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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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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한 독립운동, 건축왕 정세권

《일제에 맞서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왕 정세권》, 이규희, 밝은미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북촌한옥마을. 오다가다 한 번쯤 지나쳐 본 적이 있을 이곳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본인이 경성에 몰려와 살며 조선인들은 점점 외곽 변두리로 내몰리는 것을 염려한 건축왕 정세권이 한 평 두 평, 땅을 사들여 조선인들의 보금자리를 지켜낸 곳이다. 오늘날 보는 북촌한옥마을의 풍경은 거의 이 건축왕, 기농 정세권이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건양사’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살기 편하고 값싼 ‘조선집’, 곧 한옥을 대거 지어 보급했고, 덕분에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이 잠식해 오는 가운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세권을 알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 큰 사업을 일군 자본가로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일제에 체포, 갖은 고문을 받고 건축 면허와 재산을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책 《일제에 맞서 북촌 한옥 마을을 만든 건축왕 정세권》의 지은이는 정세권이 지은 북촌과 익선동, 창신동과 같은 한옥마을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아무도 일제에 맞서 조선집을 지켜내던 정세권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그의 삶을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은행나무 옆 희망의 궁전, 딜쿠샤

《딜쿠샤의 추억》 김세미ㆍ이미진, 찰리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3) 1923년, 마침내 내가 완성됐어.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도 나를 구경하러 왔단다. 메리는 내게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 하더구나.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 베일에 싸여 있던 곳. 사람들은 그곳을 광복 뒤 보금자리로, 전쟁 중 피난처로, 전쟁 뒤 공동주택으로 썼다. 태풍에 무너질 뻔하고 화재로 불에 탈 위기도 있었지만, 이 은행나무 아래 집은 행촌동 언덕 위에서 거의 100년을 버텼다. 이 책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은 2017년 8월 8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공식 등록되어 2021년 시민들에게 개방된 ‘딜쿠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립문역에서 약 10분만 가면 쉬 닿을 수 있는 이 저택은, 그 이국적인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추측과 신비를 자아낸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주인을 잃은 뒤, 오랫동안 진짜 이름은 잊힌 채 ‘붉은

존경받는 부자의 비밀, 경주 최부잣집 300년 이야기

《명가 – 나눔을 실천한 최부잣집》, 동화창작연구회, 꿈꾸는 사람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말이 있다. 대를 이어 부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재산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지키는 것 자체가 일이다. 관리해야 할 것도,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300년 이상 ‘재벌가’로 부를 이어간 가문을 보면, 응당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친 ‘경주 최부잣집’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임금이 바뀌면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하던 시절, 굳건한 처세와 대를 잇는 철학으로 무려 12대 300년 동안 부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나눔의 정신으로 조선 최고의 ‘적선지가(積善之家)’가 되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던가.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있듯, 최부잣집은 부를 베풀수록 나날이 번성했다. 부를 베풀고, 민심을 얻고, 그 민심이 더 큰 부를 불러들이는 부의 선순환. 그것이 바로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었다. 이 책, 《명가-나눔을 실천한 최부잣집》은 그 부의 비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최부잣집을 소재로 2010년 방영한 사극 《명가》를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의사, 에비슨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 고진숙, 샘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제중원 운영 방침>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을 만큼 한국의 의학 수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과도, 그 출발은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톨이었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옥 한 채,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척박한 땅에 의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이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땅으로 왔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이 책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은 슈바이처는 알아도 에비슨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15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

조선의 마지막 왕녀, 덕혜의 비극

《동시와 함께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 글 최모림, 박물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비오는 날 저녁에 기왓장 내외 잃어버린 외아들 생각나선지 꼬부라진 잔등을 어루만지며 쭈룩쭈룩 구슬피 울음 웁니다. 대궐 지붕 위에서 기왓장 내외 아름답던 옛날이 그리워선지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봅니다. (p.8) <기왓장 내외> 윤동주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기왓장 내외. 이 내외는 나라 잃은 임금이 사는 대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름답던 옛날을 그리워하며, 주름 잡힌 얼굴을 어루만지며 물끄러미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일상이었을까? 이런 기왓장 같은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그야말로 허울뿐인 임금이 되어 덕수궁에 갇히다시피 한 사람, 바로 고종이었다. 45년 동안 조선의 임금으로 재위하면서, 끝내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없던 고종은 덕수궁에서 통한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기쁨을 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이 환갑 때 얻은 딸 덕혜옹주였다. 1912년 5월, 조선이 일본에 나라를 완전히 빼앗긴 지 2년 뒤에 태어난 덕혜는 고종 임금과 붕어빵처럼 닮아 있었다. 이 책 《동시와 함께하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는 조선의 마지막

