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중심 영역인,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의 첫 구성 악곡인 <놀량>은 첫 곡으로 느리게 시작하면서 차차 빨라지는 앞산타령의 <사거리>, 뒷산타령의 <중거리>, 자진산타령의 <경발림> 순으로 이어간 다음, 그 뒤로 잘 알려진 민요조의 노래도 덧붙여 부른다는 점, 구성 악곡의 이름이나 순서는 경기 지방과 같거나 비슷하지만, 창법이나 노랫말, 악곡의 전개 형태, 표현 방법, 시김새 등등은 서로 달라 상호 비교가 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였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기 지방의 <산타령>은 현재 무형의 유산으로 지정된 상태여서 국가의 지원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서도(西道)입창은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겨우 단절의 위기만을 모면해 가는 실정이다.
평소, 글쓴이는 <산타령>과 같은 합창 음악은 다른 일반 민요와는 달리, 가사의 내용이 매우 건전할 뿐 아니라, 국내 곳곳의 명산(名山)이나 강(江)의 이름, 인물의 소개 등, 상식이 풍부한 지역의 특징들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어서 학생들의 음악과 일반 상식을 위한 교육 교재로도 매우 적절한 분야라고 추천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산타령은 합창곡이기에 지역 주민들이나 직장의 동호인들, 그리고 취미를 함께 하는 모든 동호인들이 함께 배우고, 또한 즐길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래를 함께 즐김으로써 국악의 다양하고 신명 나는 리듬감을 몸으로 익힐 수도 있고, 아울러 씩씩하고 활달한 창법이든가, 또는 다양하고 멋진 표현법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을 기회를 제공해 왔다고 강조해 왔지만, 아직도 전통의 소리들은 홀대를 받거나,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어 늘 안타깝게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최근 반가운 소식을 대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을 현장에서 강하게 느끼고 몸부림쳐 오던 서도소리 유지숙 명창이, 그가 지도한 제자들과 함께 <서도 산타령 음반>을 출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음반에 담긴 정성스럽고 힘찬 신명의 소리를 들으면서 명실상부(名實相符)라고 하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실상부>라는 말에서 명(名)이란, 바로 명분(名分)이나 외양, 또는 이름을 뜻하는, 표면상의 이유나 명목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실(實)이란 실제(實際)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름과 실제가 꼭 맞아떨어져 서로 부합될 때, 쓰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실제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그 사람의 이름은 높이, 또는 널리나 있는데도 실제로 그의 소리 실력을 대하거나, 공력(功力)을 보면, 그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명창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현상도 보인다. 반대의 현상이란 소리 실력은 출중해서 우뚝한데, 그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를 만날 때다. 명실상부의 대표적인 서도의 소리꾼으로 나는 유지숙 명창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까닭으로는 첫째,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직에 충실하면서도 개인의 발전을 위해 실기와 이론 공부를 열심히 해오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방송이나, 음반 제작활동을 활발하게 해 오고 있다는 점. 그리고 셋째는 나이 어리고 소질있는 젊은 후진들을 발굴해서 열심히 키우고 양성해 내는 활동, 등을 꾸준히 해오는 점, 등이다.
제자들과 함께 산타령 음반을 제작하여 세상에 내놓으면서 유지숙 일행은 선소리 산타령을 어떻게 부르는 것이 정도일까 하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바로 유지숙에게 서도소리를 지도해 준 그의 스승, 오복녀 명창에게 전해 들은 말의 실현이다. 바로 “태산이 으쓱 으쓱하도록 뽑아내는 신명의 소리”라는 표현이다. 이 말의 진의(眞意)라 할까? 그 음악의 특징적 표현은 아마도 잔 기교라든가, 섬세한 시김새의 표현보다는, 꿋꿋하고 씩씩하게 남성적인 소리로 부르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표현을 강조한 오복녀 명창은 과거 전통사회에서 <산타령>을 배우면서 그의 스승이 전해 준 소리의 특징을 그대로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 준 것이다. 바로 힘차고 씩씩하게 불러야만 산타령의 감흥을 전해 줄 수 있다는 스승의 진심 어린 마음을 이제, 유지숙도 그대로 받아드려, 그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