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3월 21일 아침 9시, 랑중 수도원 게스트하우스 문을 나서자 차가운 고산의 공기가 뺨을 스쳤다. 오늘의 여정은 동부 부탄 트라시강(Tashigang)주, 해발 약 3,500m의 매락(Meak) 마을로 트라시강 중심 도시에서 산길로만 7~8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두메다. 인근의 사크텡(Sakteng)과 함께 브록파(Brokpa) 문화권을 형성한 곳으로, 고지대 사람들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는 마을이다. 사방은 히말라야의 탁 트인 초원과 침엽수림, 그리고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매락으로 향하는 길은 한마디로 ‘험난’했다.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구불구불한 산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원래 이 길은 마을을 잇는 좁은 오솔길에 불과했지만, 2012년이 되어서야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넓혀졌다. 그전까지 매락은 ‘특별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제한 구역이었다. 전기와 휴대전화 신호가 닿기 시작한 지도 불과 몇 해 전이고, 초등교육 시설 역시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부탄은 전통과 생태를 해치지 않으려 ‘필요 이상의 개발’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매락은 천 년 넘게 이어온 자연과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다.
매락에 가는 길목,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한 로둥라 초원(Rodung La Meadow)은 그야말로 대자연의 품이었다. 양과 소, 야크들이 무심히 풀을 뜯고, 멀리 붉은 로드로잰단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꽃축제는 해마다 4~5월에 열린다는데, 오늘은 축제 대신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초원의 풍경이 내게 더 큰 선물이었다. 대초원의 그림 같은 장면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다시 차에 올라 매락을 향했다. 차창 밖으로는 수백 년은 족히 됐을 법한 주목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사이사이 무궁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육중한 고사목들이 쓰러져 이끼에 덮여 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요하고 장엄한 세월의 흔적이었다. 간간이 숲속에서 원숭이들이 장난스럽게 나무를 오르내렸다.
거목들이 빼곡한 원시림을 지나 유유히 흐르는 라강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 낮 2시 무렵, 마침내 매락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서 반갑게도 어린 소녀 두 명을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해맑게 웃음 지으며 낯선 이방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탄의 전통 교복이 그 애들의 천진한 얼굴과 잘 어울렸다. 마치 내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듯했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사진을 함께 찍자 그 웃음이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마을 비포장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전형적인 산속 돌담과 전통 목조 가옥들이 차분히 줄지어 있었다. 부탄은 집을 지을 때 반드시 국가가 정한 전통 건축 규범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일까 어디를 가나 집들이 단정하고 일관된 풍경을 이룬다.
3월 봄이지만 고산지대라 봄기운은 아직 이곳에 닿지 않았다. 나무들은 앙상했고,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길을 걷다 보니 맨 먼저 길가에 작은 잡화상(푼소 왕디)이 보였다. 아마 마을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물품들을 공급해 주는 점포인 듯 보인다. 조금 더 걷다 작은 구멍가게 앞에 멈췄다. 창 너머로 여인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침침한 가게 안에 창문을 통한 햇살이 실루엣처럼 그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길이 닿자,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았다.
그 순간,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천진스러운 모습들이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나는 애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진열대에서 과자를 꺼내 아이들 품에 안겨 주었다. 봉지를 꼭 끌어안은 아이들을 나를 향해 해맑은 웃음으로 답례하였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는 노래 한 곡 하겠다고 자청했다.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선택한 곡은 한국 전통민요 ‘아리랑’이었다. 자세를 가다듬고 천천히 두 팔을 벌려 박자를 맞춰가며 구성지게 아리랑을 불렸다. 그날따라 나도 내 모습이 그렇게 유연하고 아름다운지 처음으로 느꼈다. 내 모습을 향한 아이들과 여인들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노래가 끝나자, 마치 오래된 가족들과 마주하듯 우렁찬 손뼉이 요란하게 쏟아졌다.
내 노래가 끝나자 답례로 이 마을 여인들은 유목민 전통 민요와 춤을 선보였다. 여러 명이 줄지어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고, 손끝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노래하는 그 모습은 부탄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혼(魂) 그 자체였다. 고대와 현대의 영혼이 변함없이 어울려 흐르는 장면이었다. 매락마을은 아직도 전통적인 유목민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노래와 춤 또한 한국이 아리랑을 전통문화로 소중하게 여기듯 부탄도 여성 중심인 춤과 노래가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 구조화된 전통무용과 가면 춤(차암)도 그들은 생활 속에서 놓치지 않고 유목민만의 독특한 가락과 몸짓을 잘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다.
유목민은 생활 자체가 단순하다. 여전히 계절에 따라 고지와 계곡을 오가며 유목 생활을 한다. 야크 털로 옷을 짜고, 치즈와 버터, 육류로 자급자족한다. 나라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며, 생활의 불편함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의 삶은 ‘편리함’보다 ‘전통’을 선택한 삶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인간다운 응집력은 험한 산중 두메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다.
한국과 부탄, 전통의 길 위에서 매락의 하루를 보내며, 나는 한국과 부탄의 문화 보존 방식을 떠올렸다.
한국은 유무형 유산을 세계 으뜸 수준으로 보존ㆍ연구하지만, 생활 속 전통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도시 개발로 옛 마을은 사라지고, 전통은 종종 관광 상품 속에만 남는다. 따라서 연구ㆍ기록ㆍ보존 인프라는 세계 으뜸 수준이지만, 생활 속 전통 계승은 미약하다. 계승과 존속은 이미 멀어진 것들이 많다.
부탄은 전통을 ‘현재의 생활양식’으로 지켜낸다. 건축, 의복, 의례, 축제가 현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개발보다 전통 보존이 우선이다. 개발은 전통보다 후 순위이며, 도시ㆍ농촌 모두 문화 경관이 일관성 있게 보존 관리되고 있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지금, 한국은 편리함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그 끝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로봇이 모든 것을 대신하는 세상 속에 이제 ‘인간답게 산다’라는 말을 과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아련해진다.
매락 마을에서 마주한 티 없는 웃음과 노래, 토속이 녹아나는 그들의 삶, 두메 생활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매락 마을 사람들, 나는 그곳을 떠나왔건만 내 마음은 아직 그곳에 남아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