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온겨울달 12월도 이레를 지나 여드렛날이 되었습니다. 거리는 벌써 들뜬 기운으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가까운 이들과 만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해끝 모임 날을 잡기 바쁩니다. 요즘 들려오는 기별을 보니, 젊은이들의 해끝 모임 바람빛(풍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그릇을 돌리던 옛 모습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맛난 먹거리를 나누며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임이 늘고 있답니다. 참 반가운 기별이지요?
그런데 얼굴을 마주 하고 앉아서도 서로의 눈이 아닌, 손바닥만 한 네모난 똑말틀(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입니다. 몸은 가까이 있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듯한 모습, 어쩐지 쓸쓸하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과 '소통'이나 '유대감' 같은 딱딱한 말 대신, 서로의 마음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토박이말 '눈부처'를 나누고 싶습니다.
'눈부처'라는 말, 처음 보시거나 듣는 분들이 많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 말을 말집(사전)에서는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라고 풀이합니다. 낱말의 짜임을 살펴보면 우리 몸을 뜻하는 '눈'과 부처님의 '부처'를 더한 말이지요. 옛 책을 보면 눈동자 제몸(자체)을 값지게 여겨 '부처'에 빗대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부처님처럼 값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또 내 눈 속에 맺힌 당신의 모습이 마치 작은 부처님 같다는 뜻으로 풀이하곤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 눈 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맺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맞은 쪽 사람의 코앞까지 다가가서, 흔들림 없이 그 사람의 눈을 빤히 바라보아야만 비로소 내 모습이 그 까만 눈동자 안에 작은 부처처럼 떠오르니까요. 그러니 '눈부처'를 본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오롯이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뒷받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은 우리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 속에서도 참 아름답게 쓰였습니다. 정호승 님은 <눈부처>라는 가락글(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 끝없이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잘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누군가의 눈동자 속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말만큼 멋진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운 말을 우리 나날살이에는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먼저, 딱딱한 뉴스나 모임 알림부터 부드럽게 바꿔 보고 싶습니다. "이번 연말 모임은 스마트폰 없이 밀도 있는 소통을 합시다"라는 말 대신, "올해 해끝 모임에는 서로의 눈 속에 맺힌 '눈부처'를 만나 봅시다"라고 말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가까운 이들과 마주이야기(대화)를 나눌 때도 써 보세요. 자꾸만 똑말틀(스마트폰)으로 눈길을 돌리는 동무에게 "고개 좀 들어봐. 네 눈동자 속에 살고 있는 내 '눈부처'가 잘 있는지 좀 보게."라며 너스레를 떨어보는 겁니다. 서로 웃음이 터지며 절로 눈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해끝 모임 찍그림(사진)을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올릴 때도 좋습니다. 함께 웃고 있는 찍그림(사진) 밑에 이런 글을 남겨보세요. "올해 가장 좋았을 때는 맛난 것을 먹을 때가 아니라, 당신의 맑은 눈동자 속에 내 '눈부처'가 또렷하게 비치던 때였습니다."라고요.
올 한 해, 여러분은 누구의 눈동자를 얼마나 오래 바라보셨나요? 온겨울달 12월의 남은 날들은 술그릇을 부딪치는 소리보다, 서로의 눈빛을 맞부딪치는 따스함으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깊이 바라보세요. 그 까만 눈동자 속에 맺힌, 이 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