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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경서도 좌창, 잡가(雜歌)라는 이름은 당치 않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5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 촉한(蜀漢)의 명재상이었던 제갈량(諸葛亮)을 주제로 하는 노래, <공명가(孔明歌>를 소개하면서 <수심가>나 <관산융마>와 같이 앉아서 손이나 발, 몸의 움직임을 금기(禁忌)시해 온 좌창들을 왜 <잡가>, <긴잡가>라고 부르고 있는가? 아울러 <긴잡가>라는 이름에서 <긴>은 곡조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느리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이름이란 점도 덧붙여 이야기하였다.

 

사실, ‘서울의 긴잡가’, 또는‘서도잡가’라는 이름도 어느 특정 부류의 노래들을 가리키는 이름은 아니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상류사회의 지식인 계층이나 양반들이 부르던 노래는 ‘정가(正歌)’라 통칭해 온 반면, 일반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은 ‘소리’ 또는 속가(俗歌)’라 불러오기도 했는데, 이러한 속가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명칭이 바로 잡가(雜歌)였다. 여기서 소개하려는 <공명가>를 비롯해서 <초한가>나 <제전>과 같은 노래들을 <서도의 잡가>, <서도잡가>라 통칭하고 있는데, 잡가란 어떤 노래이고 어떤 의미를 지닌 이름일까?

 

<잡(雜)>이란 ‘무엇과 무엇이 섞인다’, 또는 ‘번잡하고 번거롭다’라는 의미를 지닌 글자다. 그러나 <잡가>라는 말에서 <잡>이란 해당 노래의 분위기가 번잡하고 번거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양한 노래의 사설들을 한 책에 모아 실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 초기였던, 1910~20년대에는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 《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 《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 《증보 신구시행잡가(增補新舊時行雜歌)》 등등의 노래 사설(辭說)들을 모은 여러 잡가집(雜歌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들 노래책 속에는 정가(正歌)로 분류되고 있는 <가곡>이나 <가사>, <시조>도 들어 있고, 민속음악으로 분류되는 각 지방의 다양한 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이 민속음악의 다양한 악곡들, 예를 들면 서도소리의 <초한가(楚漢歌>라든가,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소리, 서울 경기지방의 <유산가(遊山歌)>를 비롯한 긴잡가, <놀량>을 비롯한 선소리 산타령, 그 밖에도 다양한 민요곡을 비롯해서 단가(短歌), 회심곡, 병창 등등,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고 있던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하나의 노래책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만을 싣고 있는 노래책이었다면, 굳이 <잡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싣고 있는 사설집이어서 그 책의 이름도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의미를 담아 ‘00잡가(雜歌)’로 이름 붙인 것이 분명하다.

 

 

이로 보면, 잡(雜)이란 의미가 악곡의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서울 경기의 12잡가>라든가, 혹은 <서도잡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도 각 지방의 다양한 소리들을 부르며 살아온 소리꾼들이 자신들의 소리가 정가(正歌)가 아닌, 속가(俗歌)라는 뜻에서 스스로 낮추어 부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한 예로 1950년대, 경서도 소리의 중흥을 위해 <청구고전성악학원>〗을 세우고, 민속의 노래를 위한 교육이나 공연을 통해 부흥을 외치던 벽파(碧波) 이창배 명인은 《가요집성(歌謠集成)》이나 《국악대전집(國樂大全集)》 또는 《한국가창대계(韓國歌唱大系)》 등 관련 저술에서 <12잡가>, <서도잡가>, <휘몰이잡가> 등으로 항목을 설정,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의 명인들이 그렇게 부르며 통칭해 오던 이름을 그대로 실었다.

 

마치 자신의 저술을 졸저(拙著)나 졸작(拙作), 자신의 글을 잡문(雜文)이나 졸문(拙文), 졸고(拙稿)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겸손의 이치는 아닐까? 비록 자신의 책이나 글을 졸작이나 졸저, 혹은 잡문이나 졸문으로 소개한다고 해도, 상대방은 결코 그의 책이나 글을 그렇게 부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산조(散調)음악의 경우도 이를 연주해 오던 명인들은 “헛튼가락”, “흐트러진 가락”, 심지어 “허드렛 가락”이라고도 불렀다. 아니, 예술음악의 극치라고 평가되고 있는 산조의 이름을 “흩어지는 가락”, “하찮은 곡조”라고 표현해 온 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악인(樂人)을 풍각쟁이 정도로 치부해 오던 예술인들의 경시 풍조가 만연해 있던 시대를 엿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산조음악을 해설하는 어느 무대에서 나는 산조음악의 이름을 “헛튼 가락”으로 풀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산(散)이란 글자를 “더 넓게 확산해 나가는 음악”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잡가(雜歌)라는 통칭이 노래 분위기와 맞지 않고, 기악의 산조는 흐트러진 가락이 아닌, 보다 너 넓게 확산해 나가는 음악으로 발상의 전환을 갖자는 주장이 다소 장황하게 이어졌다. 이제부터라도 <잡가>나 <긴잡가>라는 이름보다는 <서울, 경기의 좌창>, 혹은 <서도 좌창>이라는 이름을 쓰자고 강조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