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 정적이 흐르는 궁궐의 밤, 왕세자와 신료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죽음이 가까워진 왕이 유언을 남깁니다. 종묘와 사직을 잘 보존하고 온 백성이 평안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왕의 목소리에는 왕실과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왕의 마지막 당부에 왕세자와 신료들이 옥체를 보존하시라 목 놓아 외치지만 결국 왕은 죽음을 맞습니다. 사극에서 한 번쯤, 내시가 궁궐 지붕에 올라가 옷을 흔들며 소리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상위복’이라 하여 ‘상위’는 임금, ‘복’은 돌아오라는 뜻으로 임금의 혼령이 자신의 옷을 알아보고 돌아오길 바라는 의식이었다. 막연하게 사극 속 한 장면으로 남아있던 이런 임금의 ‘죽음’은, 《효심을 위해 지은 왕의 무덤, 조선 왕릉》에서 생생히 다루어진다. 임금이 눈을 감은 뒤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거대한 왕릉에 묻히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소상하게 담았다. 유교의 예법에서는 적어도 5일 동안 임금의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 기간에는 임금이 죽지 않고 돌아올 수도 있다고 여겨 왕세자가 즉위하지 않았다. 5일이 지나면 그제야 왕릉으로 모시기 전까지 관을 두는 전각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국보급’ 선수, ‘국보급’ 작품, ‘국보급’ 노래… 그 어떤 것이라도 ‘국보급’이라는 표현이 붙으면 값어치가 격상된다. 그만큼 ’국보‘가 보증하는 품격은 남다르다. 무언가 급이 다른 면모가 있어야 ’국보‘가 될 수 있는 만큼, 국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창조는 전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역사는 생활의 잔해가 아니라 창조의 온상이다.”라는 한국 미술사의 선각자 우현 고유섭이 남긴 말처럼,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국보급’ 문화유산은 전통의 발현이자 창조의 온상이다. 국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국민에게 느끼게 해주는 문화적 자부심, 정신적 위안은 감히 값으로 매길 수 없을 정도다. 배한철이 쓴 이 책,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는 매일경제신문사에서 25년 이상 기자로 일한 지은이가 역사 사랑을 꾸준히 이어간 결과물이다. 지은이는 ‘문화유산’과 ‘한국사’라는 두 주제에 천착해 《얼굴, 사람과 역사를 기록하다》라는 책과 《역사, 선비의 서재에 들다》를 펴내기도 했다. 책은 크게 8부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 발굴 현장 답사기’, ‘돌아온 국보, 팔려간 국보’,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등 국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44) 1897년, 그녀는 아펜젤러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마르다(Martha, 瑪多)’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마르다!” 커틀러가 그녀를 불렀습니다. “…….” 그녀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 이름은 마르다입니다. 김마르다!” 그날부터 그녀는 김마르다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김마르다. 우리나라 첫 간호사의 이름이다. 그녀는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코와 손가락을 베인 아픈 개인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근대 의료기관 ‘보구여관’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간호사’라는 천직을 만났다. 한봉지가 쓴 이 책, 《우리나라 최초의 간호사 김마르다》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김마르다’라는 여성의 인생을 담담히 서술한 책이다. 그녀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 슬픔이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승화되고, 또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던 그녀가 점차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그녀가 ‘보구여관’을 찾아간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보구여관은 말 그대로 여성 환자를 ‘보호하고 구원한다’라는 뜻이었다. 1884년 4월 서울 정동 이화학당에 여성의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