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확실한 쓸모가 없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꾸미개 곧 장신구도 그렇다. 꾸미개가 없다고 해서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꾸미개가 있으면 일상이 훨씬 풍요로울 수 있다. 박세경이 쓴 이 책, 《곱구나! 우리 장신구》는 일상을 아름답게 가꿔주었던 전통 꾸미개를 다룬다. 지금도 특별한 날에는 꾸미개를 즐겨 착용하지만, 예전에도 일상을 빛내주는 용도로는 꾸미개만 한 것이 없었다. 혼인이나 과거급제처럼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꾸미개는 특히 빛을 발했다. 꾸미개에 얽힌 옛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정겹다. 돌잔치, 혼인, 장원급제, 장례와 같이 굵직굵직한 삶의 큰 사건에는 늘 꾸미개가 있었다. 일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중요한 순간들을 가장 예를 갖추어 진중하게 맞이했던 진심이 느껴진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 때의 차림과 꾸미개가 특히 눈길을 끈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처럼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연두색 앵삼을 입고, ‘복두’라는 관모를 쓰고, 복두에 어사화를 꽂았다. 어사화는 보라색, 노란색, 다홍색 등 다양한 색깔로 만든 꽃으로 임금이 내린 꾸미개였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체질이 정말 심리와 관련이 있을까? 상대방의 체질을 알면 사고방식도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솔깃하다. 하긴 마음과 몸이 별개가 아닐진대, 이렇게 체질로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면 맞춤형 의사소통으로 갈등을 훨씬 줄일 수 있을 터이다. 성격 심리학자이자 사상체질 전문강사인 류종형이 쓴 이 책, 《류종형의 사상체질 실전 심리학》은 상대방의 체질에 맞추어 소통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조선시대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체질 의학’을 심리학과 접목하여 인간관계에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소통법을 담았다. 체질과 관련된 심리는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심리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무의식심리로 나뉜다. 사상체질 심리학은 무의식심리에 더욱 주목하면서, 상대방의 무의식심리를 알면 일터에서도 조화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p.46) 자신의 체질을 이해했다면 다른 체질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체질을 이해하면 파트너로 일할 때 아주 유용하지요. 태양인과 소음인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소양인과 태양인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태음인과 태양인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적절한 대응책을 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 속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힘이 있는 자가 다스리고, 또 그 힘을 자식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이어가는 것.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과 경제력이 세습되면서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공고해졌다. 이렇듯 힘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도, 우리 역사에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가난한 사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 어린이 …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도태되기 마련인 이런 약자들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다. 김영주와 김은영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인권 존중의 씨앗》은 고려의 빈민구휼 기관이었던 ‘동서대비원’부터 조선의 죄수 보호 제도까지, 우리 역사 속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따뜻한 인권 존중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존중 방식이었다. 흉년이 잦았던 옛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은 마을 관아마다 가까운 곳에 움막을 지어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 주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제장’이다. ‘진제장’에서는 이름과 주소를 적은 간단한 확인 서류조차 배식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외교관.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직업이다. 낯선 문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다가도 한순간에 무거운 나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멋지고도 위험한 자리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명예와 굴욕이 교차하는 삶이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외교 교육을 받은 직업 외교관이 있지만, 옛날에는 문무대신이 외교관 역할을 겸했다. 일반적인 공무를 보다가 사신이 올 때 영접하거나 타국에 사신으로 가는 방식이었다. 사신으로 잘못 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결심할 때 사신을 본보기로 처형하기도 하고, 옥에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기도 했다. 게다가 사신을 어떻게 영접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국가적 문제가 결정되기도 했으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최은영 쓴 이 책, 《역사를 바꾼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이런 압박감을 뚫고 훌륭하게 국익을 지켜낸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이야기다. 흔히 훌륭한 외교관의 대명사로 알려진 고려시대 서희와 오늘날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김지남, 조엄, 홍영식 등 많이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인물들이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 통역을 담당하던 역관 신분으로 조선의 국경을 지켜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1) 서울 달 밝은 밤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로되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쩌랴 아라비아 상인이었던 처용이 외간 남자와 있는 아내를 보고 부른 노래다. 처용은 신라 49대 헌강왕 때 아라비아에서 건너와 오랫동안 서라벌에서 신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처용은 아내를 용서했지만, 다시 혼인하지 않고 풍류를 즐기며 행복하게 지냈고, 죽어서는 동해바다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정혜원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뿌리내린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많은 우리 역사 속 외국인들을 차례차례 조명한 책이다. 흔히 ‘단일민족’이라는 인상 때문에 역사 속 외국인이 많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뜻밖에 역사에 발자국을 남긴 굵직한 인물들이 많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와 가야 김수로왕과 혼인한 허황옥 공주, 신라의 수호신이 된 푸른 눈의 아라비아 상인 처용, 베트남 왕실의 혼란을 피해 고려로 망명한 안남국 왕자 이용상, 조선의 유학을 사랑한 일본 장수 김충선, 《하멜표류기》로 널리 알려진 하멜이 그 주인공이다. 