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2월 1일부터 9일까지 모두 5회 진행된 해우림 국악관현악단과 사랑국악앙상블의 불가리아 순회 연주는 단순한 나라 밖 공연을 넘어, 전통음악의 나라 밖 소개라는 차원을 넘어, 장르 간ㆍ문화 간 번역의 가능성을 실험한 복합 예술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필자 이진경(사랑국악앙상블 단장)과 해우림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안준용이 함께 구축한 이번 무대는 국악관현악의 구조적 밀도와 현장성이 국제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단순한 연주 교류가 아니라, 음악ㆍ신체·서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하나의 문화적 제안이었다. 불가리아 전통음악과의 협업은 공연의 핵심 축이었다. 서로 다른 음계와 리듬 체계를 지닌 두 전통음악은 충돌하기보다 병치와 공명을 통해 새로운 음향적 마당을 형성했다. 한국 전통악기의 농현과 불가리아 특유의 선율 감각은 서로를 대비시키면서도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전통이 고립된 유산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확장되는 지금의 언어임을 드러냈다. 이는 문화 교류가 단순한 병렬적 나열이 아니라, 상호 호흡을 통해 재구성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안무는 이러한 음악적 만남을 공간적으로 조직하는 또 하나의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1월 18부터 19일까지 서울 자문밖아트레지던시 팔각정에서 열린 이지현 안무가의 〈CREW〉는 몸과 공간, 빛과 텍스트가 서로를 넘나들며 하나의 흐름으로 응축된 공연이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장면들은 단순한 군무가 아니라 서로의 숨과 무게가 맞물리며 형성한 움직임의 연합이었다. 움직임과 움직임이 지탱하고 스치는 경계에서 하나의 흐름이 생성되는 순간들—그 순간들이 〈CREW〉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CREW〉 : 크루는 ‘같은 목적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흔히 무대 퍼포먼스에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인가? 무용수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축을 확인하며 미세한 균형을 교환했고, 다시 모이고 흩어지는 반복 속에서 관계가 다시 쓰이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는 단순한 안무 설계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이 타인의 무게와 시선을 어떻게 감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풀어낸 ‘관계의 풍경’이었다. 이 흐름의 안쪽에는 언제나 조용히 스며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작고 단단한 체구의 이지현 안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9월 21일 토요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열린 이재화거문고회 창단연주회 「현묘(玄妙)」는 단순히 한 단체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전통음악사의 맥락 속에서 오랫동안 잊히거나 변형되어 전해지던 풍류의 한 갈래를 다시 무대 위에 되살려낸, 역사적이고도 예술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무대에서 복원된 것은 1920년대 거문고 명인 백낙준(白樂俊, 1884~1933?)이 남긴 투리(投理)다. 투리는 그 이름조차 대중에게 생소하지만, 바로 그 낯섦이야말로 전통의 깊은 저변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의 값어치를 일깨운다. 이번 복원은 춘산 전재완이 1958년에 채보·발간한 악보를 근거로 이루어졌다. 전재완은 특히 서양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는데, 그의 채보 방식은 전통 정간보의 세로 배열과 달리 가로형 정간보를 택했다. 이는 전통음악을 서양 기보법적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시도이자, 전통과 근대적 음악 교육이 충돌하고 융합하던 시대적 맥락을 반영한다. 더구나 이 귀중한 악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이진원 교수가 제공한 자료로, 이번 무대를 위해 이재화 명인에게 전달되었다. 연구와 교육의 맥락에서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가을의 문턱에 선 과천은 지난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예술’로 물들었다. 2025년 과천공연예술제의 주제는 ‘기억과 상상이 솟아오르는 시간’. 단순한 표제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며 현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감각적 중심어가 눈길을 끌었다. 축제의 현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풍선을 활용한 야외 공연장이었다.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설치 구조물은 관객들에게 마치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안겨주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았다. 공간 자체가 공연의 일부가 되어 관객의 감정을 예열하는 효과적인 연출이었다. 올해 축제는 ‘지역축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뚜렷했다. 특히 나라 밖 예술단체들의 활발한 참여가 눈에 띄었다. 무언의 신체극, 독창적 오브제 퍼포먼스, 현대무용과 영상이 결합한 무대 등 익숙하지 않은 형식들이 주제의 서사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는 과천공연예술제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지구촌 예술 축제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나라 밖 단체의 참여가 신선한 자극을 준 반면, 지역 예술단체와의 긴밀한 서사의 연결은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캄보디아 바탐방(Battambang)에서의 시간은 선교 사역이 곧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언어의 벽은 노래와 몸짓,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 앞에서 쉽게 무너졌다. 선교사역의 첫 시작은 공연 봉사였다. 신나는 찬양 율동이 시작되자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고 팬플룻의 독주가 바람처럼 울려 퍼지자 귀 기울여 듣기 시작하였다. 이어 미니가야금과 플룻, 신디사이저, 바순이 합주를 이루었다. 서로 다른 음색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낯선 이들의 마음을 묶어냈다. 특히 전통 민요 ‘아라삐야’를 편곡해 연주했을 때는 청중이 박수로 응답했고 곧 합창으로 이어졌다. 찬양과 율동은 국적과 언어를 뛰어넘어 하나의 몸짓으로 모였다. 이후 의료ㆍ어린이ㆍ미용ㆍ한복체험 봉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의료 봉사는 내과와 치과, 한의과, 방사선과, 안과, 정형외과, 약국까지 갖추어 주민들을 맞았다. 환자들은 진료와 치료를 받은 뒤 복음을 들으며 몸과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약과 처방이 몸을 돌봤다면, 복음은 영혼을 어루만졌다. 미용 봉사는 머리를 손질하고 손톱을 다듬는 작은 섬김이었지만, 그 속에서 존엄과 웃음이 되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김천웅 안무가는 바체바 무용단에서 활동하며 현대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 왔으며, 이번 <미스터 소크라테스>에서 그가 쌓아온 철학적 사유와 안무적 실험이 결합하여 선보였다. 