 이름과는 다르게 <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광산김씨상언문〉은 1727년 10월에 노론 4대신 가운데 한 사람인 이이명의 아내자 한글 문학의 대가인 김만중의 딸 김씨 부인이 영조에게 손자 이봉상과 시동생 이익명을 구하기 위해 올린 상소문이다. 신임옥사 때 노론 대신이었던 남편은 사형을 당했고 영조가 집권한 뒤 복권이 되었지만, 다시 소론이 집권하자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속이고 도망간 이봉상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이명의 동생 이익명은 이봉상이 도망가는 것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씨 부인은 손자를 피신시킨 것은 자신이 한 일이라며 두 사람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글을 올리게 된 것이다. 상소문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공적 글 쓰기다. 시골에 사는 이름 없는 선비도 상소문을 통해 자기 뜻과 주장을 펼칠 만큼 백성이라면 누구나 올릴 수 있었다. 주요 상소문은 《조선왕조실록》에 전문이 수록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소문은 공식 행정 문서라서 한자로만 작성해야 했다. 그러한 시대에 여성이 상소문을 한글로 작성한 것은 남성 중심의 문자 권력에 균열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고 여성 상소문의 전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