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단가 <탐경가(探景歌)>에 나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야기를 하였다. 은(殷)나라의 왕자들로 백이는 형, 숙제는 동생인데, 부왕은 형이 아닌 동생에게 왕위를 넘기고자 하니, 형이 있는데, 동생이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형 또한 “동생에게 왕위를 결정한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니 그 결정은 어길 수 없다”라고 서로 양보하였다고 한다. 훗날, 나라가 망하자, 그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며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고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는 형제들이다. 충절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들 외에도 도연명의 귀거래사, 손흥공의 산수부(山水賦), 육처사, 소자첨, 강태공, 동방삭 등도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역대가(歷代歌)>라는 단가를 소개한다. 이 노래는 국가의 흥망(興亡), 성쇠(盛衰)와 관련하여 역대 임금과 성현들의 사적을 노래한 시가(詩歌)이다. 대표적으로 오세문(吳世文)이 엮은 <역대가>를 비롯하여, 조선 전기의 진복창의 <역대가>, 국립 중앙도서관 소장의 <역대가>, 조선 후기 신재효(申在孝)가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은 회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이위하여’(以爲何如)를 자주 말씀하였다. 신하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물었던 것이다. 첫 ‘이위하여’는 세종 즉위년 8월 13일 전위한 일을 명에 아뢸 사은 주문사를 구성하는 일이었다. 새 임금으로 출발하는 것이어서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에 전위한 일을 아뢸 사은 주문사를 구성하다) “임금이 상왕전에 나아가 영의정 한상경(韓尙敬)과 우의정 이원을 불러 명나라에 전위(傳位)한 일을 아뢸 것을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세자(世子)의 책봉을 청하였을 때 인준을 받지 못하였는데 또 갑자기 전위하였으니, 중국 조정에서 어떻게 생각할까요."하니, 이때 박은은 병으로 집에 있었으므로 하연(河演)을 보내어 이에 대하여 물었으나, 박은도 역시 확정한 의견을 내지 못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마땅히 다시 의논토록 하라." 하고, 중국에 가서 전권으로 대답할 만한 사람을 가리어 사은 주문사(謝恩奏聞使)를 삼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판한성 김여지(金汝知)로 사은사를 삼고, 공조 참판 이적(李迹)을 부사로 삼고, 형조 판서 조말생을 주문사로 삼았다.(세종실록 즉위년/8/13) 이때는 상왕인 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소상의 8경 가운데서 어촌의 해 지는 모습을 노래한 ‘어촌석조(漁村夕照)’와 강 위로 내리는 저녁 눈의 모습인 ‘강천모설(江天暮雪)’, 산촌(山村)의 한가한 모습을 표현한 ‘산시청람(山市晴嵐)’, 그리고 산사(山寺)에 울려 퍼지는 쇠북 소리가 객(客)의 마음을 울린다는 ‘한사만종(寒寺晩鍾)’을 소개하였다. 이렇듯 소상의 8경은 각각의 특징이 있는 경관들을 너무도 구체적이고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어서 공감이 크다. 부르는 이나 듣는 이들도 그 모습들을 연상해 보며 부르고 감상하는 것도 단가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번 주에는 <탐경가>(探景歌)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탐경(探景)’이란 멋진 경관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 단가를 일명,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도 부르는 것은 인간사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한바탕 꿈과 같다는 내용이고, 또한 이러한 사실은 노래 전반에 두루두루 보인다. 특히, 끝 구절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하노라”라는 노랫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단가가 ‘일장춘몽’임을 알게 만들고 있다, 다시 말해, 노래의 제목처럼 인생의 헛된 영화(榮華)나 덧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충청도 양반 가문의 정춘풍(1834~1901?)