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시가현(滋賀県) 오오츠시(大津市)에 있는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 신라젠진도, 일본에서 신라는 ‘시라기’로 발음하지만 신라선신당의 경우는 그대로 ‘신라’로 발음한다)을 찾아 간 날은 지난 12일(금) 낮 1시 무렵이었다. 지난해에 견주어 시가현을 비롯한 일본 남부 지방의 날씨가 쌀쌀하여 예전 같으면 벚꽃이 지고 있을 때지만 이날은 꽃이 한창이었다. 신라선신당이 왜 그곳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오오츠에 있는 신라선신당은 1,3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다. 필자는 교토나 오사카 쪽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는 잠시 짬을 내어 신라선신당을 들르는 버릇이 있다. 신당(神堂)이란 신사(神社, 진자) 또는 신궁(神宮, 진구)과 같은 뜻으로 우리로 말하자면 사당(祠堂)인 셈이다. 우리네 사당이 조상신을 모시고 있는 것과 같이 일본의 신사(神社)도 조상신을 모신다. 신라선신당은 말 그대로 신라의 신(神)을 모시는 곳이다. 그럼 왜, 일본땅 시가현 오오츠(大津)에 신라선신당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질 것이다. 천년고도 교토에서 특급열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하는 오오츠는 고대에는 오우미(近江)로 불리던 곳으로 천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며,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안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기 위해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도쿄 고려박물관을 세운 사람들은 약 80%가 일본인이며 20여 년을 준비해서 2009년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운영은 순수 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글은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 방문해서 쓴 글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 중심가에는 고려박물관이 있다.'고려'라는 말에 한국인이 세웠나? 하는 생각을 언뜻하게 되지만 그러나위의 설립취지문처럼왜곡된 한일역사를 바로 잡아 나가려고 애쓰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시민들이 세워 운영하는 박물관이 고려박물관이다. ▲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일본인이 세운 고려박물관 입구 한국의 2호선처럼 도쿄 순환선이라고 해도 좋을 야마노테선(山水線)을 타고 신오쿠보역에 내려 쇼쿠안도오리(직업안정소거리)라고 불리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광장이라는 한국 슈퍼가 눈에 띈다. 쇼쿠안도오리
[그린경제=이윤옥 기자]원삼대사당에는크고 작은 전각들이 있고, 전각 주변의 울타리에 사람들의 이름들이 쓰여있다. 아마도 이 절에 시주를 한 사람들의 이름이리라. 그런데 그 이름 가운데는 고려이세송(高麗伊勢松), 고려정(高麗精)과 같은 고마(高麗, 고구려의 뜻)씨 가 눈에 띄어 우리는 혹시 한국계 도래인들이 아닌가 하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그때 운동복 차림의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앞을 지나가다가 한국말을 알아 들었는지 우리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울타리에 있는 고마(高麗, 고구려의 뜻)씨 이름을 가리키며 심대사 주변에는 고대 고구려인들이 많이 살았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자신을 가네코(金子)라고 소개하며 자신의 조상도 고구려 후예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가네코씨는 심대사 근처에 살면서 점심을 먹은 뒤 한 번씩 절 경내를 산책하러 온다면서 어디에 고구려 지명이 많습니까?라고 묻는 우리에게 미다카시(三鷹市) 시청 뒤쪽에 가면 많다고 목에 힘을 주며 알려준다. ▲ 고려이세송(高麗伊勢松), 고려정(高麗精)과 같은 고마(高麗, 고구려의 뜻) 씨가 눈에 띈다. 이 때문에 귀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관동의 오래된 절 심대사와 오미쿠지의 창시자 원삼대사, 큰스님 만공상인의 조부모 사당 고하쿠신사와 조후시(調布市) 일대는 고대 조선인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밝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지 일본사람들이 밝혀내어 널리 알려줄 리가 없다. 오히려 있는 것을 감추고 없애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그런 기대는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무사시노 평야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집들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본다. 