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깊푸른 밤하늘 아래 환하게 불을 밝힌 건물이 도심의 강물 위로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줄기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화살표와 동전들을 감싸 안으며 마치 축제 같은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강물에 비친 불빛은 은은한 윤슬이 되어 흐르고, 정성껏 닦아놓은 우승컵은 그 모든 수고를 대변하듯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이 찬란한 빛들을 보고 있으면, 긴 시간 고요히 내실을 다져온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전해져 와 우리 마음도 함께 환해지는 듯합니다. 존재의 값어치가 뚜렷이 드러나는 빛나다 최근 우리 반도체 기업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며 세계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크게 드러냈다는 기분 좋은 기별을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술을 축적하고 철저히 준비해온 노력이 그림 속 황금빛 줄기처럼 뚜렷한 성과로 이어진 기별을 보며, 이 토박이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은 '빛나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빛나다'를 '빛이 환하게 비치다',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거나 윤이 나다', '영광스럽고 훌륭하여 돋보이다', '눈이 맑은 빛을 띠다'의 네 가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유리창 너머로 몰아치는 거대한 금빛 파도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걱정어린 모습이 참 위태로우면서도 단단해 보입니다. 지폐와 동전들이 뒤섞여 출렁이는 저 파도는 먼 나라의 전쟁과 불안한 정세가 만들어낸 거센 풍랑이겠지요. 하늘에는 먹구름과 함께 군용기들이 날아다니고, 발밑의 지도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요동치고 있습니다. 팔짱을 낀 채 그 소용돌이를 응시하는 그의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와, 잠시 그 곁에 서서 함께 숨을 고르고 싶어집니다. 물결처럼 크게 흔들리는 '출렁이다' 최근 중동의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급격히 오르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림 속 금빛 파도처럼 세계 경제라는 바다가 요동치니, 그 여파가 우리 일상의 장바구니와 가계부까지 밀려오는 상황을 보면 이 토박이말이 참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출렁이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출렁이다'를 '물 따위가 큰 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줄렁이다'보다 훨씬 거세고 힘찬 느낌을 주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단순히 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번화하게 넘쳐 나는 모습이나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당시, 우리 백성들 가운데는 왜군의 포로가 되어 왜군에게 협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로 담화문을 내렸다.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에게 특별히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운데 왜적을 잡아 나오거나 왜적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오거나 해서 어떠하든 공이 있으면 양민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시킬 것이니 너희는 생심이나 전에 먹고 있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와라.” 이처럼 선조는 백성들의 마음을 달래고 의병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나라 문서에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왜군이 알 수 없는 한글을 썼다. 이 담화문 덕분에 김해수성장 권탁은 왜군 수십 명을 죽이고 포로가 된 백성 백여 명을 구하는 공을 세웠다. The Power of Hangeul in the Imjin War Moreover, if you capture Japanese soldiers or gather information on their actions, or bring back many of the capture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하얗게 질린 마스크를 쓴 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에 마음이 머뭅니다. 햇살은 따스하게 내리쬐지만,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노란 가루에 갇혀 희뿌옇게 흐려져 있습니다. 세워둔 차들 위로 소복이 쌓인 저 노란 가루, 누가 봐도 영락없는 '솔꽃비' 흔적입니다. 차를 살피는 어르신의 손짓조차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힘겨워 보입니다. 끊이지 않는 성가심을 견디는 '시달리다' 최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꽃가루가 예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독하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는 기별이 들립니다. 그림 속 풍경처럼 재채기와 콧물, 눈 가려움으로 일상이 흔들리는 요즘 상황을 보면 이 토박이말이 참 아프게 와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시달리다'입니다. '시달리다'는 괴로움이나 성가심을 당할 때 쓰는 말입니다. 뱃멀미에 시달리듯 내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괴로움을 겪기도 하고, 쉬고 싶은데 종일 조카들에게 시달리는 것처럼 누군가의 성가신 장난을 받아내야 할 때도 쓰지요. 재미있는 것은 옛 말투에서 '나를 시달렸겠다!'처럼 남을 괴롭게 하거나 성가시게 한다는 뜻으로도 쓰였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의 숨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월하(月荷-본명, 김덕순 명인으로부터 이수 받은 제자들의 무대, <가곡, 달 꽃을 피우다>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스승을 떠나보낸 뒤 긴 세월 속에서도 가곡을 지켜온 제자 7인이 “가곡, 달 꽃을 피우다”라는 발표회를 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스승으로부터 전수한 노래를 각각 1곡씩 부른 다음, 그들의 후배 제자들과 함께 또 다른 1곡을 부름으로써 3대로 이어져 오는 의미 있는 무대를 만들어 스승을 기리는 음악회를 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당일, 발표회에 참여하였던 월하의 제자, 7인의 여류가객들이 스승과 만나게 된 인연, 스승 떠난 30년 세월을 홀로서기 해 오며 가곡 전승을 위한 관련 활동을 펼쳐 온, 그간의 이야기 등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월하 명인은 1973년,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가곡>의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은 여류 가객이었다. 월하 여사는 살아생전, 아름다운 목소리와 그 위에 피나는 노력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곡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고, 제자들을 지도해 왔으며, 여창 가곡의 명맥(命脈)을 공연이나 방송, 음반이나 강습을 통해, 세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동그란 창 너머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은은한 찻잔의 온기가 배어나는 방 안과는 대조적으로, 창밖은 온통 누런빛에 갇혀 있네요. 