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2월 1일 낮 12시, 서울 중구 창경궁로 8길. 32 방산시장에는 (사)이은관 배뱅이굿보존회 전수관이 들어섰고,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동안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었고, 이와 함께 불안한 정치, 경제의 침체가 길어졌기에 사회 각 분야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전통문화 쪽은 관련 공연이 침체하고, 공공, 또는 개개인들의 학원이나 전수관들이 문을 닫아가거나 축소되는 실정에 놓여 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더욱 전수관을 더 크게 확장해 나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바로 (사) <서도소리 예학당>의 전옥희 경기 지회장이 서울 방산시장 내에 넓은 공간으로 전수관을 확장 이전해 간 것이다. 이날, 축하 잔치에는 문화계 예술계뿐 아니라, 과거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활동하던 유명인사들이 다수 참석을 해서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국악계를 대신해서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다들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더 작고 좁은 학원으로 축소에 축소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전옥희 원장은 오히려 더더욱 큰 전수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놀랄 일이다. 아마도 전옥희 원장의 소리가 점점 원숙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강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 더욱 정성을 쏟고 친절하게 대하는 그의 겸손한 태도라든가 이웃과의 소통에 있어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더 낮은 생활 태도에서 오는 당연한 보상이 아닐까 한다. 이은관 명창 생존 시에도 전옥희 원장은 성심 성의를 다해 선생을 받들고 소리를 배웠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녘땅에서 서도소리가 맥을 이어오는 것이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제자들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아름답다.”라고 칭찬했다.
사실 서도의 전통재담극, <배뱅이굿>은 고 이은관 명창에 의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은 1957년 영화 <배뱅이굿>의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국내 공연은 물론, 가까운 일본을 비롯한 나라 밖 공연을 수없이 펼쳐오다가 2014년, 향년 98살을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배뱅이굿을 위해 삶 전체를 바친 분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으로 배뱅이굿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이제 선생이 떠난 뒤 <배뱅이굿>은 점차 우리 국민 가슴에서 점자 잊혀져 가는 중이다. 하루바삐 배뱅이굿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 분야 전문가들과 종사자들이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전옥희 원창은 서도소리의 전승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중견 명창이다.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힘과 용기를 받고 있는데, 그 가운데 실질적인 경제적 후원자는 방산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인 은주정 사장 김진숙 씨로 알려져 있다.
전옥희 명창이 전해주는 말이다.
“김 회장님은요. 우리가 어떤 공연을 한다고 하면, 만사 제치고 지극정성으로 도움을 주셔서 저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어요. 또한 늘 용기를 주시고, 서도소리를 잘 지켜 가라고 당부해 주시는 서한범 교수님과, 가끔 저를 불러 남몰래 소리를 지도 해 주시는 유지숙 명창님의 도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힘을 낼 수 있는 요인은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제자들의 따뜻한 마음이 늘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고마워한다.
이날, 전옥희 명창은 자정까지 손님 접대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고 했다. 이렇게 국악 전수관이 배우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아져 간다는 소식과 함께 국악,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인기 종목인 서도소리의 <배뱅이굿>의 미래가 서서히 환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행보에 큰 손뼉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