해가 지고 온 세상이 어두워지면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초원 위에 펼쳐지던 평야와 그 평원 위를 달리던 용맹의 상징 고구려 후예들과 뛰어난 선진문화의 전달자 백제와 신라인들의 영원한 로망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언제까지나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빌어본다. 이 글은 2010년 1월 23일 답사글이다. 고구려 총각 복만 씨의 전설과 마귀 쫓는 원삼대사의 전설로 잘 알려진 심대사(深大寺)는 관동지방의 천년고찰로 도쿄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사이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관동 최고(最古)의 절인 센소지는 한반도계 출신인 히노구마 형제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들이 바다에서 건진 금동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 센소지이며 아사쿠사 신사는 이들 어부 형제와 마을 원로 하지 씨를 모신 사당이다. 또한 센소(浅草)라는 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당시 푸른 초원 지대로 말을 기르던 곳이다. 목장을 경영하며 경제권을 장악하여 야마토정부의 관동개발 프로젝트를 완성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반도 출신자들로 그들은 오늘의 관동지방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들이기도하다. 이곳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참고로 이 글은 2010년 1월에 답사를 마치고 쓴 글이다. 아사쿠사 센소지는 신도들에게 관세음신앙의 명소이지만 관광객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나카미세(절 입구에 즐비한 상점)의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가미나리몽을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상점가는 다양한 일본 전통인형은 물론이고 직접 구워 파는 전통과자와 모찌 등의 먹거리와 핸드백을 비롯한 여성들의 소품 액세서리, 옷, 신발, 기모노를 만들 수 있는 옷감류 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거기에 뒷골목에는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러한 나카미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아사쿠사는 옛도시의 분위기를 간직한 유서깊은 절이 있는 도쿄에서 가장 전통적인 거리 입니다. 수세기의 역사를 간직한 아사쿠사간논절(浅草觀音)과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는 물론 주변 지역에까지 아사쿠사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사쿠사에서는 에도시대 서민 경제와 오락의 중심이었던 옛 도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고 또한 현재 이 시대 서민들의 활기찬 생활 모습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이토쿠(臺東區) 관광과에서 만든 <아사쿠사 일대와 센소지>에 대한 한국어판 안내문은 일본어를 몰라도 아사쿠사 일대를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친절한 한글로 되어 있으며 아사쿠사 역 근처 여행안내소에서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를 도쿄의 인사동거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인지 인사동 골목의 아기자기한 상점가인지 헷갈리는 곳. 절 입구에 나란히 나있는 나카미세(仲見世, 상점가)는 언제나 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이곳이 관동 최고의 관세음신앙지 센소지(浅草寺)다. 센소지는 가장 오래된 절을 뜻하는 최고(最古)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절로도 최고(最高)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도쿄 시내를 순환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다카쿠신사(高來神社)는 명치 때만 해도 고려신사로 불렸다. 고래신사연혁 기록에 따르면 1843년 만 해도 천태종 소속의 고려사(高麗寺, 고구려를 뜻함)였으며 도쿄 우에노에 있는 관영사(寬永寺) 말사로 나와 있다. ▲ 신편사가미국풍토기에 나오는 1883년 당시의 고려사경내도 고려사라 되어 있다.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고려산은 고래신사가 들어 서 있는 바로 뒷산이며 이 산 정상에는 상궁(上宮)이라 일컫는 전각이 있었다. 이곳을 사람들은 고려권현사(高麗権現社)라 불렀다. 서기 854년에는 자각대사 엔닌(慈覺大師, 円仁,794-864)에 의해 오른쪽 봉우리에는 백산권현(白山権現)을 모시는 백산사(白山社)가 세워졌고, 왼쪽 봉우리엔 비사문천(毘沙門天)을 모시는 비사문천사(毘沙門天寺)가 세워졌는데 이 두 고려신사를 합쳐 고려삼사권현(高麗三社権現)이라 불렀으며 이는 사가미(相模) 지방 최고의 명신신사로 한 몫을 했던 곳이다. 