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이하 선화) 개교 50돌을 맞이하여 전공별 공연과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화국악동문회는 지난 2월 2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50돌 기념 공연으로 대미를 장식하였다. 선화는 ‘태극기를 세계로’라는 기치 아래 1962년 창단된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시작으로 1974년 선화예술중학교를 설립하고 이어서 선화예술고등학교를 1977년에 개교하였다. 이번 선화국악동문회는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175명의 동문들과 재학생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며, 명실상부 예술계의 산실임을 여지없이 증명하였다. 필자는 선화예술고등학교 20기 거문고 전공 출신이다. 광진구에 있는 선화예술고등학교에 들어서면 “이 문은 세계로 통한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날마다 등교하며 그 글귀를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정문 왼편에는 유니버설발레단과 유니버설아트센터(옛 리틀엔젤스회관)가 자리하고 있다. 재학 당시 필자는 언젠가는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연주하고 이 문을 지나 세계를 향해 갈 것이라며 마음을 새긴 적이 있다. 돌이켜보니 이제까지 예술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글귀 덕이다. 선화인들은 이 글귀를 모두 기억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계엄령과 탄핵으로 필자의 슬픔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지난 29일 갑작스러운 여객기 사고 소식으로 깊은 아픔이 밀려왔다. 필자는 아프고 애석한 마음까지 겹겹이 쌓이며 숨이 막힐 듯했다. 그래서 필자는 연말을 의미와 값어치가 있는 공연으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30일 저녁 7시 30분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의 ‘무명씨의 아홉 짐’의 공연이 눈에 띄었다. ‘무명씨의 아홉 짐’은 전통적인 지게꾼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창작된 마당극이다. 여기에서 ‘아홉 짐’은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무를 아홉 짐하고, 새끼를 아홉 발로 묶으면 부자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2018년부터 서울문화재단 예술 창작 활동 지원사업에 뽑힌 <가락프로젝트> 연속물 가운데 하나다. 급속한 산업화로 공동체 문화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민속 문화가 더 이상 전승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시작되었다. 이창훈 감독은 “민속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사라져가고 있는 민속 문화를 만나기 위해 가락프로젝트의 길을 계속 가겠다.”라고 말했다. 무대는 양쪽에 계단을 놓았고 악단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12월 20일 저녁 8시와 9시 연희동에 있는 데스툴(Derstuhl) 카페에서 현대무용 작품 ‘홈(HOM)’이 선보였다. ‘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필자는 목구조에서 부재와 부재를 끼워 넣어 연결하기 위해 안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생각났다. 또, 영어로 ‘홈’은 ‘집’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연달아 나면서 두 단어의 기묘한 연관성이 무엇일지 궁금함을 가지고 공연장으로 서둘러 출발하였다. 이효정 안무가는 홈에 관하여 한국어로는 움푹 들어간 부분의 ‘파인 공간’, 영어로 ‘집’을 뜻한다며 두 단어 모두 ‘안정’을 의미한다고 소개하면서 여성들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가장 친밀한 공간인 집에서 육체노동으로 인해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공연은 모두 네 군데의 공간에서 이루어졌고 관객들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관람하였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한 무용수의 불안정한 움직임에서 시작하여 네 명의 무용수들이 각각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동작을 선보였다. 무용수들은 공연 내내 무표정으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모든 관절을 사용하며 거칠고 투박하게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이 창단 79년 제93회 정기연주회를 맞이하여 지난 12월 17일 영등포아트홀에서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 원영석 교수의 지휘로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성탄절을 맞이하기 한 주 전에 진행된 이번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은 많은 관객이 찾아와 5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필자는 교회음악을 하는 아마추어(여기에서 이들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 하지 않은 자들을 뜻함) 합창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평소 음악 공연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던 외국인 유학생 3명, 한국 학생 1명과 동행했다. 교회음악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모차르트의 ‘레퀴엠(D단조, K. 626)’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합창한다는 프로그램 안내에 과연 얼마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성악 전공자들도 오랜 시간 수련을 해도 어려운 대곡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의문이 무색할 만큼 훌륭히 해내었고 동행한 학생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오늘 레퀴엠에서 8곡을 불렀는데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기도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필자 또한 전문 국악 연주자들과 함께 찬양국악단 사랑국악앙상블을 17년째 단장으로 이끌고 있다. 아마추어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라는 뜻을 가진다. 혹은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도 한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부터 관계를 맺는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들리는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태아는 세상에 반응하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태아는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며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인간은 사회 안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이루어가며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답게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한 범죄자들에게 자유롭게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장소로 사회와 단절시키는 듯하다. 정이와 댄스프로젝트의 대표이자 안무가인 정이와 교수는 지난 11월 1일~2일 포스트극장에서 발표한 ‘관계성(Relationscapes)’은 ‘관계(relation)’와 ‘풍경(scapes)’을 붙인 단어로 사용한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형성하는 방식을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관점에서 탐구한다는 의도로 사용했다. 