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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과 이종무

큰일을 치르노라면 크고 작은 일이 많고 [‘세종의 길’ 함께 걷기 75]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다. 세종 때는 작은 전쟁이라 할 이민족과의 전투로는 대마도 정벌과 파저강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는 영웅 내지 관심받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하나로 대마도 정벌의 이종무가 있다. 이종무는 고려, 태종 때부터의 인재라 할 수 있다. 대마도 정벌은 태종의 지휘로 이루어졌으나 세종대에 이루어진 일이라 세종의 치적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에는 일본과의 마찰 연장 선상에서 왜구정벌이라는 상징적 공적 때문으로 대마도가 자주 논의되기도 한다. 이종무(李從茂, 1360년~1425년)는 공민왕 때 태어났고 기록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조선 건국 뒤에도 태조에서 세종에 걸쳐 조선 초기 4대 임금을 모셨다. 2차 왕자의 난 때에는 이방원의 편에 가담하여 이방간의 군사를 전멸시켰다. 대마도정벌 일본 왜구는 고려 말부터 자주 조선반도를 침입하고 있었다. 세종 1년 5월에 충청도 비인현(서천)에 수백 척의 왜인 배가 침입해 피해를 주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과 교역을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었다. 이에 세종 1년 마침내 태종이 주관하여 6월 19일 그들이 비어 있을 대마도 정벌이 이루

오늘은 대서, 더위로 염소뿔 녹는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4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상엔 온통 더위 천지 광한전(달나라에 있다는 궁전) 월궁으로 달아날 재주 없으니 설악산 폭포 생각나고 풍혈 있는 빙산이 그리워라” 이는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이 시문을 모아 펴낸 《동문선(東文選)》이란 책에 나오는 시입니다. 온통 더위 천지에 설악산 폭포와 풍혈(늘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바위틈)이 있는 빙산이 그립다고 노래합니다. 이제 무더위가 절정에 올라 어제는 중복(中伏)이었고, 오늘은 24절기의 열두째 대서(大暑)입니다. 이때는 무더위가 가장 심해서 "더위로 염소뿔이 녹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한여름 지금보다 훨씬 더 무더위와 힘겹게 싸웠습니다. 함부로 의관을 벗어던질 수 없는 법도가 있었으니 겨우 냇가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멀리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자리 위에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명 조식 같은 사람은 제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에 올랐고, 추사 김정희는 한여름 북한산에 올라 북한산수순비 탁본을 해올 정도였습니다. 어쩌면 남

개막 이틀 전, 도쿄 올림픽 무사히 치러질까?

[맛있는 일본이야기 61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주최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과연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현지에서는 ‘열린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한 응원 준비가 한창이다.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7월 21일 보도를 보면, ‘선수들을 직접 못 만나지만 우리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는 제목 아래 종이학으로 브라질 국기를 만든 도쿄 시내 한 초등학교를 소개했다. 그 내용은 “선수와 직접 교류할 수 없는 것은 유감이지만, 조금이라도 일본인의 환영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브라질 선수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자 브라질 국기를 만들었다.”라고 하는 무라카미 타카시 교장을 소개했다. 무라카미 교장은 도쿄도 츄오구 구립 도요미소학교 (東京都 中央区 区立 豊海小学校)에 재직 중이다. 츄오구(中央区)는 2017년 브라질 올림픽위원회와 양해각서를 맺고 선수 훈련 등을 위해 선수촌 바로 앞 학교 건물 일부를 대회 기간에 제공하기로 했었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학생들과 선수의 교류 이벤트를 열 기획이었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모두 중지된 상태다. 하지만 브라질 선수가 이 학교에서

