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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아나바다에 만족하지 말고 순환경제로 나가야 한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98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환경학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겠지만, “친환경적으로 산다”라는 것을 쉽게 표현하면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최소화하는 삶을 말한다. 요즘 지구 차원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인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 UN에서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탄소중립은 모든 인류가 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현재보다 줄여야 달성할 수 있다.

 

자원과 에너지의 사용을 줄이자는 목적의 사회 운동으로서 ‘아나바다’가 있다. 아나바다는 1997년 11월,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기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울 때 나타난 사회 운동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기업들이 쓰러지고, 자영업자들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물가는 치솟고,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고 자살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대한민국 독립 이후 최대 경제 위기에 처하게 되자 종교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아나바다 운동을 시작하였다. 아나바다는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자는 사회 운동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아껴 쓰기: 물건을 사기 전에 꼭 필요한지, 대체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생각해서 최소로 사자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면,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원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그러므로 물건 구매를 최소화하고 일단 산 물건은 최대한으로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이 친환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꼭 필요한 옷만 사면,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자원과 에너지가 절약된다. 또한 옷을 버릴 때 발생하는 쓰레기가 줄어들어서 폐기물 처리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나눠 쓰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거나 중고로 파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지 않는 옷을 나눠 주면 새옷을 사야 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교복이나 교과서를 후배에게 물려주는 운동이 이때 나타났다.

 

바꿔 쓰기: 물건을 다른 사람과 바꾸어 쓰면 새 물건을 덜 사게 될 것이다. 장난감이 좋은 예이다. 어린아이들이 한번 사용한 장난감을 다른 아이와 바꾸어 쓰면 싫증도 나지 않고 새로 사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책을 한번 읽고서 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바꾸어 읽는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쓰기: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분리수거하여 다시 쓰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고 환경오염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 유리, 캔, 종이 등을 분리수거하여 재활용하면 자원과 에너지를 상당량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국민은 위기에 강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 아나바다 운동, 국산품 쓰기 운동 등을 통하여 3년 8개월 동안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교육부에서는 중학교 환경 교육과정에 아나바다라는 용어를 넣고 적극적으로 아나바다 운동을 지원하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 제도는 대량생산 ->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기본으로 굴러가는 제도다. 이러한 구조에서 인간의 자원에 대한 사고방식은 단순하다. 생산에 필요한 자연자원을 얼마든지 채취하여 사용하면 된다고 믿는다. 환경학자들은 자원에 대한 이러한 근시안적 인식이 자원 고갈과 기후 위기, 그리고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광물자원을 비롯한 삼림자원, 수산자원은 무한정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하는 경제 구조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은 기존의 선형 경제(Linear Economy) 구조를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순환 경제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이다. 순환 경제는 제품의 생산에 투입된 자원을 폐기하지 않고 생산 단계에 재투입하여 자원의 값어치를 최대한 지속시키면서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경제 모델이다. 아래 그림을 살펴보자.

 

 

2020년 프랑스 정부는 <순환 경제를 위한 낭비 방지법>을 제정하였다. 순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자원의 낭비를 막고 폐기물을 줄이자는 법안이다. 이 법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2022년 12월부터 소비자에게 전자 제품 ‘수선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노트북이 고장 났을 때 바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45유로(약 6만 3천 원)의 수선비용을 지원받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다. 그 밖에도 토스터 수리에는 10유로, 휴대전화 25유로, 텔레비전 30유로, 세탁기는 45유로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23년 7월부터는 의류 수선비도 보조금을 적용한다. 해마다 프랑스에서는 70만 톤의 의류가 버려지고 그 가운데 3분의 2는 매립된다. 의류 수선 보너스는 신발 뒤축 수선에 7유로, 안감 수선에 10~25유로를 지원하여 의류의 재사용을 유도한다. 수선 보너스를 지원받으려는 소비자는 정부 인증 라벨을 받은 수선업자에게 수선을 맡기고 업자는 공제한 금액을 환급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가? 환경부에서는 2016년에 제정된 <자원순환기본법>을 전면 개정하여 2023년 9월에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시켰다. 순환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름에 담은 이 법은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법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제1조 (목적) 이 법은 생산ㆍ유통ㆍ소비 등 제품의 전 과정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폐기물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며 발생된 폐기물의 순환 이용을 촉진하여 지속가능한 순환경제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회에서는 국제 사회의 흐름을 따라서 순환경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2023년 11월 7일, 환경부에서는 11월 24일부터 시행을 예고했던 1회용품 사용 규제(종이컵 사용 규제,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 포함)를 철회하였다. 대신 미지근하게, 종료 시점이 없는 계도 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공급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친 공급업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러한 뒤집기의 이면에는 올해 4월의 총선을 의식하고 (일회용품 규제를 불편해하는) 소상공인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압력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된다.

 

우리나라를 순환경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법은 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천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 개인이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신뢰를 잃고 심하면 왕따를 당할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부처가 법행일치(法行一致)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퇴출될 것이다.

 

환경부의 분발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