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까 치 밥 험한 여름 감나무 몸살 앓아(초) 날짐승 밥 여유인들 있으랴(돌) 뼈가 앙상해진 구도자 모습(달) 황폐한 세상 까치밥 부처네(심) . . . 24.10.24. 불한시사 합작시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화답시(和答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으로 서로 화답 시(和答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게 아닌데 꽃구경은 실컷 할 것 같았습니다 밭 갈고 봐야지 씨감자 놓고 허리 펴야지 하다가 꽃 지며 봄이 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별구경은 밤마다 할 줄 알았습니다 이골만 매고 마쳐야지 저것만 치우면 끝내야지 하다가 별은커녕 목 한번 못 젖혔어도 은하수는 흘러만 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천렵(川獵) 한번 못한 채 여름이 왔다 가고 단풍 산길 한번 못 걸었는데 어느새 낙엽 지고 겨울 옵니다 눈 푹 빠지면 책에 덮이고 글줄깨나 써보려 했건만 나무하고 돌담 쌓는 사이 눈 녹으며 푸성귀 돋습니다 이게 아닌데헤 이게 아닌데헤 그렇다지요 농군의 일은 밥숟갈 놓아야만 끝난다지요 그렇더라지요 시골살이가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갈 즈음 반철학자(半哲學者)가 되어 있더라지요 에헤헤헤 으야야야 이게 아닌데헤이 이게 아닌데 어허! 장선생 그러다 피 게우겠소 * 이 시는 장사익의 <이게 아닌데> 노래를 듣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쓴 시다. ‘국민 소리꾼’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광천중, 선린상고, 명지대를 나왔다. 고교 졸업 직후부터 태평소를 비롯한 피리 종류의 악기는 거의 다 섭렵했고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동작골의 봄 - 김상아 노래를 불러주세요 꽃다지 광대나물 샐쭉대는 밭두렁에서 그거면 돼요 밭은 내가 갈게요 기타도 퉁겨주세요 호박씨 손톱으로 그 박자 따라 쇠똥거름 곰배질*은 내가 할게요 낮은 하늘 홍매화 가지 위 종다리 날고 조릿대 숲 마른 댓잎 왕지네 기어가는 영상을 시로 적어주세요 꿀벌들 털 다리에 시간은 묻어가고 남녘 바람 비질로 자투리 햇살마저 골 안에 쓸어 넣고 문 닫아버리면 달그림자 팔베개에 뉘이고 꼬깃꼬깃 주머니 속 그 시를 읽어주세요 저 깊은 뱃속에서 들려오는 씨앗 트는 소리 들으며 꿈결인 듯 잠들래요 멍머구리*도 짝짓는 밤 동작골에서 * 곰배질 : ‘고무래질’의 사투리 ‘고무래’는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는 데 쓰는 ‘丁’자 모양의 기구 *멍머구리 - 참개구리의 사투리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피 붙 이 - 김상아 서녘 하늘이 아련히 물 들면 아내의 손을 잡습니다 먼 곳에 아내 모르는 깊은 그리움 하나 있습니다 새소리가 처연히 들려오면 아내와 산길을 걷습니다 내겐 들꽃 씨 같은 여문 그리움이 있습니다 콧등이 시려와 아내를 꼬옥 안습니다 가여운 내 업 하나가 찬 바람에 나뒹굽니다 아내가 알지도 모릅니다 내 핏줄 속으로 애달픈 그리움이 흐른다는 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설악산 뱃사공 - 김상아 아무 말 못 했습니다 남들이야 하마 비선대부터 기암에 단풍에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귀면암을 지나 천불동에 이르도록 좋단 소리 한마디 안 했습니다 이제 슬슬 고뱅이에 기름 빠질 때도 되었건만 힘으로야 이 젊은 아내가 나을 수도 있으련만 스틱은 내게 주고 물이며 도시락이며 과일이며 한 짐 짊어지고 앞서 오르는 당신 작대기 삿대로 바윗길을 저어나가는, 내게 한 치의 소홀함도 없는 당신의 뒷모습에 나 헤피 웃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가을 절경을 본다지만 나는 영원으로 함께 건너갈 사공을 보았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됫박 막걸리 - 김상아 그는 해방촌만 그렸다 등에는 막냇동생, 머리엔 광주리, 손에는 보따리를 든 어머니의 모습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고단을 지고 돌아오는 지게꾼 아버지의 남루한 작업복 “신문이요, 석간, 석간신문이요”를 밤늦도록 외치는 신문팔이 형의 목소리를 그렸다 그는 절망을 그리지 않았다 가끔은 변두리에 가서 ‘야매 똥퍼*’를 해도 월세가 밀리고 동생들 기성회비도 밀려도 아버지 제사 한 번 제대로 못 모시고 꼬부라진 어머니 약 한 첩 못 지어드려도 그의 그림엔 어두운 따스함이 숨어 있었다 그의 화실은 삼각지에 있었다 허름하여 세가 싼 곳이지만 가난이 벼슬인 그는 가장 퇴락한 공간을 얻어 테레핀 냄새로 수리를 했다. 유난히 불빛이 많은 밤이었다. 삼각지 로타리를 돌아가는 불빛들은 죄다 이태원 쪽으로, ‘문안에’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교회 성가대들이 찬송가로 얼은 하늘을 깨고 다니는 통금 해제된 그 밤에 우리는 주머니를 털어 ‘라면땅’ 한 봉지와 막걸리 한 되를 받아와 마주 앉았다 “아껴 마셔라. 배갈 잔에 따라라” 배갈 잔이 아니라 소주병 뚜껑에 따랐어도 어차피 모자랄 술이었다 “우린 할 수 있지? 자, 이 수돗물이
[우리문화신문=허홍구 시인] 어버이날 일기 - 허 홍 구 아버지 어머니 무덤 앞에 무릎 꿇고 큰절 올렸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다른데 아들을 알아보셨겠습니까 먼 산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 아프게 울다 왔습니다. 이 못난 불효자가 무슨 할 말이 있었겠습니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길을 걷다 왔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명호 시인] 폭 포 사자후 포효런가 가는 길 거침없어 폭염을 압도하니 청량함 장쾌하네 맹하에 부러울 것은 함께 못한 일이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미 꾸 라 지 - 김 상 아 세상이 속도와 효율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오 더디고 답답해 보여도 찬찬함과 세세함도 필요한 것이지 효율과 성과를 따지는 사람은 돈벌이 체질이고 보잘 것 없는 것도 아끼고 하찮은 것도 살피는,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장인(匠人)의 길을 걷는다오 걸작의 명장은 그런 사람의 몫이지 그렇다고 내가 명장이란 말은 아니고 나는 떨어져 홀로 난 순 하나도 귀히 여기기에 좀 더딜 뿐이라오 마행처 우역거( 馬行處 牛亦去) 말이 가는 곳엔 소도 가는 법이지 더디 가면 그만큼 많이 볼 수 있다오 고사리를 자기의 반도 못 꺾었다는 마눌님의 핀잔을 이번 한번은 잘도 빠져 나왔다만은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바람의 길 - 김상아 꽃씨를 틔우는 건 봄비가 아니라 바람이라 하였지 바람이 낸 길을 바람 따라 걸으면서도 그 속을 알지 못했지 음악이 날려 오고 문학이 날려 오고 이 모든 게 바람의 짓이란 걸 누군가 일러준 뒤에야 알게 되었지 내가 익는 건 햇살이 아니라 한 자락 바람이라 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