공재 윤두서, 형형한 눈빛 뒤에 어린 따뜻한 마음

《시대를 앞서간 선비화가 윤두서》, 박은순, 나무숲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화가 났나?’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해.’ ‘아냐, 슬픈 표정인데?’ 종이에 꽉 차게 그려진 어떤 사람이 우리를 뚫어지게 보고 있어요. 살짝 올라간 눈매에 한 올 한 올 생생하게 묘사된 풍성한 수염, 다소 불그레한 살집 있는 얼굴이 씩씩한 장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강렬한 눈매를 가진 그림 속의 인물이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듭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선비화가 윤두서입니다. (p.8) 정면을 응시하는 부릅뜬 눈. 한 번 보면 쉬이 잊기 어려운 그 얼굴. 바로 자신의 모습을 그린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미술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법한 이 그림은, 해남윤씨 종가를 대표하는 종손이자 선비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 그린 것이다. 지금은 얼굴만 남아있어 미완성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X-선 투과 촬영 등 정밀히 조사한 결과 본디 다소 옅게 그려졌던 신체 부분이 보존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록 신체는 지워져 버렸으나, 그가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했던 세상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 이 책의 부제처

김덕령과 송구봉, 조선의 아까운 두 천재

《조선의 영웅 김덕령》, 신동흔 글, 김용철 그림, 한겨레아이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임진왜란 때 중히 쓰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인물이 둘 있다. 바로 이 책 《조선의 영웅 김덕령》의 주인공인 김덕령과 송구봉이다. 조선 중기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둘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과 신분의 굴레에 매여 높은 뜻을 못다 펼친 채 스러져갔다. 솔직히 역사에 밝은 이에게도 김덕령과 송구봉의 이름은 생소할 법하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고도 반란 수괴 이몽학을 도왔다는 죄명으로 모진 국문을 받다 순국했고, 율곡 이이의 절친한 벗이었던 송구봉은 율곡을 능가하는 천재로 이름이 높았으나 미천한 출신 때문에 출사하지 못하고 재야에 묻혀 지냈다. 지은이는 먼지를 덮어쓰고 박제되어 있던 두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둘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이 많았던 덕분인지 유난히 전설과 설화가 많다. 이런 이야기들을 얼기설기 엮어낸 지은이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전우치가 족자에서 뛰어나온 것처럼 두 사람이 책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광주 무등산 기슭에서 태어난 김덕령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지관이 무덤을 쓰려고 점찍어둔 자리에 김덕령의 부모가

마음 울리는 해원의 몸짓, 곱사춤 공옥진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 – 광대 공옥진》, 백승남, 우리교육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병신춤이라 부르지 마시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 장애자들 내 동생 어린 곱사 조카딸의 혼이 나에게 달라붙어요. 오장 육부가 흔들어 대는 대로 나오는 춤을 추요.” (p.14) 광대 공옥진이 춘다. 오장 육부를 뒤흔들며 춘다. 이른바 ‘병신춤’이다. ‘병신’이라는 말에 내포된 부정적 어감을 지우기 위해 ‘곱사춤’으로도 불리는 이 춤은,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이들의 한과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한판 굿에 가깝다. 한 시대를 풍미한 판소리 명창, 1인 창무극의 대가, 곱사춤 명인 공옥진은 아이돌 그룹 투애니원의 단원 공민지의 고모할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공민지 또한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예인의 피’를 입증하듯, 수많은 아이돌 그룹 가운데서도 예사롭지 않은 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다. 지은이는 이 책 《춤은 몸으로 추는 게 아니랑께 – 광대 공옥진》을 통해 명인 공옥진이 한평생 걸었던 예인의 길, 그녀가 남기고 떠난 소중한 유산을 딸에게 들려주는 듯한 친근한 어조로 풀어낸다.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일곱 번째 이야기로 나온 이 책을 읽다 보면 ‘공옥진’이라는 한 인간이 일궈낸 아름다운 유산을 오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