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17년 뒤인 1460년(세조 6년)에 정책 기관인 예조에서 《훈민정음》을 문과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자고 건의하는 일이 일어났다. 사대부들은 세종대왕 사후 하급 관리 시험에서 《훈민정음》을 퇴출했다. 하지만 세조는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받아 한글 보급 정책을 다시 추진하였다. 그 뒤 실생활에서 한글이 유용하게 쓰이자, 한글 사용을 반대했던 사대부들도 한글을 모르면 불편한 상태가 되었고,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사대부들은 《훈민정음》을 정식 문과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자고 청했다. 세종대왕 때에는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으로 채택했지만, 세조 때에는 예조에서 자발적으로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더군다나 하급 관리를 뽑는 시험이 아닌 문과 시험 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훈민정음》은 명실상부한 고급 관리 시험 과목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Selecting High-Ranking Officials Through Hangeul Seventeen years after King Sejong had created Hangeul, in 1460 (the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조선 제6대 임금 세조는 1459년(세조 5년), 세종이 지은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서 언해본을 펴냈다. 또한 《월인천강지곡》에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을 고쳐 합한 책인 《월인석보》를 펴냈다.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먼저 나온 불경언해서다. 당시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지만, 백성 중에는 불교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세종은 백성이 믿는 불교를 통해 한글을 보급할 목적으로 불경언해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세조는 아버지 세종의 뜻을 이어받아 불경언해 작업뿐 아니라, 1461년(세조 7년)에는 한글로 된 불경을 제작하는 관청인 간경도감을 세워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 Publishing Hunminjeongeum in Korean King Sejo, the 6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in 1459 (the 5th year of Sejo’s reign), published a vernacular edition of Hunminjeongeum, which had been originally written by King Sejong. Additionally, he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53년(단종 원년) 궁녀들과 별감들이 서로 한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다 들키는 사건이 일어났다. 궁녀인 중비, 자금, 가지와 별감인 부귀, 수부이, 함로는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싹틔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궁궐 안에 소문이 돌아 감찰 상궁에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들은 곧장 지금의 경찰서인 의금부에 끌려갔고, 의금부에서는 그들에게 ‘부대시(때를 가리지 않고 사형시킴)’라는 참형을 내렸다. 하지만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된 단종은 그들의 죄를 감해 주었다. 참형을 면한 궁녀들은 곤장을 맞고 평안도 강계에서 관비로, 별감들 역시 곤장을 맞고 함길도 부령진에서 관노로 살았다. 이처럼 궁녀들과 별감들 사이에서도 한글이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일 만큼 궁궐 안에서도 일상생활에 한글이 친숙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A Court Lady and a Lower Official Exchange Love Letters in Hangeul In 1453 (the first year of King Dan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court ladies and lower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1449년(세종 31년), 세종은 황희와 하연을 영의정 부사로 삼았다. 황희는 재상의 자리에 있는 동안 너그럽고 후덕했으며 백성들의 여론을 귀담아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명재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연은 까다롭게 살피길 좋아하고 노쇠한 탓에 일을 할 때 실수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벽에다 한글로 ‘하 정승아, 또 공사를 망령되게 하지 마라.’라고 써 놓았다. 이 벽서를 쓴 사람은 하급 관리일 것이다. 세종이 가장 먼저 한글 교육을 시킨 대상이 하급 관리였으며, 잘못된 정책으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도 하급 관리였기 때문이다. 이 벽서 사건은 백성 누구나 생각을 적어 알릴 수 있게 되었고, 백성과 관료, 백성과 백성 사이에 자기 생각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Lower Officials Write a Notice in Hangeul In 1449 (the 31st year of Sejong’s reign), King Sejong appointed Hwang Hui and Ha Yeon as the Prime Minister and Vic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2년 9개월 뒤인 1446년(세종 28년) 9월에 한글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훈민정음》은 한자로 된 목판본으로, 1책 33장으로 이루어졌다. 앞 4장은 세종대왕이 직접 지은 글 정음편(예의편)이고, 뒤 26장은 집현전 학사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가 함께 지은 정음해례편이다. 마지막 3장은 정인지가 대표로 서문을 지었다. 정음편은 ‘세종대왕의 서문’과 ‘예의’로, 정음해례편은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용자례’와 ‘정인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인지는 서문에서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해례를 지었음을 밝히고 있으며,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면 깨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해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라고 말하며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나 닭의 울음,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쓸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King Sejong Promulgates Hangeul to the People King Sejong, 2 years and 9 months after the creation of the Hunminje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두 달이 지난 1444년(세종 26년) 2월에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글 창제는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학문에 정진하는 데 한글이 손해를 끼치며,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은 죄인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탓이지 죄인들이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따를 것은 따르되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말했고,, 한글 창제는 학문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쓰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설득해 더욱더 철저하게 한글 반포를 준비했다. The Officials Petition Against Hangeul Two months after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in February 1444 (the 26th year of Se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officials, including Choi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나신 이무성 화백님은 참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대도레코드사에서 우리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하시다가, 은퇴 뒤 <우리문화신문>을 통해 붓을 드시고 그 붓끝으로 한글의 역사와 한국문화,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되살려내셨습니다. 특히 2015년 광화문 《한글창제 28사건》 전시, 2019년 《한글을 빛낸 여성 19인》 전시, 2020년 서울도서관 외벽을 수놓은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한글의 역사를 그림으로 풀어내신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이무성 화백님은 한글 역사의 완성판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 끝내놓고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습니다. 올해는 한글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화백님께서 평생 빛내고자 하셨던 한글의 역사를 기리는 이 특별한 해에, <우리문화신문>은 김슬옹ㆍ김응의 글과 함께 화백님의 유작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을 추모 연재로 선보입니다. (편집자 말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에, 초성 17자, 중성 11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