에 의해 불리기 시작했다는 <소상팔경> 가운데, 제1경 소상야우(瀟湘夜雨)와 제2경 동정추월(洞庭秋月), 제3경 원포귀범(遠浦歸帆), 제4경 평사낙안(平沙落雁), 제5경 어촌석조(漁村夕照)에 관한 이야기는 앞에서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소상의 8경 가운데 제5경 어촌석조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격안(隔岸) 전촌(前村) 양삼가(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일고, 파노귀래(罷釣歸來)배를 매고 유교변(柳橋邊)에 술을 산 후, 애내성(欸乃聲)부르면서 흥을 겨워 비겼으니, 소림(疏林)에 던진 새는 지는 해를 설워 울고, 벽파(碧波), 푸른 파도에 뛰는 고기, 비낀 별 맞아 노니, 어촌석조(漁村夕照), 이 아니냐.“ 물가 언덕 마을 앞, 몇 집에서는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잡이를 중단하고 돌아와 술 마시고 애내성(뱃사공이 노를 저으며, 흥에 겨워 부르는 소리에 소림의 새들은 지는 해를 서러워하며 울고, 물고기들은 별을 맞아 놀고 있으니, 어촌의 지는 해의 아름다움이 이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저녁 무렵, 해지는 모습은 어느 지역에서도 아름답게 보이는 그 자체겠지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조 헌종~고종 연간에 활동했다는 충청도 양반 가문의 비가비 출신, 정춘풍(1834~1901?)의 소개와 그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소상팔경>을 소개하였다. 소상의 8경은 1.소상야우(瀟湘夜雨) 2. 동정추월(洞庭秋月) 3.원포귀범(遠浦歸帆) 4.평사낙안(平沙落雁) 5. 어촌석조(漁村夕照) 6.강천모설(江天暮雪) 7.산시청람(山市晴嵐) 8.연사만종(煙寺晩鍾) 또 는 한사모종(寒寺暮鍾)등 등이다. 정춘풍의 이 단가는 그의 후진들인 박기홍, 송만갑 등이 이어 받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무대 위에서 만나기 쉽지 않아 전승 위기를 맞고 있다. <소상의 팔경> 가운데 첫 장면인 소상강의 밤 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소상야우-瀟湘夜雨)>에 관한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하였기에 이번 주에는 8경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 동정추월(洞庭秋月)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동정추월이란 곧, 동정 호수에 떠 있는 가을 달의 모습이다. 밤하늘의 별이나 달은 어느 곳에서 본다고 해도 아름다운 대상이 분명하다. 그것도 가을밤, 넓디넓은 호수 위에 동그랗게 떠 있는 달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멋진 광경이겠는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귀하께서는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귀중한 기모노를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에 기증해 주셨습니다. 이 일은 한일ㆍ일한 양국의 문화교류 촉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므로 그 고마운 마음에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 원문은 일본어이며 필자 번역- 이는 지난 23일(금) 낮 11시, 울산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학과장 홍성목 교수) ‘나라방(다도교실로 쓰는 다다미가 깔린 방 이름, 아래 다다미방)’에서 있었던 <이토 노리코 씨의 기모노 기증식>에서 학과장인 홍성목 교수가 전달한 감사패에 적힌 문구다. 이에 앞서 아침 10시부터는 기모노 기증자인 이토 노리코(伊藤典子, 69) 씨의 <어머니와 기모노, 그리고 소중한 추억(母と着物、そして大切な思い出)>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은 울산대학교 일본어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통역 없이 진행되었다. 쉽지 않은 기모노 관련 용어들이 나왔지만,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경청했고 강연 뒤에는 다다미방으로 이동하여 기모노 시연과 다담(茶談)이 있었다. “이토 노리코 선생 일가의 귀중한 기모노를 우리 대학에 기증해 주어 기쁩니다. 절대 적지 않은 분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단군배향’이나 ‘남향봉사’는 ‘사자성어’라기보다 ‘사자용어’일 수 있으나 세종의 정치에서 ‘자주’ 정신을 살피는 뜻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세종은 나라를 운영하며 조선의 특이한 점을 찾고 드러내고자 노력했다. 그 가운데는 가) 집현전 설치와 학문 진흥 조선 고유의 학문과 문화, 과학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찾고 연구하기 위해 집현전을 확충해 나갔다. 그 대표적인 연구물은 《훈민정음》의 창제(세종 25년, 1443년; 반포 1446년)다. 비록 세종대왕이 창제하였다고 공식적으로 실록에 되어 있지만 그 전후의 언어체계 연구에서는 많은 사람의 도움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나) 공법제정 조선 고유의 공법(貢法) 제정이 있다. 