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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숨 막히는 교양, 와인 마시는 법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5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 사람이 미녀식당에 들어서자, 미스 K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우리 학교에서 제일 미녀라고 소문난 교수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교수님은 이틀 전에 오셨는데, 오랜만이라고요? 호호호...”

“아이고, 저런. 거짓말이 탄로 났네요. 남자들이 이렇게 엉큼합니다. 하하하...”

“여자도 엉큼하기는 마찬가지에요. 사람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엉큼해진다고 해요. 호호호.” 미스 K가 묘하게 발언하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여름이 되면서 미녀식당의 베란다는 무성한 숲에 싸여 있었다. 나무 그늘을 커튼처럼 두른 베란다에서 세 사람은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었다. 늦은 점심 식사가 끝나고 K 교수가 일어서려 하자 바 교수가 물었다.

 

“그런데 오후 강의가 있나요? 저는 오후는 비는데. 모처럼 미인교수님과 미인사장님을 만났으니 함께 와인 한 병을 마시면 어떨까요?”

“저는 좋지요.” K 교수가 말했다.

“저도 괜찮아요.” ㅁ 여교수도 찬성했다.

 

중간 정도 값이 나가는 포도주 한 병을 주문하고 잔을 4개 가져왔다. 미스 K가 안주로 모짜렐라 치즈를 내왔다. 바 교수가 포도주 따르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와인의 상표를 일행에게 보여 주고 조심스럽게 코르크 마개를 땄다. 상표가 붙은 쪽을 손바닥 쪽으로 쥐더니 자기 잔에다 먼저 조금만 따랐다. 그는 포도주잔의 다리를 쥐더니 천천히 한 모금씩 혀를 돌려가면서 시음하였다. 그러더니 “좋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4개의 잔에 와인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포도주에 대해서, 포도주를 마시는 예법에 대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였다. K 교수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가 한마디 하였다. “아이고, 그렇게 격식 따지면 술맛이 떨어질 것 같은데요.”

 

K 교수는 어느 와인 전문가가 신문에 기고한 글을 소개하였다. 제목은 <숨 막히는 교양, 불편한 오버>라는 글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와인을 마시는데, 에티켓이 필요합니까?"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다. 애매하기 짝이 없다. 필자가 외국에서 와인을 배우고, 마시기 시작했을 때 똑같은 질문을 와인 선생에게 하곤 했다. 대답은 대체로 비슷했다. "글쎄, 뭐라 답할 게 없는 것. 그저 편하게 마시는 게 제일이지." 종주국에서 평생 와인을 다루고 사는 와인 프로들의 대답이 그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와인 책이건, 와인 강좌건 아주 명료하게 대답한다. 뜻밖이다.

 

"와인잔의 몸통을 잡으면 안 됩니다. 다리를 잡으시고, 먼저 잔을 돌려서 향을 음미하세요. 그리고 아주 조금씩 입안에 흘려 넣고 '?!'하고 공기를 들이마셔 입안에서 함께 굴려 보세요..."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순전히 와인 전문가들이나 하는 시음법일 뿐이다. 와인 인구의 0.001%나 될까 말까 한 와인감정사에게나 필요한 절차이지 필수 교양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가 한국에서 마치 누구나 알아야 할 교양으로 둔갑했다. 과잉이 흔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뒷산 오르는 데 히말라야용 장비를 갖추고, 막 노출을 배운 사진 견습생이 수동카메라 풀세트를 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런데 유독 과잉이 흔한 곳이 일본과 한국인 걸 보면, 아마도 지금 우리 와인 문화를 지배하는 에티켓이라는 것도 서양 아닌 일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크다. 과거 와인 문화가 없던 시절, 소믈리에(sommelier)들이 주로 일본에서 연수를 받은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도대체 와인잔은 왜 다리를 잡고 마시라고 할까. 서양의 어떤 텍스트에도 일반 교양으로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필자는 아주 우연히 의미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우리 대통령 내외와 서양의 대통령 내외가 만찬 건배를 하는 장면이었다. 특이하게도 우리는 와인잔의 다리를 점잖게 잡고 있는 반면, 그들은 몸통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만약 다리를 잡는 게 필수적인 교양이라면 그들은 한국을 얕보고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다. 시간이 되시면 '만찬&건배&대통령' 정도의 검색어로 인터넷 사진을 검색해 보시라. 수없이 등장하는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국의 정상과 외교사절들이 저지르는 결례(?)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우리는 외래문화에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외국 대통령도 안 지키는 예절을 우리가 수수한 대중식당에서조차 지키고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식당에서 와인을 종종 서비스하는 필자는 좀 당황스러워진다. 주문한 와인이 도착하면 도란도란 나누던 대화가 뚝 끊기고 필자를 주목한다. 종갓집 기제사 같다. 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다. 그리고 와인을 배분하면 또 하나의 숨 막히는 '교양'이 남아 있다. 앞서 말한 복잡한 와인 시음법을 대부분의 손님이 실천하고 있는 광경이다. 그뿐 아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쉼 없이 와인잔을 돌려가면서 음미한다.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얼음이나 물 타서 마시지 마라. 레드와인은 차게 해서 마시면 안 된다. 개봉한 와인은 즉시 마셔 버려라, 등등 어느 것 하나 예절 아닌 예절이 와인 문화에 깃들어 있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면 불편해진다. 이미 우리 깊숙이 들어온 와인, 좀 편하게 마셔도 될 일인데 말이다. 예절이라고 배운 것이 오히려 결례가 되는 지금의 이 해프닝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