경제와 내포제시조, 말 붙임 형태가 서로 달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3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서울, 경기지방에 전승되어오는 경제(京制)와 충청지방의 내포제(內浦制) 평시조는 “노고지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 경제는 낮은음으로 떨어진 다음 곧바로 제자리로 올라가지만, 내포제는 그대로 낮게 처리하는 점, 밑에서 위로 쳐들고 올라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또 다른 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떨어진 음을 서울, 경기지방의 시조처럼, 곧바로 위로 쳐들고 올라가지 않는 진행은 양반의 고장, 충청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들어내 보이고있는 듯하다. 빠른 속도로 굴곡을 넣어 부르는 서민들의 민요보다는 변화 선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그러면서도 속도가 느긋한 시조창을 선호해 온 충청의 특징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선율의 다양한 변화보다는 비교적 단순하게 처리하는 진행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으로는 가사 붙이는 박의 위치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아래의 <악보 1>은 평시조 “동창이 밝았느냐”의 중장이 시작되는 <소 치는> 부분이다. 경제와 내포제 공히 “소 치는” 3글자를 5박에 붙이는데, 이 부분의 말 붙이는 형태를 비교해 보면, 현저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맛있는 일본이야기 60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친절하게 자신을 설명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를 찾아가는 길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문은 끝이 없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없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나는 문 앞에 여전히 서 있다.” 이는 허연 시인의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속초 설악산책(雪嶽山冊) 도서관 입구에는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는 곳에 책 표지를 앞으로 해서 세워둔 테이블이 있다. 이곳에 드나든 지 보름이 넘었지만, 책을 읽으러 온 것이 아니라서 그냥 무심히 지나치다가 오늘 불현듯 ‘가와바타 야스나리’ 책에 시선이 꽂혔다. 표지에 영어로 ‘KAWABATA YASUNRI’라고 쓰여 있는 바람에 활자의 의미를 새기지 않은 채 ‘웬 영어책을 진열했나?’ 싶었다. 보름 동안 이 책이 내 시야에서 ‘영어책’으로 여겨졌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책 장을 넘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보지 못한 무용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머리를 숙여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 목덜미에 삼나무

경제(京制)시조와 내포제시조의 서로 다른 특징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3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시조시의 연원과 시조창이 불리기 시작한 시기, 여러 유파가 생겨나면서 최초의 단일 곡을 <평시조>로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와 시조창은 박자가 느리고, 3음 중심의 계면조 음악이며 요성(搖聲)과 역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노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에 전승되어오는 ‘경제(京制)시조와 각 지방의 시조, 특히 충청지방의 내포제(內浦制)시조와의 비교를 통해 서로 다르게 표출하는 음악적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큰 틀에서 보면 각 지방의 시조는 형식이나 창법에서 대체로 비슷하다고 하겠으나, 자세히 들어보면 차이를 보이는 서로 다른 특징들을 발견하게 된다. 부분적이기는 하나, 첫째는 가락의 진행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고 둘째는 가사, 곧 노랫말을 붙이는 박이라든가 그 위치가 서로 다르며 셋째는 요성(搖聲), 곧 떠는소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시김새의 형태가 비교된다. 그리고 넷째는 창법이나 발음법, 끝내는 박, 등에서 부분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지방마다 말이 다르듯 생활환경이나 풍속, 성격, 기호, 등이 서로 달라서 자연스럽게 토착화되어 오늘에

세종의 융합정치

하위지의 간언과 대간들의 반발을 포용함 [‘세종의 길’ 함께 걷기 74]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20년 4월 12일 중시(重試)가 있었다. 33명이 합격했는데 그 중 하위지(河緯地)가 27살의 나이로 장원을 차지했다. 시험 과제는 ‘국정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내라는 것’이었는데 하위지는 임금과 언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내용을 적어냈다. 그러자 조정과 신료들 사이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대사헌 안숭선ㆍ이승손ㆍ강진덕 등 10여 명의 사헌부 대간들이 사직을 청하게 되었다. 하위지의 간언 먼저 대사헌 안숭선(安崇善)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신이 본시 유약한 힘으로 중임(重任)을 맡고서 스스로 맞지 않음을 헤아리고 부끄럽던 차에 탄핵을 당하였으니, 그 죄를 달게받고 물러남을 편하게 생각하였사온데, 그대로 본직에 돌아가게 하시니 근일에 와서는 몸과 기운이 파리하고 피곤하며, 바라옵건대, 직무를 해면케 하시고 한산한 곳에 버려두시어 온전히 의약의 치료나 받게 하옵시면, 성은에 보답도록 하겠나이다." 다시 집의(執義) 이승손(李承孫)이 사직하여 말하기를, "청하옵건대, 신의 직임을 해면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장령 강진덕(姜進德)ㆍ지평 민건(閔騫), 그리고 우사간 임종선(任從善) 등이 역시 글을 올려 사직하며, 아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