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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푸지게 퍼 올린 역사 속 똥오줌 이야기

《웃기고 냄새나는 역사 속 똥오줌 이야기》 설흔, 스콜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4)

그냥 웃기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똥오줌 이야기가 아니야.

우리나라 역사 속에 나오는 똥오줌 이야기야.

왕과 왕비, 시인과 학자, 임금님과 선비가 주인공인 똥오줌 이야기란다.

역사책에 그런 게 정말 있냐고? 똥과 오줌, 다 나와 있냐고?

그래, 역사책에 다 나와 있어.

정말로 그런 이야기가 푸지게 나온다니까.

 

똥과 오줌이 정말 역사책에 그리 많이 나올까? 엄중, 진지, 근엄한 역사책에 ‘똥오줌’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도, 의외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소재가 된 적이 꽤 많다. 배설은 영원한 인간의 숙명이고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만큼, 똥과 오줌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설흔이 쓴 이 책, 《웃기고 냄새나는 역사 속 똥오줌 이야기》는 역사가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볍게 바꿔준다. 이렇게 작고 하찮은 것도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주변의 작은 일들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책에는 오줌 꿈을 사서 왕비가 된 김유신의 누이 문희, 화장실에서 김부식에게 복수한 정지상의 귀신, 신하들이 있는 가운데 몸을 돌려 오줌을 눈 조선 임금 경종, 똥거름이 장관이라고 평했던 박지원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그 가운데 문헌으로 확실히 기록된 것은 경종과 박지원의 이야기다. 경종 임금이 신하들 앞에서 오줌을 눈 것은 오늘날의 의학으로 보면 일종의 우울증 증세에 따른 이상 행동으로 추측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날 임금이 여러 신하들을 대하여 몸을 조금 돌려 오줌을 누므로 여러 신하들이 잠시 물러가려고 하자 임금이 물러가지 말라고 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p.55-56)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듣고 있던 임금님이 어떻게 했는지 아니?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요강에다 오줌을 누었어. 말하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쭈르르 소리가 나자, 신하들이 깜짝 놀랐지. 궁궐 법도에 따르면 오줌이 마려우면 신하들에게 미리 말을 해 주게 되어 있어. 그래야 신하들이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그런데 경종 임금님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오줌을 눈 거야.

 

오줌을 눈 것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이상 반응이 맞다면, 당시 경종의 상태는 꽤 심각했던 것 같다. 경종은 즉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승하했으니, 이때 이상 징후를 보인 것은 그의 짧은 재위 기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연암 박지원은 중국에 다녀오고 싶다는 꿈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커녕 정적인 홍국영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외진 곳에서 숨어 살았다. 1780년 2월, 홍국영이 실각하자 같은 해 박지원의 팔촌 형인 박명원이 중국 황제인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는 외교 사절로 가게 되었다.

 

박명원은 친척 동생인 박지원을 사절단과 같이 갈 수 있도록 했고, 이때 박지원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해서 《열하일기》를 썼다. 박지원이 중국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 가운데 하나가 똥거름이었다.

 

(p.80)

그래서 나는 말한다. ‘기와 조각, 조약돌이 장관이라고. 똥거름이 장관이라고.’ 어찌 성곽과 연못, 궁실과 누각, 점포와 사찰, 목축과 광막한 벌판, 숲의 기묘하고 환상적인 풍광만을 장관이라 하겠는가?

-《열하일기》 중에서-

 

그는 중국의 화려한 누각과 건물보다, 말이 싼 똥조차 그냥 버리지 않고 거름창고에 넣어두고 요긴하게 쓰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래서 중국에 다녀온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자 깨진 기와, 똥 이야기를 하며 실제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실용적인 것들을 힘주어 말했다.

 

으리으리한 황궁, 화려한 의복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깨진 기와로 담을 쌓는 방법이나 똥거름을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학문을 하는 자들이 백성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소한 것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똥과 오줌은 인류의 생활에 늘 있었지만, 워낙 일상적이라 특별히 관심을 가진 이는 별로 없었다. 이름을 불러야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똥과 오줌’이라는 주제도 공들여 엮자 훌륭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 책은 생각지 못했던 소재를 역사 속에서 찾아낸 참신한 기획이 돋보인다. 비록 고증이나 구성이 조금 엉성한 감도 있지만, 똥과 오줌을 주제로 한 역사책이라니 저절로 눈길이 간다. 한 번쯤 펴 들고 무더위를 쫓을 만한 재밌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