조세 제도를 백성의 토지 생산력에 맞춰 합리적으로 조선 고유의 제도로 개편했다. 다) 조선 고유의 음악정리와 정간보(井間譜) 창안과 측우기 등 그 밖에도 측우기, 고유의 활자 그리고 자주성을 내세운 국방 외교정책으로서 외세(여진ㆍ명)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4군 6진을 개척’했다. 특히 이때 외교에서 사대와 교린의 균형을 취해 명나라에는 예를 갖추되(형식적 존중), 일본·여진 등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장부한>이란 단가에는 매희(妹姬)를 비롯하여, 달기(妲己), 하희(夏姬), 서시(西施), 식(息)부인, 채문희, 오강낙루(烏江落淚)의 우미인(虞美人) 등, 일등 미색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는 외양(外樣)은 특출하나 마음씨가 곱지 못한 요화(妖花)로 매희, 달기, 포사(褒姒), 양귀비(楊貴妃)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다시 정리해 보면, 매희(妹姬)는 그녀를 위해 매일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달기(妲己)는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고, 황후와 마음에 들지 않는 충신들에게 형벌을 가하면서 웃고 즐겼다는 악녀였다. 포사(襃姒)는 미모가 뛰어나 후궁이 되었으나 웃지 않는 미인이었으나. 궁녀의 비단옷이 찢기는 장면을 보면서 웃었다는 여인이다. 그래서 임금은 그녀를 위해 날마다 비단을 찢기 시작하였고, 또한 그것이 싫증이나자 진쟁의 신호탄인 봉화를 잘못 올렸을 때도 그녀가 크게 웃었다고 하는데, 이탓에 정작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포사와 관련하여 전해온다. 양귀비를 만난 당 현종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목 그대로 대장부의 한(恨)을 소리로 나타내고 있는 <장부한(丈夫恨)>이라는 단가를 소개하였다. 남자로 태어나, 뛰어난 명승고적(名勝古蹟)들을 두루 돌아보고, 고금(古今)의 영웅, 열사, 문장가, 충신, 그리고 미인(美人)들과 경치 좋은 곳에서 자리를 같이하며 산해(山海)의 진미(珍味)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마음껏 즐기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붙인 이름이 대장부(大丈夫)의 한(恨)이다. 이 노래에도 산 이름, 강의 경관을 비롯하여, 만리장성, 아방궁(阿房宮), 봉황대(鳳凰臺), 황금대(黃金臺), 그 외에 유명 고적(古跡)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어서 친근감 가는 사설로 이어진다. 특히, 이 단가에는 매희(妹姬), 달기(妲己), 하희(夏姬), 서시(西施), 식(息)부인, 채문희, 오강낙루(烏江落淚)의 주인공인 우미인(虞美人) 등등, 으뜸 미색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외양(外樣)은 특출하나 마음씨가 곱지 못한 요화(妖花)들, 예를 들면 달기(妲己)나 포사(褒姒), 양귀비(楊貴妃) 등도 나오고 있다. 잠시 이들과 얽힌 이야기도 단가 감상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간단히 소개해 보기로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피 맛 골 꼴보기 싫은 벼슬아치가 탄 말을 피하고자 생긴 거리 피맛골 그 거리에 발길을 하지 않으면 더러운 꼴 안보련만 국밥집, 선술집이 손짓하는 그곳을 차마 등지지는 못했으리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 백성을 위해 무슨 정책을 펴나 틀어보는 방송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후보가 뒤바뀌는 전대미문의 해프닝이 벌어지는 요즘 피맛골 처럼 피(避) 방송 하고프다만 피하기만 해서 될일이 아닌고로 오늘도 더듬이 세우고 향(向) 방송 하는 백성들 나도 그 중 한사람. ▶ 피맛길(避馬길)은 조선 시대의 한성의 길로써 지금의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길이다. 조선시대 백성이 종로를 지나는 높은 벼슬아치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뒷골목인데, 당시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탄 고관대작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그때문에 갈길 급한 서민들이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다니던 좁은 길인데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에서 유래해 이름이 붙었다.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동안 탑골공원, 화신백화점 등이 개발되면서 피맛길은 부분적으로 끊어졌으며, 1970년대 초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때 남쪽 피맛길이 사라졌다. 청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