그뿐 아니라 외국에 뿌리내린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도 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백색, 석간주색… 우리 문화유산에 쓰인 아름다운 색이 가진 이름들이다. 우리 고유의 색상이라고 하면 흔히 ‘백의민족’으로 대표되는 흰색을 떠올리지만, 사실 흰색은 다채로운 색깔 가운데 하나일 뿐 훨씬 다양한 색깔이 일상 속에 쓰였다. 그렇다고 파랑, 하양, 빨강, 검정, 노랑으로 이루어진 오방색만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우리 역사 속에는 자색, 석간주색, 비색처럼 아름다운 색상이 참 많았다. 하리라가 쓴 이 책, 《문화유산에 숨은 색 보물을 찾아라!》는 청룡, 주작, 백호, 현무, 황룡이 각자 색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며 다양한 색을 알아가는 매력이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오방색’ 말고도 우리 역사에는 아름다운 색깔이 많았다. 흔히 고려청자에서 나는 오묘한 푸른색을 뜻하는 ‘비색(翡色)’이 대표적이다. 푸르면서도 녹색 빛이 도는 신비로운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총새 비(翡)’자를 써서 ‘비색’이라 하였다. 물총새 또한 깃털이 푸르고 영롱한 초록색 빛이 도는 까닭이다. 대한제국의 황후가 입었던 ‘적의’에는 아주 깊은 푸른색인 ‘심청색’을 썼다. 순종의 황후인 윤 황후가 입었던 적의는 ‘12등 적의’라 하여 꿩 무늬 154쌍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5) “공주는 안으로는 밝으시지만 드러내지 않으시며, 재능이 있으시지만, 그 명예에 관심을 두지 않으셔 심덕의 온전함이 일부분만 나타났소. 공주의 글씨를 받아 보니, 선조 대왕의 필법에서 나온 듯하오. 필적이 웅장하고 건장할 뿐만 아니라 온화하면서도 두터워서 여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소. 필법에서 마음을 읽혀, 그 성정에서 깊이 감동하게 되니 가문이 엄숙하고 화목하겠습니다.” 정명공주. 선조의 늦둥이 공주로 태어나 여든이 넘도록 천수를 누린, 복 많은 여인이다.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렸으며 자손들도 크게 번창했다. 어찌 보면 조선왕실의 공주 가운데 가장 많은 복을 누린, 운 좋은 여인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날이 있기까지 유년기에 엄청난 고생과 실망과 좌절이 있었다. 이복 오라버니이자 선조의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한 광해군은 정명공주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서궁(오늘날의 덕수궁)에 유폐시켰다. 정명공주도 이때 어머니와 함께 죽은 듯 숨죽여 살며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박성호가 쓴 책, 《화정- 정명공주 이야기》는 이런 극적인 공주의 일생을 소설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70) 신이 듣건대 반정하던 날 연산군이 맨발로 옷을 붙잡는 데에도 옷소매를 뿌리치고 나간 자가 있는가 하면, 혹은 하수구로, 혹은 뒷간 구멍으로 몰래 도망쳐 나갔다고 합니다. 반정군이 대궐을 점령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뒷간은 거기에 있었다. 흔히 우리가 ‘화장실’이라 부르는 이 공간은, 무심히 그 자리에 있다가 때때로 역사의 한 귀퉁이에 슬며시 나타나곤 했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상, 그리고 배설하는 이상 뒷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김진섭이 쓴 책, 《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뒷간 이야기》는 역사학자 이이화가 뒷간에 대해 아이들에게 들려주듯 친근하게 풀어 쓴 책이다.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누구도 그다지 관심 가져보지 않았을 ‘뒷간’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점이 놀랍다. 우리 역사의 뒷간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은 《삼국유사》다. 혜공왕편에 뒷간을 의미하는 ‘측청’이라는 낱말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뒷간 유물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부춛돌(발을 디디고 앉아서 뒷일을 보게 한 돌)’로, 불국사에서 발견되었다. 두툼한 큰 돌 가운데 참외처럼 홈이 있고, 바닥 가운데 앞쪽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국박!’ 국립중앙박물관을 줄여 부르는 애칭이다. 요즘 ‘국박’이 인기다. 예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묵직한 이름이 주는 엄한 느낌이 강했다면,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소장품이 있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는 친근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이 책, 《보고, 쉬고, 간직하다》의 지은이 이현주는 일편단심 국립중앙박물관을 사랑해 온 ‘국박 바라기’다. 1990년 <박물관 신문> 담당자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해 홍보전문경력관으로 33년째 일하고 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신바람 나게 일한다. 3년 동안 박물관신문에 ‘박물관 풍경’을 찍어서 게재하기도 했고, 날마다 아침 SNS에 박물관이 관련된 글과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책도 한 일간지에 박물관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담아 연재한 ‘이현주의 박물관 보따리’ 칼럼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 박물관을 향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박물관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독자가 있다면 생각이 바뀔 것 같다. 박물관의 ‘제철 풍경’은 어떤 것인지, 박물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어떤 것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책에 소개된 장소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9) “사장님, 회사에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의 문화 사업만으로도……” “윤 부장!” 창기는 자금 걱정을 하는 부장의 말을 잘랐습니다. “사람이 말이지,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일세.” 그 말은 바로 창기가 돈을 버는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돈은 의미 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거라고 창기는 굳게 믿었습니다. 한창기. 1976년 3월,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잡지의 편집인이다. 《뿌리깊은나무》는 출판인 한창기의 오래된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던 꿈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김윤정이 쓴 이 책, 《책바보 한창기 우리 문화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다》는 우리문화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던 지성인이자, 책과 잡지를 발행하며 우리문화의 뿌리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었던 한창기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의 삶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어릴 적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에 업혀 다니면서도 공부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촌음을 아껴가며 공부하고,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은 놓치지 않고 질문하는 열정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워낙 공부를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