밭을 일구는 농부의 굽은 등 위로 쏟아지는 햇살조차 흙먼지에 가려 힘겨워 보이고, 멀리 날아가는 새들의 날갯짓도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집니다. 창가에 놓인 작은 꽃 한 송이가 맑은 공기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이 정막한 풍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답답한 마음을 닮은 듯해 자꾸만 눈길이 머뭅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흙비' 올봄 들어 가장 강한 황사가 우리나라를 덮칠 것이라는 기별에 몸도 마음도 걱정인 분들이 많으시죠? 자잘먼지(미세먼지)까지 겹쳐 호흡기 건강마저 위협받는 이 막막한 상황을, 우리 토박이말로는 '흙비'라고 부릅니다. '흙비'는 한자어 '황사'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아픈 느낌을 줍니다. 흙먼지가 단순히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듯 내려와 온 세상을 누렇게 덮어버리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옛 기록인 《영조실록》을 뒤친(번역한) 책에도 "하늘이 캄캄하게 흙비가 내렸는데 마치 티끌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그림 속 풍경이 참으로 평온하고도 뭉클합니다. 보랏빛과 귤빛이 은은하게 섞인 아침 하늘 아래, 보슬보슬 내리는 마지막 봄비가 온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습니다. 우산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밭둑에 선 저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등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어쩌면 고단한 하루의 무게일지도, 혹은 내일의 풍요를 기다리는 설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덕 너머로날아가는 새들과 이제 막 고개를 내민 어린 싹들이 비를 맞으며 숨을 고르는 이 시간, 우리도 잠시 그 풍경 속에 머물며 마음을 씻어내 봅니다. 깊이 스며들어 우리 것이 되는 '배다' 비록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오늘은 봄의 마지막 절기이자, 모든 곡식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곡우'입니다. 저희 토박이말바라기에서는 이 아름다운 날을 '낟알비'라고 다듬어 부르고 있어요. '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곡식의 알'을 가리키는 '낟알'에 '비'를 더해 만든 만든 말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포슬포슬 내리는 비가 논밭의 낟알들을 포근히 감싸 안는 풍경이 그려지지 않는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바로 '배다'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배다'를 단순히 물기가 스며들거나 스며 나오는 것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반갑습니다. 우리말의 결을 살려 마음을 보듬는 '토박이말 결지기'입니다. 그림 속, 차가운 새벽 물안개가 자욱한 바닷가에 홀로 선 남자의 굽은 등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수평선 너머로 이제 막 떠오르는 해는 수줍은 듯 온 세상을 귤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네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스치고, 모래톱 위 작은 노란 리본과 종이배는 그 바람에 실려온 듯 낮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의 눈길은 저 먼바다, 어쩌면 그날의 기억이 멈춘 곳을 향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두 번의 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이 계절의 바람은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꽃내음이지만, 그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시리고 아픈 기억의 조각들을 실어 나르는 바람입니다. 오늘은 그 아픈 시간을 건너온 우리 모두의 마음을, 그림 속 따스한 아침 햇살처럼 가만히 보듬어보려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뚜렷이 '새기다' 열두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은 우리가 그날의 약속을 잊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기억식에서 전해진 "국가가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 소식은, 그림 속 떠오르는 해처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 보내드리는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희망찬 아침 해가 떠오르는데, 우리네 삶을 상징하는 농부의 등은 거센 바람에 조금 굽어 있습니다. 흩날리는 나뭇잎들이 마치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뒤로 당기는 '덜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길을 걷는 저 뒷모습이 참으로 눈물겹고도 든든하지 않나요? 오늘 우리는 이 그림 속 풍경을 닮은 토박이말 하나를 꺼내보려 합니다. 살림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덜미' 요즘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셨을 겁니다. "고유가가 살림의 덜미를 잡는다"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오지요. '덜미'는 목 뒤편의 아랫부분을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덜미를 잡히면 우리는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뒤로 끌려가거나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지요. 고유가라는 불청객이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여러분의 일상을 뒤에서 꽉 붙들고 늘어지는 것만 같아, 그 답답함을 어떻게 다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덜미'라는 단어의 어감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삶의 긴장과 고단함이 서려 있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랍니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586년(선조 19년)에 안동에 사는 한 여인이 죽은 남편에게 한글 편지를 썼다. 그 여인은 바로 조선 중기 고성 이씨 문중의 며느리로 ‘원이 엄마’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 이응태는 임신한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 형제를 두고 서른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러자 아내인 원이 엄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와 한글 편지를 무덤 속에 함께 넣어 마음을 전했다.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에는 남편과 함께 누워 나누었던 이야기부터 배 속 아이를 걱정하며 한탄하는 이야기까지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Woni’s Mother Leaves a Hangeul Letter at Her Husband’s Grave In 1586 (the 19th year of King Seonjo’s reign), a woman living in Andong wrote a Hangeul letter to her deceased husband. This woman, known as “Woni’s Mother,” was a daughter-in-law of the Goseong Yi family in the mid-Joseon period. 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