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앞 줄임) 우리는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우리의 성의와 재능을 끝까지 이 신문에 바치고자 한다. 여기에서 쫓기면 저기로 가고, 산에서 쫓기면 물로 가면서라도, 한 주에 한 번 발행하지 못하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한 달에 한 번도 못하면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발행할 것이다. 이 사람이 하지 못하면 저 사람에게 이어 주고, 그 세대에 못하면 다음 세대에 전하여서라도 계속해 나가, 우리의 독립이 완성될 때까지, 그리고 독립이 이루어진 뒤에도 영원히 이 신문의 생명을 이어 가고자 한다.(뒷 줄임)” - ‘본보 속간에 임하야’ 상해 국한문판 <독립신문> 제87호 (1920.12.18.) 그제(4일)는 국립대한민국심시정부기념관(아래 임시정부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싹, 독립신문> 전시를 보고 왔다. 위 ‘독립신문 속간에 임하야’ 행간에서 알 수 있듯 독립신문 발간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였나를 여실히 입증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제나라 땅과 말을 일제에 빼앗기고 이국땅 상해에서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뜻을 모아 독립신문을 펴낸 것은 1919년 8월 21일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임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 목요일(20일) 낮 3시, 서울특별시청별관 서소문청사 1동 13층 대회의실에서는 ‘제2차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 310명 발굴, 포상신청 발표회’ 및 국립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제16차 독립유공자 310명 포상신청 설명회’(아래, 서울출신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광복회(회장 이종찬)ㆍ국립인천대학교(총장 이인재)ㆍ서울특별시(시장 오세훈)가 공동 주최한 행사로 지난 1년 동안 국립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발굴한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고 및 포상신청서 설명회 자리였다. 이번에 <서울출신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표회>는 광복 80돌(2025년)을 계기로 기획된 서울출신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으로 올해 광복 81주년(2026)까지 1년 6개월 동안 모두 80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이 가운데 540명의 미서훈 독립운동가의 포상신청서를 제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800여 명 발굴자 가운데 540명(지난해 230명, 올해 310명)만 포상신청서를 제출하게 된 까닭은 일제강점기 판결문,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일본외무성자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문서 및 일제총독부 발행 각종 자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새벽을 깨운 목소리 백범의 동지 "최준례" 이윤옥 황해의 거친 바람 가르며 조선의 딸들에게 빛을 건네던 손 안신여학교 교단 위에서 울리던 임의 목소리는 참된 해방의 새벽이었다 남편이 쇠창살에 갇힌 세월 동안 눈물 대신 놋쇠처럼 단단한 기개를 품고 차가운 감옥 문턱을 지키던 동지 임은 백범의 아내이기 앞서 당당한 투사였나니 압제자의 칼날이 '불온하다' 이름 붙여 옥죄어도 상하이 만리타향 임시정부 뜰 안에서 동포의 아픔을 보듬고 숨결을 나누었도다 비록 이국땅 차디찬 병상에서 눈을 감았을지라도 역사의 거대한 숨결 속에 새겨진 임의 이름 석 자를 조국은 잊지 못하리 뒤늦게 받은 빛나는 훈장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지사의 뜨거운 삶 겨레가 영원히 기억해야 하리라. 백범 김구 선생의 부인이자 여성 계몽에 앞장섰던 최준례(1889-1924) 지사가 세상을 뜬 지 102년 만에 뒤늦게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1904년 김구 선생과 혼인한 최 지사는 1911년 안악사건으로 남편이 투옥되자 4년 동안 옥바라지를 도맡았으며, 안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근대 학문과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여성 계몽운동에 헌신했다. 이후 19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