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1)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일세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이라 메꽃 같은 우리 딸이 시집 삼 년 살더니 미나리꽃이 다 피었네 표독한 장희빈, 천사 같은 인현왕후, 사랑에 눈멀어 부인을 내치는 숙종… 어느덧 역사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선명한 선악의 구도는 어쩔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대립이 수많은 사극에서 무수히 변주되는 까닭이다. 인현왕후 폐비는 당대에도 참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했다. 조선 개국 이래 왕후가 폐출되어 사가로 나가게 된 것은 처음이었으니, 당시 지식인들과 관료들은 군주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젊은 임금 숙종의 혈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임생이 쓴 이 책, 《인현왕후전》은 계축일기나 한중록과 더불어 대표적인 궁중문학으로 꼽히는 소설이다. 작자는 인현왕후를 모시고 있던 궁인이라는 설도 있고, 왕후 폐출에 반대하던 박태보의 후예나 왕후의 친정 가문에서 지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줄거리는 대체로 다 아는 바다. 인현왕후 민씨는 숙종 당시 병조판서이던 민유중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름답고 덕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0) 옛집 새로 옮겨 이 물가에 지으니 그대 허술한 집 찾아와 어찌 견디냐 묻네 만 권 책의 훈기를 내가 경모하니 한 바가지의 물로 사는 삶에도 진정한 기쁨을 느끼네 스물여섯 해 전 마음먹었던 것을 오늘 되새겨 보매 근심은 동해물로 달려와 측량할 수가 없구나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를 끝으로 공직생활을 일단락짓고, 자기 고향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짓고 읊은 시다. 20대 후반부터 꿈꿔 왔던 소망이 이제야 실현된 것을 기뻐하며, ‘만 권 책의 훈기’와 ‘한 바가지의 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했다. 이황은 대학자이자, 문과에 급제하고 ‘직장생활’을 오래 한 관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학문 쪽에 더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온전히 학문에 집중하려 정계 은퇴를 결심하고 지은 서당이 계상서당이었다. 이 책, 《퇴계 이황》은 2,500년 유교 역사를 소설로 그려낸 최인호 작가의 《유림》을 청소년용으로 각색한 책이다. 동화작가 표시정이 쉽게 풀어쓰고 최인호가 머리말을 붙였다. 조광조, 공자, 이이 등 유교 사상계의 걸출한 인물을 다룬 최인호의 《유림》 6부작 가운데 여섯 번째 책이다. 이황이 정계 은퇴를 결심한 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도전. ‘조선개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뤄낸 인물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정도전이다. 조선 개국은 사실상 정도전이 이성계를 택해 이뤄낸 업적이라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정도전은 이방원과 더불어 개국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런 이방원과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臣權)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정도전이 패배하며 가문이 몰락하고 말았다. 그 뒤 정도전은 오랜 세월 잊혔다가 정조가 정도전의 글 《삼봉집》을 읽으며 조선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개혁 과제를 찾으며 다시 부상했다. 마침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통치하던 고종 8년(1871년) 3월, 정도전은 약 오백 년간 이어진 역적의 누명을 벗고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공으로 후손 대대로 복록을 누릴 수 있었으나 한순간 몰락해 버린 아픔을 오백 년 뒤에야 떨쳐낸 것이다. 민병덕이 쓴 이 책, 《재상 정도전》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한 풍운아가 겪은 삶의 부침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도전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굴곡진 어린 시절을 보내며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해 고려왕조의 신하가 되었지만, 친원 정책에 반대하고 명나라와 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