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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엎어지다’와 ‘자빠지다’

[우리말은 서럽다 42]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언젠가 어느 교수가 내 연구실로 들어서며, “재수 없는 놈은 엎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으며 받은 아픔을 털어놓겠다는 신호다. 혼자 속으로 ‘엎어지면 제아무리 재수 있는 놈이라도 코가 깨지기 십상이지.’ 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야기를 들어 주느라 애를 먹었다.

 

이분은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하는 속담에서 ‘자빠져도’를 ‘엎어져도’로 잘못 알고 쓴 것이다. 어찌 이분뿐이겠는가! 살펴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요즘 젊은 사람의 열에 예닐곱은 ‘엎어지다’와 ‘자빠지다’를 제대로 가려 쓰지 못하는 듯하다. 제대로 가려 쓰자고 국어사전을 뒤져 보아도 뜻 가림을 올바로 해 놓은 사전이 없다. 우리말을 이처럼 돌보지도 가꾸지도 않은 채로 뒤죽박죽 쓰면서 살아가니까 세끼 밥을 배불리 먹어도 세상은 갈수록 어수선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엎어지다’는 서 있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고, ‘자빠지다’는 서 있다가 뒤로 넘어지는 것이다. 코가 얼굴 가운데 튀어나와 있으므로 엎어지면 자칫 땅에 부딪혀서 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빠지면 뒤통수가 땅에 부딪혀 깨질지언정 얼굴은 하늘을 쳐다보기 때문에 코가 깨질 까닭은 아예 없다. 그렇다 해도 사람이 살다 보면 참으로 재수가 없어서 전혀 가망 없는 일이 일어나니, 자빠지다가 코를 깨는 수도 벌어질지 모르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앞의 속담은 우리네 삶의 길에서 더러 겪는 것처럼 얄궂고 짓궂은 노릇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들과 비슷한 낱말로 ‘쓰러지다’도 있고 ‘넘어지다’도 있다. ‘쓰러지다’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모로 넘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엎어지다’와 ‘자빠지다’와 ‘쓰러지다’는 저마다 넘어지는 쪽을 달리하여 쓰는 것일 뿐이고, 땅에 붙어 하늘을 바라고 서 있던 무엇이 땅으로 갑자기 드러눕는 움직임에서는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어느 쪽이나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든, 뒤로든 모로든, 하늘로 서 있던 것이 땅으로 드러눕는 것을 온통으로 싸잡아 쓰는 낱말이 곧 ‘넘어지다’다.

 

국어사전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우리 고향에는 또 다르게 넘어지는 것이 있다. ‘구불(어)지다’ 또는 ‘굼불(어)지다’가 그것이다. 이것은 가파른 비탈 같은 데서 넘어져 그대로 구르기까지 하는 것을 뜻한다. 곧 ‘넘어지다’와 ‘구르다’를 함께 보탠 뜻으로 쓰는 낱말이다. 이처럼 ‘넘어지다’와 함께 동아리를 이루고 있는 다섯 낱말은 모두 사람에게 쓰는 것이 제격이지만, 사람처럼 앞뒤를 가릴 수 있도록 서 있는 물건이면 아무것에나 두루 쓰인다.

 

이들 ‘넘어지다’ 무리와는 뜻이 아주 다른 낱말이지만, 요즘 들어 적잖이 헷갈려 쓰는 것에 ‘무너지다’도 있다. ‘무너지다’가 ‘넘어지다’와 뒤섞이고 헷갈리는 빌미는, 땅에 붙어 하늘을 바라고 서 있는 것에게 일어나는 변고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고의 속내가 서로 아주 다르다.

 

‘엎어지다’, ‘자빠지다’, ‘쓰러지다’, ‘넘어지다’, ‘굼불어지다’는 모두 일으켜 세우면 거의 본디대로 돌아올 수가 있지만, ‘무너지다’는 물처럼 아래로 부서져 내리는 것을 뜻하므로 본디대로 일으켜 세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무너지다’는 다른 다섯 낱말과 뜻이 아주 남다른 낱말이고, 사람에게 쓰는 것이라기보다 사람이 공들여 만들어 세워 놓은 것에게 쓰는 낱말이다. ‘무너지다’를 사람에게 쓰는 수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빗대어 쓰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