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85년(성종 16년)에 호조 판서 이덕량에게 종로 시장 상인들의 한글 투서가 전해졌다. 영의정부터 판서까지 고위 관리들이 종로의 도로 정비 사업을 한다며 제 잇속을 챙기느라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내용이었다. 이덕량은 그것을 읽고 곧바로 성종에게 보고를 올렸다. 이에 성종은 판내시부사 안중경과 한성부 평시서 제조 등을 보내 상인들의 요구 사항을 듣게 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하층민에 속한 상인들도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으며,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erchants in Jongno Criticize the Authorities Using Hangeul In 1485 (the 16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a petition written in Hangeul by merchants from the Jongno market was delivered to Lee Deok-ryang, the Minister of Finance. The petition criticized high-ranking officials, from the Prime Minister to the Min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꽃샘잎샘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어느덧 짙어진 봄기운이 땅의 틈새마다 삶의 숨결이 차오르는 요즘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온 탓에, 세상이 건네는 다정한 손길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곤 하지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살가운 온기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닿는 것마다 정겨운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말, '살갑다'를 통해 우리 삶의 결을 다시금 톺아보려 합니다. '살갑다'는 참으로 여러 가지 낯빛을 지닌 낱말입니다. 먼저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씁니다. 살가운 정을 나누는 사이란, 상대의 허물을 탓하기보다 그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이에서 피어납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닿는 느낌이 가볍고 부드러울 때도 살갑다고 말합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뺨을 스치듯, 그 촉감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온을 느낍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머문 집이나 물건처럼, 정이 듬뿍 든 대상에게도 이 말을 건넵니다. 더 나아가 속이 너르고 넉넉한 대상에게도 쓰이니, 결국 살갑다는 것은 바깥의 차가움을 이겨내고 내면의 따스함을 밖으로 길어 올리는 모든 정성을 뜻하는 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 전승에 진력(盡力)하고 있는 방영기 명창의 발표회 이야기를 하였다. 이 종목은 1960년대 말,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목이란 점, 그는 전국 명창대회에서 동(同) 종목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매해 개인 발표회를 열어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지금까지 실행해 오고 있다는 점, 어린 시절, 남달리 춤과 소리를 좋아해 이를 배우려 할 때,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으나, 자신의 주장을 존중해 준 부모님과 그리고 당대 으뜸 명인 명창에게 배울 수 있었던 계기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밖에 국악인으로는 드물게 성남 시의원, 경기 도의원을 지내면서 관련하여 <성남 아트센터 건립>이나, <성남 시립국악단> 창단 등도 끌어냈다는 이야기도 전했고, 현재 그는 국가무형유산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로 활동하면서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보존회> 회장, <방영기 국악연수원>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에게 <경기소리>, 특히 <경기 산타령>이 어떤 노래인가? 하는 점을 직접 노래와 강의를 통해, 그리고 무대 위에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멧자락(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냇물은 곧게만 나아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큰 바위를 만나 비껴가고, 때로는 넓은 들판을 만나 느릿하게 춤을 추듯 흘러갑니다. 우리가 사는 삶도 언제나 반듯한 큰길이기를 바라지만, 참된 자람은 굽이진 길 위에서 더 깊게 무르익곤 합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어쩌면 우리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빚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굽이돌다'는 길이나 물줄기가 굽어서 돌아 나가는 모습을 뜻하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메(산)나 들을 따라 길게 뻗은 길이 한 번씩 꺾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뒤를 돌아보거나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여유를 얻습니다. 그저 나아가는 쪽을 바꾸는 움직임을 넘어, 이 말 속에는 거친 세상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슬기가 담겨 있습니다. 억지로 곧게 펴려 하면 부러지기 쉽지만, 굽이치며 흐르는 물은 그 어떤 막힘도 거스르지 않고 끝내 바다에 닿습니다.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더 넓은 풍경으로 나아가는 길목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이 낱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마음에 쫓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세상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닳고 깎이며 살아갑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멍든 마음을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칭찬받기 위해, 또 누군가에게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마음이 고단해져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면,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찾아야 할까요. 쉼 없이 몰아치는 삶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 다독이는 아주 값진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다독이다'는 흩어지기 쉬운 물건을 모아 가볍게 두드려 누르는 손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아기를 재우거나 달래고 귀여워할 때 몸을 가만가만 두드리는 살가운 몸짓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는 남의 모자란 점을 따뜻이 어루만져 감싸고 달래는 마음의 움직임을 뜻하기도 하지요. 