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산책로에서 만나게 된 월하의 시조(時調)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정가의 명인, 김월하 여사가 시조와 만나게 된 인연, 그리고 동호인들을 통해 정가계의 대가들을 만나게 된 배경을 소개하였다.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삯바느질 일을 하다가 위궤양을 앓게 되었고, 위기는 넘겼으나,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그래서 매일 새벽, <구덕수원지>에 올라, 새벽 운동을 하며 시조창 동호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을 통해 당대 유명한 사범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들과 사제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랬다. 당시, 30대 중반의 월하 여사는 피난민이자, 환자였고, 매일 새벽 산책길에 나서며 동호인들과 만났다. 또한 그들을 통해 시조창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정가(正歌)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었기에 훗날 그가 으뜸 명인 자리(예능보유자, 속칭 인간문화재)까지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은 전혀 계획되고, 준비되었던 결과가 아니었다. 모든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만, 그가 노력한 결과는 인정되어야 했고, 그 위에 본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젊은 가객, 김윤서와 월하 여사가 <손녀딸과 할머니>로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기 위해 당시 5살이었던 김윤서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경기도 고양군(현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 보광동)에서 5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고, 2살 되던 해에 유행병으로 할머니, 어머니, 두 오빠 등, 가족 4인을 잃고 고아가 되었으며, 이모 댁에서 종로구 사간동 유씨 부인의 수양딸로 들어가 <유정환>이란 이름으로 살다가 자신의 이름이 <김덕순>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 16살에 혼인하였으나, 6, 25사변으로 남편과 생이별했다는 아픈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아픈 역사, 6.25 전쟁은 밀고 밀리는 남과 북의 불행한 동족싸움이었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北進), 압록강 부근까지 진격하여 남쪽의 승리를 굳히는 듯했지만, 해가 바뀐 1월 4일, 중공군이 가세하여 인해(人海)전술로 밀고 내려온 것이다. 그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까지 내주게 되는, 그래서 그 추운 겨울, 어쩔 수 없이 후퇴하게 되는 상황을 일러 <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가곡 달꽃을 피우다” 발표 무대에서 <계면, 중거-中擧>, “산촌에 밤이 드니”를 불러 객석의 공감을 얻은 김윤서 가객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노래 역시, 이수대엽에서 파생된 곡이고, <중거>라는 이름은 ‘초장(初章) 중간 부분을 높게 들어 올린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중허리 드는 잦은한잎>, 또는 <중허리>라고 부른다는 점, 그 이름에서 잦은=삭(數), 한=대(大), 잎=엽(葉)을 뜻한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이 노래는 산촌(山村)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개 짖는 소리를 통해, 견공(犬公)과 함께 하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의 풍류를 떠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 이 곡은 여창의 맑고, 높은 속 소리로 이어감으로써 현대사회에 엉켜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김윤서와 월하 여사는 사제(師弟)관계이기도 하지만, 그가 5살 때, 월하 선생과 가족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그 뒤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당시, 김윤서는 처음 월하 선생을 뵈었을 때, “너무도 곱고 밝으셔서 할머니를 보고, 따라갔다”라는 추억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