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쁜 놈은 나뿐인 놈이다.” 이외수 작가의 명언 중에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놈 곧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인 것이다. 어렵게(?) 말해서 이기주의자가 나쁜 놈이라는 뜻이다.
‘우리’라는 말은 나의 범위를 넓힌 말이다. 우리 어머니, 우리 아들, 우리 딸,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에서 보듯이 우리말에서는 우리의 범위가 매우 넓다.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고 만다. 심지어는 ‘우리 마누라’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다.
영어로 ‘우리 마누라’를 번역해 보라. our wife? 마누라를 공유한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마누라 또는 우리 남편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부부들이 어색하지 않게 자주 쓰는 말이다. 나를 강조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문화와 공동체를 강조하는 ‘우리주의’가 발달한 우리 문화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의 관계에 관한 국제 토론회”가 열렸다. 이 국제회의에서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로렌츠는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사회적 혜택을 강조하였다. 그는 즐거움의 대상인 애완동물(pet) 대신 삶을 함께하는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제안된 이후 집에서 키우는 개를 반려견, 고양이를 반려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000년대 후반에는 반려견이라는 말이 종전 용어인 애완견을 대체하였고 방 안에서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반려견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가 있나? 2024년 1월에 국회에서 ‘개 식용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2024년 말 현재 1,546만 명으로서 총인구의 30%에 해당한다. 반려동물의 수는 개 546만 마리, 고양이 217만 마리인데 최근에 개는 줄고 고양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얘기가 없는 부부가 늘고, 실업과 이혼 등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다 보니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정서적 외로움을 달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작가의 글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을 반려인이라고 표현해서 감탄한 적이 있다. 특히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반려인이 많다. 서울의 길거리에서 개에게 말하면서 자기를 엄마라고 호칭하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다. 공원에서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가는 사람들 역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범위가 개와 고양이까지 확장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는 가축을 가족처럼 여겼다. 한솥밥을 같이 먹는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말한다. 외양간에서 주인과 함께 사는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소는 농사 일을 돕고 죽어서는 고기를 제공한다. 소를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생구라고 한다. 좋은 음식을 먹이고 함부로 꾸짖지 않았다. 소를 사람 대접을 하면서 소중히 여겼다. 한집에 살며 입을 하나 보태어 먹여 살려야 하는 하인이나 머슴을 뜻하는 말이 생구였다. 소도 ‘우리’의 범위에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원래 가축을 가두는 울타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외부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고 그 안의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강한 소속감을 상징하는 단어가 우리이다. 한국인은 ‘나’라는 말보다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며 공동체 의식이 아주 강한 국민이다.
들에서 일하다가 음식을 먹을 때에 첫 숟가락을 떼어 ‘고수레’라고 외치면서 던지는 습관은 짐승과 새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주는 공동체 의식이다. 감나무 꼭대기에 몇 알 남겨 놓은 까치밥은 새까지도 배려하는 아름다운 공동체 의식이다. 우리 할머니들은 뜨거운 물은 반드시 식혀서 땅에 버렸다. 땅속에 사는 미물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었다.
최근에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위기와 관련되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사상이 동학사상이다. 동학사상은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생명존중 사상이 독특하다. 해월은 우주만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였다. 모든 사람과 모든 동식물의 생명은 뿌리가 같은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증명되었다. 35억 년 전에 나타난 지구 첫 생명체에서부터 다양한 경로로 생물이 진화하였다. 생물의 계통수(系統樹)는 생물종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다양한 종으로 갈라졌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데, ‘생명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진화의 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는 첫 생명체에서 만난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동학의 ‘삼경(三敬)사상’은 매우 독특한 사상이다. 삼경이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뜻한다. 경천과 경인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그러나 경물은 물건(여기서는 동식물로 해석된다)을 공경하라는 의미로서 동학에만 있는 특이한 사상이다. 동식물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인간의 욕심을 위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동식물을 멸종시키는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동학은 매우 환경친화적인 사상이다.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고 지구생태계의 파괴를 막을 수 있는 사상이 동학사상이라고 생각된다. 알기 쉽게 말하면 동학사상이란 나의 범위를 확대하여 내 가족은 물론 다른 모든 사람과 동식물을 나처럼 소중히 여기고 공경하자는 사상이다.
요즘 K-로 시작하는 한류(韓流)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 음식, 의복, 미용, 음악, 영화 등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류 열풍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으려면 동학사상을 잘 연구하여 ‘K-종교’라는 이름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인공지능(AI)까지 등장하였지만, 지구촌에서는 아직도 전쟁과 환경파괴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구촌의 주민인 ‘나’가 주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과 온갖 동식물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자는 사상이 동학사상이다. 이처럼 훌륭한 생명 사상이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