마치 흐트러진 나뭇짐을 정성껏 매만져 단단히 묶어두듯, 헝클어진 마음의 결을 바로잡는 정갈한 마음이 이 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거친 세상을 살며 날카로워진 마음의 모서리를 이 낱말로 둥글게 갈고, 지친 영혼에 온기를 불어넣는 귀한 매듭을 지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잣대에 맞추느라 정작 가장 소중한 제 속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공공기관에서 길나무(가로수) 가지치기를 할 때 '전정'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꼬집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소홀히 여기는 행정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앙상하게 잘려 나간 나무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성과라는 잣대에 맞춰 삶을 조급하게 다듬으려 했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오늘은 겉모습은 조금 볼품이 없을지라도, 바뀌지 않는 됨됨이로 삶의 자리를 지켜온 여러분에게 '그루'라는 말을 조용히 건네고 싶습니다. '그루'는 본디 풀이나 나무를 베어 낸 뒤 땅에 남아 있는 그 아랫동아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록 윗부분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안에는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다시금 새순을 틔울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숨어 있지요. 우리는 흔히 무언가 온전히 남아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덜어내고 남은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 그루, 두 그루처럼 수를 세는 하나치(단위)로 쓰일 때 이 말은 저마다의 생명이 가진 고유한 값어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바람 끝에 묻어나는 냄새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마음이, 어느덧 다가온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듯한 요즘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하나 홀로 머물지 않고,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흐릅니다. 멈춘 듯 보여도 저마다의 빠르기로 제 자리를 바꿔가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네 삶 또한 그렇게 서로 어우러지며 이어지는 법이지요. 오늘은 이렇듯 세상의 다정한 엇갈림을 담은 ‘갈마들다’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갈마들다’는 본디 ‘서로 번갈아 들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흔히 쓰는 '교대하다'와 비슷한 말인데, 한 사물이 가고 다른 사물이 그 뒤를 이어 들어오는 모양새를 뜻하는 이 말은, 마치 썰물과 밀물이 바닷가에서 조용히 자리를 맞바꾸는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자가 섞이지 않은 우리 토박이말 속에는 이처럼 ‘교체’나 ‘교대’라는 딱딱한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깃들어 있습니다. 앞서간 이가 길을 터주면 뒤따르는 이가 그 길을 걷고, 다시 그 뒤를 새로운 희망이 채우는 흐름 말입니다. 억지로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갈마들며 세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3월 5일 오늘은 24절기의 셋째 '경칩(驚蟄)'입니다. 경칩은 놀란다는 ‘경(驚)’과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이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지요. 만물이 움트는 이날은 예부터 젊은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졌기에 경칩을 ‘토종 연인의 날’이라고 얘기합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임금이 농사의 본을 보이는 ‘적전(籍田)’을 경칩이 지난 뒤의 ‘돼지날 (해일-亥日)’에 선농제(先農祭)와 함께하도록 했으며,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 또는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禁令)을 내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였습니다. 중국 고대 유가의 경전 《예기(禮記)》 「월령(月令)」에도 “이월(음력)에는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라고 되어 있지요. 민간에서는 경칩에 개구리알이나 도룡뇽알을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하였으나 어린 생명을 그르치는 지나친 몸보신은 삼가야만 합니다. 또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81년(성종 12년)에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뒤쳐(번역) 보급했다. 《삼강행실도》는 조선과 중국의 책에서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를 각각 35명씩 모두 105명을 뽑아 그 행적을 그림과 글로 칭송한 책이다. 1428년(세종 10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관리들은 강상죄로 죄인을 엄벌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강상죄는 죄인의 가족은 물론 죄인이 사는 지역에 이르는 사람들까지 죄를 확대해 처벌하는 엄한 벌이었다. 이에 세종은 1432년(세종 13년) 《삼강행실도》를 펴내 백성들에게 유교의 도를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한문으로 설명을 단 탓에 백성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 뒤 성종 때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뒤쳐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했다. Translating the First Picture Book Samgang Haengsildo into Hangeul In 1481 (the 12th year of King Seongjong’s reign), Samgang Haengsildo was translate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눈앞의 열매를 쫓느라 옆 사람의 낯빛도 살피지 못하고,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차가운 말들만 주고받는 풍경이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거리두기에 바쁜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놓치고 있는 값어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서른 해 가까이 우리말의 숨결을 지켜온 저는, 오늘 이 삭막한 바람빛 앞에서 아주 보드라운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곰살궂다'입니다. '곰살궂다'는 "태도나 성질이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친절이 아니라, 남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마음의 결을 말합니다. 참으로 귀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이익과 손해만을 따지며 관계를 맺다보니 상대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는 그 살가운 마음은 자꾸만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이제 '곰살궂다'는 넘쳐나는 경쟁 속에서 잊혀 가는, 어쩌면 조금 느리고 서툰 사람들만 가진 것이 되어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