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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흥화문과 궁터만 남은 한 많은 궁궐 ‘경희궁’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16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종대로 네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900m쯤 가면 서울역사박물관을 막 지나 오른쪽에 한자로 ‘興化門(흥화문)’이라고 쓰인 경희궁의 문이 보입니다. 광해군은 새문동(塞門洞 : 지금의 종로구 신문로 일대)에 왕기(王氣)가 있다는 설이 나돌자, 이를 누르기 위하여 그 자리에 경덕궁(慶德宮)을 짓게 했습니다. 이 경덕궁은 영조 36년(1760) 이름을 경희궁으로 고쳤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궐(東闕)인 창덕궁에 견줘 서궐(西闕)이라고 불렀지요.

 

이 경희궁에는 여러 임금이 머물렀는데 숙종은 이곳에서 태어났고 승하했습니다. 또 경종이 태어난 곳도, 영조가 승하한 곳도, 정조가 즉위한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경희궁은 창건 때 정전ㆍ동궁ㆍ침전ㆍ제별당ㆍ나인입주처 등 1,500칸에 달하는 건물이 있었으며, 그 넓이가 자그마치 7만 평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희궁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의 전각이 헐리고, 일본인들의 학교로 쓰이면서 완전히 궁궐의 자취를 잃고 말았습니다.

 

 

특히 1907년 궁의 서쪽에 통감부 중학이 들어섰고, 1915년엔 경성중학교까지 들어서게 됩니다. 심지어 광복 뒤에도 이곳은 서울중고등학교로 쓰이면서 주변 터가 일부 팔리기까지 해 궁터가 더욱 줄어들었지요. 그러던 것이 1974년 학교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1984년 궁터의 일부를 발굴, 조사하였으며, 1986년부터 공원으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원래 경덕궁이었던 경희궁은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제 궁궐로서의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 많은 궁궐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