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후, K 교수는 미술대학의 ㅅ 여교수와 미녀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하게 되었다. ㅅ 여교수가 나이가 한 살 더 많고 ㅅ 여교수의 남편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서로 아는 사이였다. 여교수와 식사할 때는 오해를 피하려고 2:1로 만나야 한다. 그날 K 교수는 화학공학과의 아 교수와 함께 나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미스 K가 마침 식당에 없었다.
세 사람은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주로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K 교수는 그림에는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ㅅ 여교수가 말하는 것을 열심히 들어주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 아 교수는 그날도 별다른 말이 없이 조용하였다. 독일에서 유학한 아 교수는 봄가을 1년에 두 번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간단다. 아 교수는 R석 표를 사서 부인과 같이 가볼 정도로 부유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아 교수는 그림에 대해서는 K 교수처럼 문외한이었다. 그날 대화는 ㅅ 여교수가 이끌어갔다.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학력 이상의 사람치고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라는 네델란드 출신의 화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유명한 자화상 그림을 그린 두 달 뒤 권총자살로 37살의 삶을 마감한 불우한 화가였다. 그는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한쪽 귀를 뎅겅 자른 기행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퀴즈에도 많이 나온다. 고흐의 발작은 프랑스 아를르의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던 독주와 초주검에 이르는 하루 14시간의 그림 노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1백 점의 유화와 8백 점의 데생을 남겼으나 생전에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 딱 한 점으로서 4백 프랑을 받았다.
그런데 조선시대 최북(崔北 1712~1760)이라는 화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쪽 귀를 잘라버린 서양의 반 고흐는 알면서 한쪽 눈을 제 손으로 찔러버린 조선의 최북은 모르는 것이다.
최북이 젊은 시절 어느 날 일이었다. 높으신 고관 분 한 분이 최북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고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하였다. 고관이 화를 내면서 곤장을 맞기 싫으면 그림을 그릴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자 최북은 "남이 나를 저버린 게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린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 이를 본 고관은 기겁하며 달아났다.
최북의 주량은 하루 막걸리 대여섯 되.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해 비틀거렸으며 오두막에서 종일 산수화를 그려야 아침저녁 끼니를 겨우 때울 수 있었다. 대신 가난한 이에게는 백동전 몇 닢에도 선뜻 그림을 내주었다.
최북은 이름의 北자를 반으로 쪼개어 자(字)를 칠칠(七七)이라고 했다. 최북의 호는 붓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호생관(豪生館)이라고 했다. 최북은 열흘을 굶다 그림 한 점을 팔아 술을 사 마신 어느 겨울날 성곽의 눈구덩이에 쓰러져 죽었다. 최북의 죽음은 고흐의 죽음보다 더 비극적이다.
K 교수가 ㅅ 여교수에게 물었다.
“밀레나 고흐의 그림은 미술 작품이라고 볼 수 있으나, 현대미술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교수님은 백남준의 설치 미술을 보면 아름다움이 느껴져요?”
질문이 나오자, 현대미술을 전공한 ㅅ 여교수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대미술이 되면서 그림이 점점 더 어려워졌지요. 그림은 보는 것보다는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면서 생각해야 그림이 재미있어요.”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이라는 사람이 1917년 독립예술가협회에서 주최한 미술전에 집에서 오랫동안 썼음 직해 보이는 수세식 변기통을 떼어내서 제목을 <샘(泉)>이라고 붙이고 작가의 이름 대신 ‘멍청이’라고 사인을 해서 출품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뒤샹은 전시회 주최 측으로부터 장난하지 말라며 변기통을 전시할 수는 없다고 거절당한다.
뒤샹은 해명서를 제출한다. 멍청이가 그 변기통 조각을 실제로 만들었느냐 안 만들었느냐, 실제로 똥오줌이 묻어서 독한 냄새가 나느냐 안 나느냐, 똥오줌 냄새가 작품에 포함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멍청이가 변기통을 보고 그것을 작품으로 인정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멍청이의 선택, 곧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변기통을 조각으로 선택해서 예술의 자리에 올려놓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변기통은 오물을 밑으로 내리는 기능만 가졌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이다. 변기통을 변기통으로만 보는 사람은 ‘멍청이’이다. 작가는 변기통을 보면서 “내려보내야 샘처럼 솟아 오른다”라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 후 뒤샹은 변기통 하나로 일약 세잔과 피카소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현대미술의 창시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단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