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류리수 기자] 야쿠시지(藥師寺) 묘지 ‘만령의 탑’ 여야용묘(呂野用墓)를 뒤로하고, 우리는 야쿠시지(藥師寺) 인근 산기슭으로 향했다. 살짝 오르막길을 오르면 오른편으로 평평한 자리가 나오는데 옛날 조선인 노동자들이 묵었던 현장 식당(함바) 자리였다고 한다. 그곳을 지나 왼편으로 꺾어서 언덕을 오르자 돌 비석들이 모여 있는 야쿠시지 묘지가 나타났다. 그 왼쪽 끝, 관음상이 서 있는 큰 단상이 바로 ‘만령의 탑’이었다. 왼쪽 아래로 작은 지장보살이 셋 있었다. ▲ ㅎ 선생님과 나는 바닥을 덮은 낙엽을 손으로 걷어냈다. ㅎ 선생님은 관음상 양옆에 놓인 꽃병에 물을 붓고 준비해 오신 꽃을 꽂고 향을 피우셨다. 필자는 한국에서 준비해 간 술을 따르며 예를 올렸다. . 여야용묘 건립 이후로도 죠쇼지(常照寺)에 타고 남은 숯과 함께 섞인 조선인 유골이 시멘트 포대 두 개에 담겨 왔다. 이는 1940년 아조하라다니(阿曾原谷) 눈사태 때 희생된 조선인 무연고자 유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죠쇼지(常照寺)의 당시 주지인 히구치 요시노리(樋口惠昇) 스님은 우나즈키(宇奈月) 쥬도쿠지(樹德寺) 주지스님과 상의하고 당시 우치야마(内山) 촌장에게 부탁해서 우나즈키 화장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보편적 경험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처럼, 태어난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두려움과 의문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사회이든 장례 방식과 죽음에 대한 인식, 곧 생사관에는 고유한 역사와 종교, 철학, 그리고 생활 문화가 스며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곧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와 직결되어 있다. 동양권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장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죽음은 단절이 아닌 조상 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제의(祭儀)와 의식을 통해 이어지고, 죽음은 곧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또 하나의 삶이다. 인도나 부탄과 같이 불교나 힌두교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윤회와 해탈 사상이 생사관의 중심을 이룬다. 장례는 단순히 육신과의 이별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의 이행을 돕는 종교적 의식으로 자리한다. 불전 독송, 탑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더없이 맑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때, 누군가 하얀 솜에서 가느다란 실 한 올을 쭈욱 뽑아 하늘에 길게 그어 놓은 듯한 구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바람결을 따라 흘러가는 그 가느다란 구름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토박이말은 바로 이 모습 그대로의 이름을 가진, '실구름'입니다. '실구름'은 그 이름처럼 '실'과 '구름'이 만난 말입니다. 아주 알기 쉽고 숨김없는 이름이지요. 말집(사전)에서는 이 '실구름'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실같이 가늘고 긴 구름 《표준국어대사전》 실처럼 가늘고 긴 구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두 풀이 모두 더할 나위 없이 또렷하게 그 모습을 그려줍니다. 구름의 높낮이나 이룸몬(성분)보다는, 오롯이 그 모양이 '실'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진 구름을 가리키는 고운 우리 토박이말입니다. 우리가 앞서 배운 '새털구름'이 깃털처럼 흩어지는 모양에 마음을 두었다면, '실구름'은 그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가늘고 길게 이어진 모양새에 마음을 둔 이름입니다. 때로는 '새털구름'의 한 갈래가 '실구름'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높은 바람에 찢긴 어떤 구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