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일요일 K 교수는 친구들과 K리조트에서 골프를 쳤다. K 교수는 작년에야 겨우 골프를 시작해서 아직은 108타 수준이었다. 골프라는 것이 쉽게 실력이 느는 운동이 아니다. 또 골프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주 필드에 나가기도 어렵다. 욕심 같아서는 보기 플레이(90타)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싶지만, 재력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대학 동창들과 즐겁게 5시간을 보낸 후 K 교수는 호기심에 찬 친구들과 미녀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이 닫혀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K 교수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예약했는데….”라고 소리쳤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행은 할 수 없이 미녀식당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 친구들은 K 교수를 한껏 놀려댔다. 여자에게서 바람맞는 것이 대학 다닐 때부터 너의 주특기였다고. K 교수는 놀리는 친구들에게 대항하지 못하였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할 뿐이었다.
이틀 뒤 화요일, 야간수업이 끝난 후에 K 교수는 미녀식당에 갔다. 마침,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미스 K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가 일어서더니 정중하게 사과부터 한다. 일요일에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서울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올라갔는데, K 교수의 전화번호를 몰라서 연락을 못 했다고.
식당에 들어오기 전에 K 교수는 언짢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미녀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니, K 교수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미스 K의 미소 한 방이면 만 냥 빚이라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남녀는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식당에서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 날 주제는 책 이야기였다. 미스 K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했다. 사실 K 교수가 미스 K에 끌리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이라는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그 책은 미래의 세계가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으로 나뉘어 충돌할 것이라는 예언서 같은 책이라는데, K 교수는 제목만 들어보았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식당일에 바쁜 미스 K가 그렇게 엄청난 역사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할 때 K 교수는 권투로 말하면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K 교수 가정은 독서를 많이 하는 가정이다. 특히 아내는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책을 많이 읽는다. K 교수 가족은 일요일에는 서울에 있는 교회에 예배 보러 다니는데, 예배가 끝나면 인근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6권 빌려온다. K 교수와 아내, 그리고 작은 아들은 도서 열람증을 만들었는데, 책을 한 번에 두 권까지 2주일 동안 빌려준다. 3식구가 2권씩 빌리면 모두 6권을 대출받을 수 있다. K 교수는 대개는 아내가 고른 책을 대신 빌려오는데, 때로는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도 한다. 아들 녀석은 자기가 읽고 싶은 어린이용 책을 고른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화성군 안녕리에 있는 태안도서관의 열람증도 만들었다. 태안도서관에서는 책을 한 번에 3권까지 2주 동안 빌려준다. 연체하게 되면 연체일 수만큼 대출이 금지된다. 아내는 두 도서관에서 9권의 책을 빌려서 대개는 2주일 이내에 다 읽는다.
아내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이다. K 교수는 때때로 아내가 읽은 책 가운데서 재미있다고 권하는 책을 읽는 정도이다. 대개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것은 텔레비전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있으면 가벼운 기분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시각과 정신을 집중시켜야 하는 책은 잘 읽지 않는다. K 교수네 가정은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가정이다.
미스 K도 시간이 있으면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녀는 책을 사서 읽지, 책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는 성격이란다. 책값이 비싼 것은 아니지만, 매번 사서 읽으려면 돈이 좀 들 것이다. 그러나 미스 K의 재력으로는 책값이 그렇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닌 듯하다. 무슨 책을 주로 읽느냐고 물어보니 여러 가지를 읽는다고 한다. 역사 서적도 읽고 경영, 교육, 자서전 등등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읽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다독인 셈이다.
그런데 책 이야기를 하다가 K 교수는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전에는 제가 책을 읽고서 아저씨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곤 했지요.”
이야기의 맥락으로 보아서 ‘아저씨’는 애들 아빠, 곧 남편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남편을 남편이라고 하지 않고, 아저씨라고? 순간적으로 미스 K 부부는 이혼한 사이라는 느낌이 스쳐 갔다. 이혼한 사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남편을 아저씨라고 호칭할 수 있단 말인가? K 교수가 슬쩍 물어보았다.
“아저씨라니요?”
“아, 그 사람 말이에요.”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