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여행은 걸으며 하는 독서다.
앉아서 가만히 책을 읽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끼는 것, 이 모든 것이 공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한 번 눈으로 확인한 것은 기억에 깊이 남아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소울마미’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지은이는 네 살 난 딸과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며 아이가 여행지에서 맞닥뜨린 일들을 골똘히 사유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한 뼘씩 자라있는’ 것을 경험하면서 ‘여행이 최고의 인문학 수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쉽게 비행기를 탈 수 없던 시절, 이 땅의 아름다움을 찾아 줄곧 떠났다. 특히 여행주제를 국어, 문학 교과서 속 여행지로 떠나는 것으로 잡았다. 이렇게 다닌 여러 곳의 이야기를 모으고, 또 다른 지은이 이해수가 교과서 속 작품들을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 바로 《소울트립 교과서 여행: 국어, 문학 – 아이와 인문학 여행》이다.
책에 소개된 여러 여행지 가운데 특히 남해가 눈길을 끈다. 남해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이 유배를 왔던 곳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서포만필》은 김만중이 남해의 노도라는 작은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절 쓴 평론집이다.
김만중은 중국에 대한 맹목적인 사대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시와 글이 으뜸이라고 모두가 칭송하던 시절, 그는 우리 문학의 값어치를 당당히 주장했다. 그가 쓴 《서포만필》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잘 드러나 있고, 한글 문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p.111)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詩文)은 자기 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 말을 배워서 표현한 것이니,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양반 사대부가 모두 소설을 천하게 여기던 시절, 높은 벼슬을 한 기득권층이었음에도 소설을 썼다. 그는 동네 골목길에서 나무꾼이나 아낙네들이 “에야디야”하고 주고받는 노래가 사대부들이 짓는 시나 글보다 더 낫다고 보았다. 평민들의 노랫소리는 우리말로 내는 소리여서 오히려 진실하다고 여긴 것이다.
서포 김만중이 이렇듯 ‘우리글 옹호론자’였던 사실은 퍽 새롭다. 남해에는 유배돼 온 옛 작가들의 주요 작품 판본을 전시해 둔 남해유배문학관이 있다. 평소에는 워낙 업무가 많다 보니 유배지에서 글솜씨를 살려 저서를 집필하는 선비들이 꽤 많았다. 어찌 보면 유배는 평소 억누르고 있었던 창작욕을 불태울 수 있는 황금 집필 기간이었다.
여행기는 춘천으로 가서, 《봄봄》과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이 나고 자란 실레마을에 이른다. 김유정의 집안은 명문가였던 청풍 김씨 가문으로, 실레마을에서 제일 부유한 지주였다. 유복하게 자라난 김유정은 휘문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를 거치며 경성의 ‘모던보이’가 되었다.
그러나 연애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고, 그때 가세도 크게 기울어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며 지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폐결핵에 걸린 그가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운 일이 소설 쓰기였다. 김유정 문학촌 내에는 그가 병에 걸린 몸으로 마지막 혼을 불사르던 방이 재현되어 있다.
한편 청주시에는 초정행궁이 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드느라 눈을 혹사하던 1444년, 초정리에서 후추 맛이 나는 물이 발견되었다. 세종은 짧게 머무는 임시 건물인 행궁을 지어 몇 달씩 머무르며 지냈다. 그때 휴양온 세종과 초정리에 살던 한 소년이 만나 감동적인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바로 창작소설 《초정리 편지》이다.
(p.193)
《초정리 편지》는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열두 살 소년 장운이의 이야기야. 장운이는 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 누나와 사는 순박한 소년이란다. 돌을 깎는 석공이었던 아버지마저 사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장운이가 남의 집에 나무를 해다 주며 생계를 이어가지. 그렇게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산에서 토끼를 잡다가 한 양반 할아버지를 만나게 돼. 장운은 그 할아버지의 눈이 붉어 ‘토끼 눈 할아버지’라 부르지. 그런데 글쎄 그 할아버지가 장운에게 글을 가르쳐주시는 것 아니겠어?
지은이는 《초정리 편지》도 함께 소개하며 초정리 일대를 둘러본다. 한글 반포라는 대업을 앞두고 고심했을 세종의 속내를 헤아려보면서, 현재 새롭게 복원한 침전, 업무공간인 편전, 온천 족욕 체험장 등을 거닌다.
이 책에 나오는 여행을 다닐 때 아이는 네 살이었고, 탈고할 때쯤 여섯 살 가을을 맞았다고 한다. 지은이는 아이와 여행하며 지낸 2년이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험한 세상을 뚫고 나갈 마음밭의 근력이 결정되는 유년기의 이 특별한 나날이 아이에게 언제고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리란 것을’ 믿는다.
어릴 때 이렇게 여행으로 다진 인문학 감성은 지은이의 바람대로, 인생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버텨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많은 부모에게 ‘나도 아이와 떠나볼까?’ 하는 ‘떠날 결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청명한 가을, 문득 인문학 감성을 일깨우는 여행을 떠나보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