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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의 천재 설계자, 정도전

《재상 정도전》, 글 민병덕, 그림 김창희, 살림어린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도전.

‘조선개국’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뤄낸 인물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정도전이다. 조선 개국은 사실상 정도전이 이성계를 택해 이뤄낸 업적이라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정도전은 이방원과 더불어 개국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런 이방원과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臣權)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정도전이 패배하며 가문이 몰락하고 말았다. 그 뒤 정도전은 오랜 세월 잊혔다가 정조가 정도전의 글 《삼봉집》을 읽으며 조선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개혁 과제를 찾으며 다시 부상했다.

 

마침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통치하던 고종 8년(1871년) 3월, 정도전은 약 오백 년간 이어진 역적의 누명을 벗고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조선 왕조를 개창한 공으로 후손 대대로 복록을 누릴 수 있었으나 한순간 몰락해 버린 아픔을 오백 년 뒤에야 떨쳐낸 것이다.

 

민병덕이 쓴 이 책, 《재상 정도전》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한 풍운아가 겪은 삶의 부침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정도전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굴곡진 어린 시절을 보내며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해 고려왕조의 신하가 되었지만, 친원 정책에 반대하고 명나라와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권신 이인임에 의해 회진현(지금의 나주)에 유배되었다.

 

 

몇 년 뒤 귀양은 풀렸지만, 개경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개경 밖에 머물러야 했다. 이때 할 수 없이 그는 북한산 삼봉에 집을 짓고 살았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닦으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생활은 점점 비참해졌고, 부인도 생활고를 호소하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게다가 삼봉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집을 세 번이나 헐어버렸다.

 

그는 성리학자로 이름 높았던 이색 문하에서 정몽주 등 당대의 학자들과 학문을 배우고 청운의 뜻을 품고 출사했건만, 제대로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꺾여버린 현실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정말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때 그는 힘든 마음을 시로 지어 달랬다.

 

(p.93)

산중(山中)

 

산중에서 병들었다 일어나니

어린애가 나에게 얼굴 쇠했다 하네

밭농사 배워 직접 약초 가꾸고

집 옮겨 손수 솔을 심었다네

저녁 종소리 들리니 절은 어디냐

들불을 숲 너머 저 방앗간에서 나는 것

산골에 사는 멋을 알게 되어

근래에는 온갖 일에 게을러지네

 

하찮은 나의 터전 삼봉 아래라

돌아와 송계의 가을을 맞네

집안이 가난하여 병 고치기 방해되나

 

마음이 고요하니 근심 잊기 족하구려

대나무를 가꾸자고 길 돌려내고

산이 예뻐 작은 누를 일으켰다오

이웃 중이 찾아와 글자 물으며

해가 다 지도록 머물러 있네

 

결국 정도전은 혁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동문수학한 정몽주에게 이성계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우왕 9년(1383)년, 이성계를 만나러 함길도로 간 그는 이성계가 과연 대사를 도모할 인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성계와 아쉽게 작별한 정몽주는 다시 벼슬길에 올라 성균관 대사성, 곧 오늘날의 대학총장과 같은 지위에 이르렀다.

 

한편, 명나라가 고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며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철령(지금의 강원도 회양군) 이북의 땅에 철령위를 설치해 다스리겠다고 통보하자 요동 정벌 여론이 들끓었다.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추진하고자 했고, 이성계와 정몽주, 정도전은 반대했다.

 

반대를 무릅쓰고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로 하여금 요동을 치게 했고, 이성계는 마침내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려 반란을 일으켰다. 최영은 고봉현(오늘날의 고양)으로 귀양을 가고, 우왕은 강화도로 유배됐다. 그리고 아홉 살의 왕자가 임금이 되니 바로 고려 33대 임금 창왕이었다.

 

정도전은 위화도 회군 이후 정권을 잡은 이성계를 도우며 참모가 되었다. 정도전은 토지 개혁의 하나로 과전법을 시행하는 한편, 승려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아 명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한 창왕 대신 공양왕을 추대했다.

 

공양왕이 즉위하고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 공양왕은 목은 이색과 정몽주만 가까이하며 이성계와 정도전은 멀리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막역한 친구 사이였지만 이제는 정적이었다. 공양왕은 정몽주의 말에 따라 정도전을 예천 감옥에 가두었고, 정몽주와 뜻을 같이하는 강희백과 김진양이 상소를 올려 정도전과 조준을 처형할 것을 읍소했다.

 

정도전과 조준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밀려들던 때, 말에서 떨어져 요양하고 있던 이성계는 궁궐로 들어가 참형을 막았다. 이방원은 이대로는 정몽주가 결국 아버지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모두 죽일 것으로 생각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참살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된 이성계는 나라의 설계를 모두 정도전에게 맡겼다. 오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였다. 정도전은 평소 자신이 꿈꾸던 나라, 임금의 권력을 제한하고 신하들이 힘을 합쳐 운영하는 나라를 설계했다. 당시만 해도 엄청나게 혁신적이었던 이 체제를 이성계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 계속된 설득에 마음을 열었다.

 

정도전은 그 뒤 세자가 되지 못한 이방원이 난을 일으키며 살해되었지만, 본인이 꿈꾸던 나라의 기초를 놓는 데는 성공했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계획대로 이방원 대신 어린 방석이 왕위를 이어 신권이 더욱 강화되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펼쳐졌을까.

 

왕권을 신권으로 통제한다는 생각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임금에게 간언할 수 있는 언론기관과 같은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을 둔 것도 조선왕조가 오랫동안 이어진 비결로 꼽을 수 있다. 국정운영에 잘못된 것이 없는지 자정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기에 수많은 부침을 거치면서도 조선왕조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도전은 확실히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거의 10년 동안 겨우 연명하는 암흑기를 보내기도 했고,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리기도 했지만, 끝내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래도 나라의 기초를 놓는 기회가 몇백 년 만에 한 번 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신의 구상을 펼쳐 보일 기회를 만들어낸 정도전은 대단한 인물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뜻이 꺾여도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그런 불굴의 ‘정도전 정신’을 느껴보면 좋겠다. 시대를 앞선 정치체제를 구상하고, 이를 끝내 현실로 만들어낸 정도전의 노력과 재능을 곱씹어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