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게 아닌데
꽃구경은 실컷 할 것 같았습니다
밭 갈고 봐야지
씨감자 놓고 허리 펴야지 하다가
꽃 지며 봄이 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별구경은 밤마다 할 줄 알았습니다
이골만 매고 마쳐야지
저것만 치우면 끝내야지 하다가
별은커녕 목 한번 못 젖혔어도
은하수는 흘러만 갑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천렵(川獵) 한번 못한 채
여름이 왔다 가고
단풍 산길 한번 못 걸었는데
어느새 낙엽 지고 겨울 옵니다
눈 푹 빠지면 책에 덮이고
글줄깨나 써보려 했건만
나무하고 돌담 쌓는 사이
눈 녹으며 푸성귀 돋습니다
이게 아닌데헤
이게 아닌데헤
그렇다지요
농군의 일은 밥숟갈 놓아야만 끝난다지요
그렇더라지요
시골살이가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 갈 즈음
반철학자(半哲學者)가 되어 있더라지요
에헤헤헤 으야야야
이게 아닌데헤이 이게 아닌데
어허! 장선생
그러다 피 게우겠소
* 이 시는 장사익의 <이게 아닌데> 노래를 듣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쓴 시다. ‘국민 소리꾼’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광천중, 선린상고, 명지대를 나왔다. 고교 졸업 직후부터 태평소를 비롯한 피리 종류의 악기는 거의 다 섭렵했고,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더 좋아하여 그 뒤 김덕수 사물놀이패, 이광수 사물놀이패와 어울리며 공연활동으로 음악계에 발을 들인다. 첫 음반은 1995년에야 선보였는데, 그의 나이 마흔여섯 때 일이었다. 2016년에는 성대결절이라는 가수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활발한 무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