그래서 ‘관계성’, ‘움직임’이라는 열쇠말을 가지고 몸, 사물, 자연, 시간과 공간 등이 상호 작용하고 공동 창조하는 모습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2024년 9월 28일 토요일 저녁 5시, 정근식 예비후보는 선거사무소에서 문화예술교육강화를 촉구하는 지지 선언과 정책 협약 체결식을 ‘정지예(정근식을 지지하는 예술인)’과 함께 진행한다. 지난 9월 13일 서울교육청 정문에서 정근식 예비후보는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 삭감의 심각성을 느끼고 문화예술교육인ㆍ청년예술인과 함께 연대 정책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이날 정근식 예비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학교문화예술교육 예산 대폭 삭감 철회를 요구하였다. 정부는 올해부터 학교 예술 강사 사업 예산을 지방교육재정에 떠넘기고 국고예산 50%, 내년도 국고예산도 72%, 결과적으로 2년 동안 국고예산 86%를 삭감하였다. 이는 2023년과 견주면 7분 1 수준으로 심각한 정도다. 정근식 예비후보는 문화예술위원회 분화위원회를 설치하여 문화예술인들과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의 현장 소리를 귀담아듣고 정책에 담고자 상시적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자들은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들 간에 양극으로 치닫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문화예술을 매개로 회복과 치유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현장의 심각한 문제를 보지 않고 무조건적인 삭감으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2024년 8월 2일 금요일 저녁 8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정이와 안무가의 작품 ‘보이지 않는 벽’ 개인 발표회가 열렸다. 정이와 안무가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출강하며 정이와 댄스프로젝트의 대표이자 조기숙 K_CB 수석 무용수이기도 하다. 어두움이 짙게 드리운 무대 위 신발 한 쌍이 고요한 침묵 속에서 등장한다. 조명을 따라 신발 한 쌍은 다가오는 듯 혹은 멀어지는 듯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벽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의 또는 타의에 따라 벽은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가 사는 삶 동안 나타난다. 정이와 안무가는 작품을 ‘벽을 마주하다 – 벽을 넘어가다’의 시작과 끝으로 구성하여 삶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장막마다 자기 방식의 움직임을 통해 말하고자 하였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속에서 필자는 지난날 마주한 보이지 않는 벽들이 떠올랐다. 내 삶에 마주했던 보이지 않는 벽들은 생애 주기별로 나타났었다. 진로를 향한 열정과 두려움,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이해적 충돌, 매 순간 결정해야 할 때마다 마주하는 옳고 그름의 정의들에서 때로는 외면하기도 하고 버티고 방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지난 7월 13일, 14일 이틀에 걸쳐 국악의 성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제57회 정기공연 창극 <춘향>을 선보였다. 이 공연은 2012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초청작으로 ‘춘향아씨’로 선보인 이후 12년 만이다. 춘향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로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음악으로 ‘사랑가’와 ‘쑥대머리’가 인기 있는 눈대목이다. 춘향가는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로 고전 소설, 신소설, 현대소설 ‘춘향전’으로 지속해서 개작되며 대중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 속에는 부정부패한 탐관오리들에 대한 질책과 높고 낮음이 없는 신분에 관한 이야기, 여성의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며, 사회적 모순과 비판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또한, 춘향가는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하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서울 국립창극단이 정기적으로 올리는 창극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단골 소재인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와 노래로 대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거기에 판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우리는 모두 다른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땅하다. 창작자가 생각한 주제를 관람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자신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 혹은 평론은 여러 경력을 갖지 않으면 언론사에서 쉽게 글을 올려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그 글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고심 끝에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문화평론가로서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예비 문화평론가 소개”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 소개에는 ‘문화톺아보기’의 문화평론가로서 후대들에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의 발전을 위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필자의 <비평> 수업을 통해 양성한 이들로 제한하여 뽑았다. 많은 신청자 가운데 <우리문화신문>의 주제와 색깔이 어울리고 단순한 감상과 평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주체성으로 시대의 영향이 되어줄 글을 기준으로 하였다. “Who cares?”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누가 상관이나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재학생들이 준비한 <2024 MOVEMENT EWHA>가 지난 2024년 5월 29일 저녁 늦은 저녁 8시에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올렸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는 올해 61돌을 맞이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갖은 국내 대표 무용과다. 졸업생들은 예술분야의 주요 요직에 진출하였고 현재까지도 무용 예술계와 교육계에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을 선보이며 그들만의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학부생 작품 9편, 대학원생 작품 2편으로 자신들만의 심오한 예술철학을 펼친 <2024 MOVEMENT EWHA>의 도전과 열정은 아름답고 강했고, 거침없이 자유로웠다. 작품들의 특징은 학생들의 전공인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초월해서 컨템포러리 하다는 것이다. 즉 서양의 춤이나 과거의 것을 추지 않고 ‘지금 여기’의 무용을 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 대학무용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의 안무 작품 수준은 과히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한국인 발레리나는 몇 명 배출했지만 정작 세계적인 안무자는 배출했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앞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