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닫은 채 제 안의 마침표만 벼리는 세상, 슬픔은 공명(共鳴)되지 못해 비린 소음으로 흩어지고 기쁨은 맞장구 없는 독백이 되어 차갑게 식어간다. "그랬구나"라는 낮은 닻 하나 내리지 못해 서로의 진심이 유령처럼 부유하는 정적의 도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유려한 문장이 아니라 타인의 숨 가쁜 괄호 속으로 기꺼이 젖어 들수 있는 온기의 언어다. 이제 메마른 입술을 열어 잊힌 이름들을 불러내보자. 끊어진 서사를 잇는 가교가 되어 "그렇지", "암, 그렇구말고"라며 서로의 등에 다정한 곁불을 지피자. 서툰 춤사위 위로 "잘한다", "얼씨구"라는 눈부신 추임새를 던져 고립된 섬들을 하나로 묶는 화음이 된다면, 시린 여백뿐이던 우리의 계절도 비로소 타인의 심장 소리로 박동하는 축제가 되리라. 글 이윤옥, 그림 이무성 화백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정부가 경복궁 광화문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달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월 20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 추진 계획을 보고했고, 국가유산청장이 이에 적극 동의했다는 것이다. 한글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역사적 결단"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현판 교체를 넘어,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상적인 1안: 한글 현판으로만 한글 단체와 많은 국민이 가장 많이 염원하는 바는 단연코 '1안'이다. 곧, 현재의 한자 현판을 내리고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만 거는 것이다. 광화문은 단순한 고궁의 정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한국 문화의 발신지로서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곳에 한글이 태어난 조선 정궁(正宮)의 정문으로서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이 걸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가 대한민국의 얼굴인 광화문에 오롯이 걸릴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이 온전히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 난관과 2안의 값어치 그러나 현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두 달이 지난 1444년(세종 26년) 2월에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글 창제는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학문에 정진하는 데 한글이 손해를 끼치며,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은 죄인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탓이지 죄인들이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따를 것은 따르되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말했고,, 한글 창제는 학문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쓰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설득해 더욱더 철저하게 한글 반포를 준비했다. The Officials Petition Against Hangeul Two months after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in February 1444 (the 26th year of Se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officials, including Choi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중심 영역인,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의 첫 구성 악곡인 <놀량>은 첫 곡으로 느리게 시작하면서 차차 빨라지는 앞산타령의 <사거리>, 뒷산타령의 <중거리>, 자진산타령의 <경발림> 순으로 이어간 다음, 그 뒤로 잘 알려진 민요조의 노래도 덧붙여 부른다는 점, 구성 악곡의 이름이나 순서는 경기 지방과 같거나 비슷하지만, 창법이나 노랫말, 악곡의 전개 형태, 표현 방법, 시김새 등등은 서로 달라 상호 비교가 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였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기 지방의 <산타령>은 현재 무형의 유산으로 지정된 상태여서 국가의 지원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서도(西道)입창은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겨우 단절의 위기만을 모면해 가는 실정이다. 평소, 글쓴이는 <산타령>과 같은 합창 음악은 다른 일반 민요와는 달리, 가사의 내용이 매우 건전할 뿐 아니라, 국내 곳곳의 명산(名山)이나 강(江)의 이름, 인물의 소개 등, 상식이 풍부한 지역의 특징들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어서 학생들의 음악과 일반 상식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나신 이무성 화백님은 참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대도레코드사에서 우리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하시다가, 은퇴 뒤 <우리문화신문>을 통해 붓을 드시고 그 붓끝으로 한글의 역사와 한국문화,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되살려내셨습니다. 특히 2015년 광화문 《한글창제 28사건》 전시, 2019년 《한글을 빛낸 여성 19인》 전시, 2020년 서울도서관 외벽을 수놓은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한글의 역사를 그림으로 풀어내신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이무성 화백님은 한글 역사의 완성판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 끝내놓고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습니다. 