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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시내의 거대한 지하물궁전을 걸으며

1500년전 건설한 지하저수조 ' 예레바탄 사라이'

[우리문화신문=금나래 기자]

 

 

 

 

 

 

 

 

그제는 튀르키예 (아래, 터키) 이스탄불 시내의 로마시대에 완성한 지하물저장소(영어로 바실리카 저수조, 터키어로 예레바탄 사라이)엘 다녀왔다. 실은 전날 저녁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 긴 줄을 섰었는데 예약에 문제가 생겨서 다음날 아침 다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할때만 해도 내심 ‘물저장소 쯤이야 안봐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막상 지하에 들어가보니, ‘안봤으면 후회했을뻔’ 싶었다.

 

이곳을 일명 지하물궁전이라고도 부르는 까닭을 알겠다. 터키 곳곳에 지상의 궁전터에서 보았던 어마무시한 돌기둥 336개가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모습 사이로 주홍빛 조명이 비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지하물저장소가 아니라 지상의 대리석 궁전을 연상케한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2년 전쟁 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 약 10만 명 이상의 시민이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아래, 저수조)를 건립하였다. 이 저수조 건립 이전인 3~4세기 무렵 이 자리에는 '스토아 바실리카(Stoa Basilica)'라고 불리는 거대한 광장과 건물이 있었다. 바실리카는 상업, 법률,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도시의 핵심 공공장소였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 광장 아래에 거대한 저수조를 지으면서, 지상에 있던 건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바실리카 저수조(Basilica Cistern)'라고 했는데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곳의 전체 면적을 알기쉽게 말하자면 축구장 약 1.3개 합친 면적으로 8만 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이 공간에는 각기 다른 로마 신전(神殿)에서 가져온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웅장하게 서 있다. 저수지 입구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아주 특이한 기둥이 눈길을 끄는데 바로 메두사(그리스 신화 속 괴물로, 눈이 마주치는 생명체를 모두 돌로 만드는 마력을 가진 뱀 머리카락의 여인이다)의 머리를 거꾸로 세운 기둥으로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는 사진마당이다.

 

탄성을 지르며 지하물궁전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들 틈에 끼여 나 역시, 1,500년전 이렇게 거대한 지하저수조를 기획했던 동로마 제국의 설계자를 떠올려보았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 거대한 저수지를 건설하기 위해 약 7,000명의 노예가 동원되었다고 하며 저수조 건설과정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노예가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저수조 돌기둥 가운데는 ‘눈물 흘리는 기둥’으로 이름이 붙은 기둥이 있는데 저수조 건설 당시 희생된 수백 명 노예의 슬픔을 기리기 위해 눈물 문양을 새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문득,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근원)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우물을 판 사람의 공로를 잊지 말라는 의미, 중국 고사)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로 발달된 건축장비가 있을리 만무였던, 그래서 오로지 수작업으로 공사를 하다 목숨을 잃어야했던 수많은 노예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각 돌기둥마다 촉촉한(지하공간이라 모든 돌기둥이 촉촉이 젖어있다) 눈물인양 느껴져 한참을 돌기둥 사이를 걸으며 상념에 젖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