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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창극 <춘향>, 새로운 매력을 선사하다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제57회 정기공연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15]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7월 13일, 14일 이틀에 걸쳐 국악의 성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제57회 정기공연 창극 <춘향>을 선보였다. 이 공연은 2012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초청작으로 ‘춘향아씨’로 선보인 이후 12년 만이다.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음악으로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인기 있는 눈대목이다. 춘향가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고전 소설, 신소설, 현대소설 ‘춘향전’으로 지속해서 개작되며 대중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에 대한 질책과 높고 낮음이 없는 신분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며, 사회적 모순과 비판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또한, 춘향가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하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서울 국립창극단이 정기적으로 올리는 창극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단골 소재인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와 노래로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거기에 판소리의 성지인 전라도 한 복판인 전주의 귀명창들 앞에서 어지간히 소리를 잘하지 않으면 비웃음당할 것은 안 보아도 훤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수의 판소리 명인을 배출한 전주에서 하는 창극 <춘향>은 어떨까 싶어 공연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다. 2,037석의 대극장이 꽉 찰까 싶을 때, 순식간에 좌석이 꽉 메우기 시작하였다.

 

 

먼저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무대의 뒷공간(백스테이지)은 출연진들의 대기 혹은 무대의 전환을 위해 무대 세트들을 모아두는 곳이다. 그래서 항상 뒷공간은 어수선하므로 검은 막으로 가려둔다. 그리고 무대 세트로 장면의 배경을 이해 시킨다. 그런데, 뒷공간을 활용하여 원근감을 주어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곧 기존의 세트로 무대를 꽉 채워 장면을 나열하듯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사건의 이야기와 감정의 변화에 따라 공간을 늘렸다 줄였다 하며 하나의 영화처럼 다양한 각도로 보이게 한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달의 크기와 색깔을 활용하여 관객들은 등장인물들과 가까이 있는 듯하게 하고 멀리 떨어져 보이기도 하며 공간에 관한 효과를 2배로 높인다.

 

2막 10장, 장장 3시간 동안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게 한 것은 무엇보다 소리였다. 판소리의 가사는 한자어와 사자성어가 많아 이해가 어려운데 무대 양옆 스크린에 가사와 함께 잘 해석된 영어를 함께 보게 하였다. 어느 극장의 공연장에서 영어 번역이 잘못되어 불편감을 가질 때가 있는데, 참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모습이 관객의 배려였음을 알 수 있다. 분명 몇몇 외국 관객들에게도 필자와 같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 덕분에 가사를 따라 창극을 보니 그 전달이 편하게 다가와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38돌을 맞은 창극단, 관현악단, 무용단의 연륜은 그들의 소리와 연주, 춤에서 탄탄한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연이어 터지는 박수갈채와 추임새는 1막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몇 번이나 박수갈채가 나올 것인가 지켜보던 필자는 박수 세는 손가락을 접고 어느새, 펑펑 울고 있었다. 이렇게나 솔직한 춘향이가 있을 것인가! 나를 두고 가지 말라는 그 당돌한 말 속에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고, 그런 두 연인을 보는 어미 월매의 속 타는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막의 시작부터 관객들의 박수와 추임새는 이제 극의 한 부분이 되어 함께 유희한다.

 

 

 

이용탁 지휘자의 작곡 실력은 서울에서도 호평으로 자자한데 곡은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웅장하고 화려한 음악뿐만 아니라 세련된 음색들이 귀에 꽂혔다. 전통의 창법이 짙은 창극단의 울림은 판소리에 대한 사전의 지식이 없다면, 함께 즐기기 어렵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친숙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정통의 창법으로 마음을 절절하고 화통하게 내지르는 중간중간에 관현악단의 영화 음악 같은 선율들과 함께 단체무(舞)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전통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국악 학자와 연주자들이 연구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시대에 따른 음악과 춤의 변화가 더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바로 정통성과 전문성에서 나온다. 이것은 수년의 수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정통이 아니면, 오랜 관객들은 설익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통의 소리에 영화 음악 같은 선율을 연주하고 그 위에 춤을 추니 옆에 앉은 어린 관객들이 연신 손뼉을 친다. 시대가 변화하듯 대중의 세대가 변한다. 그러니 정통의 창법이 다음 세대의 어린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주기 위해서 세련되고 현대적인 음악과 어울리는 변화의 도전은 응당 당연함에도 정통을 담아 올리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이런 면에서, 창극<춘향>은 미래의 관객들을 확보해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시대성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국립창극단이 대표 브랜드 공연 창극 <청> 등의 다수의 작품에서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국문학자로서 판소리 문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를 양성했던 고려대학교 유영대 명예교수가 오랜 예술의 경험으로 쌓아 올리며 시대를 통찰하여 제작 총괄을 맡았기 때문에 세련되고 깊이 있는 감동의 무대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초등학생부터 80대의 어르신들까지 기립하여 박수를 칠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바로 재미였다. 배꼽 빠지게 웃고, 가슴 아프게 울고, 괘씸해 하고 통쾌해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즘(정화)! 작품에 공감하며 내면의 치유를 있게 하는 이 카타르시즘이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희노애락’의 감정으로 작품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또한, 복잡하고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극장에서 혼자 앉아 웃고 울면서 감정이 후련해지고 정화되었다. 그래서인가 전주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는데, 서울 오는 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공연날짜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창극이 한주에서 한 달 정도 장기공연을 한다면 같이 갈 수 있었던 몇몇 지인들도 공연날짜가 짧아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이런 국악의 성지로서 창극의 활성화를 위한 막대한 사명감이 있다. 특히, 춘향은 전북의 대표 무형문화유산이 아닌가! 이곳 아니면, 어디에서 영감을 받고 배움을 얻어 갈 수 있겠는가? 국악인들은 여름이고 겨울이 되면 공부하러 전라도에 모인다. 이곳에서 영감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명품 작품들이 지속하여 선보이고 장기 공연을 하여 전국 또는 나라 밖 관객들이 언제나 찾아 만날 수 있도록 전북특별자치도는 국악원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당분간 춘향 앓이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