여기서 잠시 독자들은 혼동을 일으킬 것이다. 고려사(高麗寺)는 무엇이고 고려신사(高麗神社)는 무엇인가?하고 말이다. 같은 번지수 경내에 절도 있고 신사 건물도 있는 것은 일본고유의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다카쿠신사가 들어선 뒷산 이름은 고려산(高麗山)이다. 명치 정부가 아무리 신사이름을 바꾸어도 산 이름은 바꾸지 못했나보다. 이 고려산은 현재 고려산 현민의 숲(高麗山県民の森)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산이며 그 역사는 깊다. ▲ 고려산에서만 자란다는 꽃들, 아마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한국 토종꽃이 아닐는지.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가시꽈리, 산골무꽃, 큰 갈고리풀, 엉겅퀴모양의 다무라꽃 이 산은 가나가와현에서 관리하며 천연기념물 등 많은 자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고려산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카지마(中島浩)의 46쪽에 달하는 고려산 생태보고서에 보고서 자세히 나와 있다. 나카지마 같은 사람이 이럴 때는 한 없이 고맙다. 우리보다도 더 자세한 수많은 문헌을 뒤적여 고려산과 고려신사의 유래와 생태학적인 연구까지 해놓았으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이소쵸(大磯町) 동사무소는 누리집에 한글판을 따로 둘 정도로 고려산의 생태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여기에는 고려산에서 밖에 볼 수 없다는 진귀한 꽃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무라꽃이라고 부르는 엉겅퀴모양의 꽃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쇼난평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관동의 역사를 말할 때 고대 한국인(도래인)의 활약을 언급치 않고는 설명 할 수 없다.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는 조선반도로부터 온 도래인들이 상륙한 지점으로 그들의 활동 무대는 다마천의 고마에지역(多摩川の狛江)과 이리마의 고려향(入間川の高麗郡)까지 뻗쳐있다. 도래인들은 관동평야 개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은 황족 일족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왔으며 그것은 무사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이소의 다카쿠신사(高來神社), 사이타마의 고마신사(高麗神社), 하코네의 하코네신사(箱根神社)는 관동지역의 유수한 역사를 지닌 신사로 모두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치정부는 오이소의 고마신사(高麗神社)를 다카쿠신사(高來神社)로 이름을 바꾸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1300여년의 고구려 흔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고구려 역사는 동네 이름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나가와현 오이소(大磯)라는 이름의 동네이름은 마치 경상도 말의 오이소(오라의 뜻) 처럼 들린다. 어서 우리 동네로 오이소. 천 삼백여 년 전 청운을 품고 정착했던 고구려마을로 한국인들이여 싸게 싸게 오이소
[그린경제=이윤옥 기자]고구려 약광왕을 모시는 사찰 성천원을 나와 발걸음을 재촉한 곳은 승낙사(勝樂寺) 불장원(佛藏院二)이다. 이 절 역시 성천원과 같이 고구려 중 승낙에 의해 지어진 절이다. 부랴부랴 고마가와역(高麗川驛)을 빠져나와 세이부이케부쿠로선을 타고 도코로자와(所澤)까지는 순탄하게 갔는데 문제는 도코로자와에서 지선(支線)으로 갈아타면서 발생했다. 단희린 씨의 《일본에 남아있는 고대조선, 日本に残る古代朝鮮》에 소개된 대로 찾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혼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역주민이라고 해서 그 지역의 지리를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철도역에 근무하는 직원이라 해서 유서 깊은 곳을 다 아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 하루였다. 편의점에서 무작정 콜택시를 기다리다 ▲ 승낙사 본당. 마치 신사처럼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니시도코로자와에서 한 정거장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불장원을 놔두고 엉뚱한 곳에서 전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지역 주민들의 잘못된 길 안내 탓이라고 하겠으나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바쁜 탓에 비싼 택시를 타는 바람에 뜻하지 않은 지출이 생긴 점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도코로자와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