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창가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아끼던 기억들이 바다 끝 너머로 몸을 숨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어제 일처럼 뚜렷했던 얼굴들이 시간의 먼지에 쌓여 모습만 남은 채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을 닮았습니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아스라한 그림자들을 붙잡아두고 싶어 우리는 마음의 눈을 가늘게 뜨곤 합니다. 바쁜 나날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마음속 풍경들이 이토록 위태롭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만듭니다. '가물거리다'는 '불꽃이나 빛 같은 것이 꺼질 듯 말 듯 자꾸 약하게 흔들리다' 또는 '정신이나 기억이 흐릿해지다'라는 뜻을 지닌 우리말입니다. 이 말의 말밑을 생각해보면 작고 여린 움직임을 나타내는 '가물'에 같은 움직임이 되풀이된다는 뜻의 '-거리다'가 붙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단순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고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깜빡이는 생명의 힘이 담긴 표현이기도 합니다.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의 그 간절한 깜빡임, 혹은 잠들기 바로 직전 꿈결 같은 상태를 이보다 더 섬세하게 나타낼 낱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할아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눈깜짝할 사이에 답을 건네는 지은슬기(인공지능)과 눈길을 사로잡는 짧은 움직그림들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는 저도 모르게 '빠름'이라는 홀림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다는 마음졸임에 쫓겨 설익은 열매들을 서둘러 거두느라 스스로를 들볶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가 서두르지 않아도 철은 어김없이 바뀌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 고요한 흐름 속에서 저마다의 빠르기로 부지런히 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조급한 발걸음들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가만히 붙잡아둘 낱말 하나를 꺼내 봅니다. 바로 '적바림'입니다. 본디 '적바림'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하여 글로 간단히 적어 두는 일, 또는 그 기록을 뜻합니다. 이는 대단한 외침이나 시끌벅쩍한 소문 없이도 세상의 밑바탕을 바꾸어 놓는 '시나브로'의 힘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 번의 투자로 큰 부자가 되거나 짧은 공부로 실력이 부쩍 늘기를 바라며 '한 방'이라는 끝에만 목을 매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의 무르익음은 그렇게 벼락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깨달음이 시나브로 쌓여 커다란 흐름을 만들듯, 오늘 내가 읽은 글 한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꽃샘잎샘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어느덧 짙어진 봄기운이 땅의 틈새마다 삶의 숨결이 차오르는 요즘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온 탓에, 세상이 건네는 다정한 손길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곤 하지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과 사람들 사이에는, 사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살가운 온기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닿는 것마다 정겨운 숨결을 불어넣는 우리말, '살갑다'를 통해 우리 삶의 결을 다시금 톺아보려 합니다. '살갑다'는 참으로 여러 가지 낯빛을 지닌 낱말입니다. 먼저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씁니다. 살가운 정을 나누는 사이란, 상대의 허물을 탓하기보다 그 마음의 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이에서 피어납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닿는 느낌이 가볍고 부드러울 때도 살갑다고 말합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이 뺨을 스치듯, 그 촉감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비로소 평온을 느낍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머문 집이나 물건처럼, 정이 듬뿍 든 대상에게도 이 말을 건넵니다. 더 나아가 속이 너르고 넉넉한 대상에게도 쓰이니, 결국 살갑다는 것은 바깥의 차가움을 이겨내고 내면의 따스함을 밖으로 길어 올리는 모든 정성을 뜻하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