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사람에게 인품이 있는 것처럼, 말에는 언품이 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말도 크게 품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달변은 아닐지언정, 품격 없는 언어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지도자는 자신의 말이 파급력이 더 크기에 더욱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그 말이 일파만파 퍼져 공동체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까닭이다.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로도 일한 이력이 있는 지은이 이기주가 쓴 《언품》은, 자기 말이 얼마나 품격이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지침서다. 역사에서 풍부한 사례를 인용하고 사례마다 생각해 볼 지점을 짚으며 독자를 말의 세계로 이끈다.
많은 사례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운주당’이다. 당시에는 관료 상당수가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었고, 문관이나 무관이나 서재에서 독서하며 웅대한 기상을 품고 원대한 꿈을 설계했다.
충무공도 개인 서재가 있었으니, 바로 한산도에 머무는 동안 이용했던 ‘운주당(運籌堂)’이다. 운주당은 독서 공간 겸 개인 집무실로 복합문화공간 역할을 하면서, 중간급 간부들과 계급이 낮은 병사들의 의견을 자유로이 청취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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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운주’는 산가지(길흉화복을 점치는 나무로 된 도구)를 움직인다는 뜻인데, 당시 군인들 사이에서는 전장에 나가기 전에 전략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은 어떤 일을 도모했을까. 힌트는 운주당과 관련해 《난중일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자어에서 얻을 수 있다. 《난중일기》에는 유독 ‘화(話)’, ‘의(議)’, ‘론(論)’ 등의 한자가 많이 나온다. 즉 이순신 장군은 참모진들과 자주 ‘대화’하고 ‘의논’하였으며 그리고 ‘토론’도 즐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충무공은 운주당에 머물며 인근 지역 해안의 물길과 지형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었다. 지역 토박이로 자란 병사를 불러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인근 지형에 대해 들었다. 다음날이면 일찍 배를 타고 나가 바다의 깊이나 암초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고 기록했다.
이런 소통과 노력 덕분에 이순신 장군은 해안의 물길과 지형을 꿰뚫을 수 있었고, 덕분에 학익진과 같은 전술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열세를 극복하고 이긴 승리의 비결은 어쩌면 가장 낮은 병사에게까지 다가가며 경청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반면 충무공을 몰아내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운주당의 쓰임새를 멋대로 바꿔버렸다. 건물 주변에 대나무 울타리를 치고 참모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했다. 정보 수집과 분석에 활용되던 운주당은 지역 토호들끼리 술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소통의 부재 탓인지, 결국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하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순신 장군의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곧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도 12척의 배로 133척을 가진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신의 한 수’였다. 1970년 6월 포항 영일만에 있는 포항제철소 건물 사무소 앞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울려 퍼졌다. 맨손으로 포스코를 일으켜 세계 으뜸 철강회사로 키워낸 청암 박태준 회장의 일성이었다.
(p.172)
한동안 직원들을 바라보던 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우렁찬 목소리가 사무실 인근 공터를 장중하게 휘감았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소중한 조상의 혈세(대일청구권자금)로 제철소를 짓고 있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는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기필코 제철소를 완성해서 우리나라와 조상의 은혜에 보답해야만 합니다.”
그날 뒤로 공사 현장은 전장으로 바뀌었다. ‘우향우하여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공사에 임한 덕분에 당시 좌초 위기였던 제철 설비 공사는 예정보다 2달 앞당겨 준공할 수 있었다.
이렇듯 결기 있는 한마디로 철강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쓴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은 2000년 초 물혹을 제거하기 위해 갈비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때, 물혹에서 한 움큼의 모래가 발견될 정도였다.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공사 현장을 직접 뛰며 영일만의 모래바람을 마셨던 과거가 묻어나는 모습이었다.
이 책은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등 말에 대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자신의 ‘언품’을 돌아보게 한다. 말이란 늘 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품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평소에 품위 없는 언행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지도자가 된다고 바뀌는 일은 드물다. 말은 습관이고 성찰인 까닭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쩌면 평생 연마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흔들리지 않고 품격 있는 언행을 하는 지도자는 언제나 귀하고 드물다. 이 책은 평소 언어생활을 돌아보게 하고, 역사 속 인물들은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알려주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