그의 안무는 단순한 미적 표현에 그치지 않으며,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도전적인 시도로, 무용수들의 신체를 통해 철학적 사유를 시각화하였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여전히 동시대적인 의미를 지닌 철학적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질문은 단순히 이론적인 사유에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몸의 움직임을 통해 탐구하려는 시도다. 공연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의 신체 언어가 하나의 질문으로 기능하게 하며, 관객에게 그 해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은 스스로 사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으로 초대된다. 이 작품은 단순히 미적 표현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를 몸으로 던지는 대담한 시도이다. 미스터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이 주는 직관적인 철학적 깊이는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며, 관객을 소크라테스의 사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4월 3일 늦은 7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유희정 함동정월류 가야금산조 독주회가 열렸다. 함동정월류 가야금 산조에 대해 말하기 전, 그 뿌리는 이렇다. 함동정월 명인은 강진군 병영면의 출신으로 스승 최옥삼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최옥삼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최옥산’으로 알려져 있던 최옥산류(현재는 최옥삼류로 불린다.)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명인이다. 그는 김창조와 한성기에게 어린 시절 가야금 산조를 배우고 북한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국악인으로 북한민중음악사 계보를 잇는 북한 음악인들의 스승으로 남도 음악을 기반으로 북한 음악을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함동정월(예명, 본명 함금덕)은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11세 때 광주 권번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12세 강진군 병영면에서 여러 선생에게 춤과 노래를 배웠다. 특히 스승 최옥삼에게 가야금을 배워 1980년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으면서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다. 사람들은 그 산조를 최옥삼제 함동정월류라 부르기도 하였다. 월북한 스승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던 시절을 지난 1998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이하 선화) 개교 50돌을 맞이하여 전공별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화국악동문회는 지난 2월 2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50돌 기념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선화는 ‘태극기를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1962년 창단된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시작으로 1974년 선화예술중학교를 설립하고 이어서 선화예술고등학교를 1977년에 개교하였다. 이번 선화국악동문회는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175명의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예술계의 산실임을 여지없이 증명하였다. 필자는 선화예술고등학교 20기 거문고 전공 출신이다. 광진구에 있는 선화예술고등학교에 들어서면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날마다 등교하며 그 글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정문 왼편에는 유니버설발레단과 유니버설아트센터(옛 리틀엔젤스회관)가 자리하고 있다. 재학 당시 필자는 언젠가는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연주하고 이 문을 지나 세계를 향해 갈 것이라며 마음을 새긴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이제까지 예술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글귀 덕이다. 선화인들은 이 글귀를 모두 기억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계엄령과 탄핵으로 필자의 슬픔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지난 29일 갑작스러운 여객기 사고 소식으로 깊은 아픔이 밀려왔다. 필자는 아프고 애석한 마음까지 겹겹이 쌓이며 숨이 막힐 듯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말을 의미와 값어치가 있는 공연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30일 저녁 7시 30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의 ‘무명씨의 아홉 짐’의 공연이 눈에 띄었다. ‘무명씨의 아홉 짐’은 전통적인 지게꾼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창작된 마당극이다. 여기에서 ‘아홉 짐’은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무를 아홉 짐하고, 새끼를 아홉 발로 묶으면 부자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예술 창작 활동 지원사업에 뽑힌 <가락프로젝트> 연속물 가운데 하나다. 급속한 산업화로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민속 문화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작되었다. 이창훈 감독은 “민속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사라져가고 있는 민속 문화를 만나기 위해 가락프로젝트의 길을 계속 가겠다.”라고 말했다. 무대는 양쪽에 계단을 놓았고 악단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2월 20일 저녁 8시와 9시 연희동에 있는 데스툴(Derstuhl) 카페에서 현대무용 작품 ‘홈(HOM)’이 선보였다. ‘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필자는 목구조에서 부재와 부재를 끼워 넣어 연결하기 위해 안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생각났다. 또, 영어로 ‘홈’은 ‘집’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연달아 나면서 두 단어의 기묘한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함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서둘러 출발하였다. 이효정 안무가는 홈에 관하여 한국어로는 움푹 들어간 부분의 ‘파인 공간’, 영어로 ‘집’을 뜻한다며 두 단어 모두 ‘안정’을 의미한다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가장 친밀한 공간인 집에서 육체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공연은 모두 네 군데의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관객들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관람하였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한 무용수의 불안정한 움직임에서 시작하여 네 명의 무용수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동작을 선보였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무표정으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든 관절을 사용하며 거칠고 투박하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