올해는 한글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화백님께서 평생 빛내고자 하셨던 한글의 역사를 기리는 이 특별한 해에, <우리문화신문>은 김슬옹ㆍ김응의 글과 함께 화백님의 유작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을 추모 연재로 선보입니다. (편집자 말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에,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제까지 서도소리 가운데 주로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과 관련한 노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왔다. 특히, 지난주에는 “긴 시간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란 뜻을 지닌 <장한몽(長恨夢)>이란 좌창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노래는 남녀 간의 혼인 문제를 다룬 신파조(新派調)의 이야기로, 일제 강점기 《금색야차(金色夜叉)》라는 소설을 모방한 작품이란 점, 처음엔 창가(唱歌) 식의 형태였다가 서도(西道)의 좌창(坐唱) 형식으로 불러왔는데, 그 내용은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悲戀)을 그려나가는 작품으로 물질적 값어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바로 그 중심 주제라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타고, 개작(改作)되어 신파(新派)극의 대명사가 되었고, 또한 그것이 서도소리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이 노래는 무정형(無定形)의 절주라든가, 높은 음역의 가락들과 함께 극적(劇的)인 표현이 특이하고, 그 위에 특징적 시김새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그 처리가 독특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서도소리의 영역에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이 있는가 하면, 서서 부르는 입창(立唱)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좌창으로 전해오는 <장한몽>의 전반부를 소개하였다. 장한몽(長恨夢)은 “긴 시간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남녀 사이 애정, 결혼 문제를 다룬 신파조(新派調)의 이야기라는 점, 시작 부분부터 “이수일을 배반하고 김중배를 따라가던 심순애를 아시는가? 금강석(金剛石)에 눈이 어두워 참사랑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사랑으로 돈을 구해 진정을 잊었으니 그 마음이 좋을 손가?, 목숨같이 사랑하던 심순애가 남의 아내가 되었으니 생각사록 원통하다”라는 등등의 노랫말이 쏟아져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초창기에는 창가(唱歌) 식으로 불러오던 형태였으나, 서도(西道)의 좌창(坐唱) 형식을 빌려 불러오고 있다는 이야기로 그 줄거리는 이수일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심순애의 부모 밑에서 친남매같이 지내다가 연인(戀人)의 관계로 발전, 혼인을 약속했으나 이를 심순애가 어기게 된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 배경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한 명분이 담겨 있어 동정의 여지도 없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간다. 결과적이지만, 심순애의 처지나 부모의 처지에서도 이수일과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바늘구멍 틈새로 황소바람 들이치니흙벽 사이 한기가 칼날처럼 매섭구나윗목 숭늉 사발은 이미 하얗게 얼었는데 낡은 이불깃 끌어당겨 시린 몸 녹여본다. 글 이윤옥, 그림 이무성 화백
[우리문화신문=이윤옥 이야기] “이쿠노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영사관까지 갔는데 오빠가 없었습니다. 혹시 점심 먹으러 가지 않았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김길호 소설 <오사카 투표 참관인> 가운데, 《월간문학》 (683호) 2026.1월호- 처음에 《월간문학》 신년호를 펴들고 ‘이달의 소설’에 실린 김길호 작가의 <오사카 투표 참관인>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 아닌가 싶었다. 소설 제목이라는 게 본래 따로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투표라는 말도 그렇고 참관인이라는 말이 소설의 세계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설이냐 수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리라고 생각하고 다시 첫 줄부터 읽어 나갔다. 김길호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지난해 대통령 선거까지 나 자신이 숱한 선거를 해왔던 기억이 새롭다. 투표를 해온 횟수보다 앞으로 투표할 횟수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이지만 솔직히 투표가 어떻게 이뤄지는 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한표를 찍는 행위 외에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재일동포인 주인공 민우는 여차여차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어부들의 노래, <잦은 배따라기>, 일명 <봉죽타령>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는 선창자(先唱者)의 메기는 소리와 선인(船人) 모두의 제창(齊唱)으로 후렴구를 받는 노동요(勞動謠)로 선창자가 본절(本節)을 메기면, 나머지 모두가 후렴구를 제창하는 형태라는 점, 본절 내용은 대체로 돈이나, 재물, 술과 관련된 내용, 또는 풍랑과 무사 귀환, 만선(滿船)과 풍획(豊獲) 등이란 점, 성난 파도와 싸워가며 생업을 이어가는 어부들이 안전하게 귀가하게 된 고마움이나, 풍어(豊漁)에 관한 감사함, 그리고 뱃사공들의 소박한 꿈도 엿보게 한다는 내용들을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도좌창으로 전해오는 <장한몽>을 소개한다. 장한몽(長恨夢)이란 “긴 시간 사무쳐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이수일과 심순애>라고도 하는데, 이 노래는 남녀 사이 애정문제, 결혼문제 등을 다룬 신파조(新派調) 이야기로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 주제는 젊은 남녀 당사자들은 물론이려니와 부모 세대에게 있어서도 결혼을 통한 남녀 사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