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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백로 배설물이 나무를 죽이는 것은 아니다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0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백로(白鷺)는 왜가리과에 속하는 흰새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백로에 속하는 조류는 지구상에 12종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5종이 있다. 가장 흔한 백로가 중대백로이고 다음으로는 중백로가 많다. 노랑부리백로, 쇠백로, 대백로가 모두 백로에 속한다. 백로는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로 상징된다. 따라서 시문에 많이 등장하며, 화조화(花鳥畵)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백로와 비슷한 흰새로서 두루미가 있다. 두루미는 두루미과의 새로서 왜가리과인 백로와 과(科)가 다르다. 두루미가 백로와 다른 점은 머리끝이 붉다는 점이다. 두루미는 머리끝이 붉어서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부른다. 두루미의 영어 이름은 red-crowned crane이다.

 

 

두루미와 학(鶴)은 같은 새의 다른 이름인데 두루미는 우리말이고 학은 한자일 뿐이다. 학은 수명이 길어서 십장생(十長生)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장수의 대명사인 학은 천 년을 산다고 하지만 과장이라고 하며, 실제로는 86살까지 산 두루미가 있었다고 한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은 지금은 세상을 뜬 작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에서는 비상학(飛上鶴)이 나온다. 비상학을 천년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제목을 붙였다.

 

백로는 여름 철새다. 여름에 한반도에서 살다가 겨울에는 더운 남쪽 나라로 이동한다. 반면에 두루미는 겨울 철새이다. 여름에는 시베리아 등의 북쪽에서 지내다가 겨울에 한반도로 날아온다. 그런데 조류학자에게 들어보니, 지구온난화 때문에 겨울에도 남쪽으로 날아가지 않는 백로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철새인 백로가 텃새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오래전부터 백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새로서 시조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백로를 주제로 한 시조를 소개한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조선의 개국공신 이직(李稷)이 지었다. 여기서 까마귀는 조선 건국에 참여한 신하를, 백로는 고려를 지키는 신하를 말한다. 새 나라를 세워서 나라를 바르게 하려는 까마귀가 고려를 지키는 척하며 임금을 마음대로 하고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백로를 비판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 묻히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 시조는 어지러운 광해군 시절 이시(李蒔)가 동생이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만류하기 위해서 지은 시조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먹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나쁜 행동에 물들게 된다는 뜻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시조이다.

 

이러한 백로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2024년 2월 28일자 《한겨레21》에 실렸다.

 

2024년 2월15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주산2리 중방마을 뒷산에 올 들어 처음 백로가 나타났다. 마을회관에서 불과 20m 떨어진 이곳은 백로의 집단 서식지이다. 매년 봄이 되면 중국 남부와 베트남 등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난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류 100여 마리가 이곳으로 날아든다.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기른 후 가을에 다시 먼 비행을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는 크게 학마을이라고 쓴 표지석도 있다. 40여 가구가 사는 중방마을에 20여 년 전부터 ‘학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가운데 줄임)

 

 

백로들은 초기에는 환영을 받았다. “백로가 드는 마을은 부자가 된다”라는 전설이 있어 마을 주민들도 이 일대를 성스럽게 보고 있다. 서식지를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등 마을 사람들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10여 년 만에 백로는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백로 배설물에 의해) 수십 년 된 나무가 썩어 넘어갈 지경이다. 봄이 되면 새들 소리에 잠을 못 잔다.”(주산리 이장 ㄴ씨, <강원일보> 2016년 2월15일 자 보도)

 

그러니까 백로가 마을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백로 배설물이 나무를 죽인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백로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것이다.

 

백로 배설물은 나무를 죽이는가? 이승현 숲 해설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백로류 배설물의 요산 성분이 나무 생장에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갑자기 고사시킬 정도는 아니다. 죽는 나무가 일부 생겨도 갑자기 기하급수로 죽는 것도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몇 그루가 고사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백로 배설물이 나무를 집단으로 죽인다는 것은 과장되었다는 얘기다.

 

백로를 ‘애물단지’로 보고 나무를 고사시킨 범인으로 몰아세운 뒤, 나무를 베는 방식으로 백로의 서식지를 없애는 일은 201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기 고양, 성남, 충북 청주, 인천, 대전 등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백로가 살던 숲의 나무를 베어내면 백로들은 어디로 갈까?

 

대전의 카이스트(KAIST) 내 어은동산에서 2001년에 백로 800여 마리가 확인되어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10년여 만에 교내 여론은 돌아섰다. 소음과 악취 등으로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했고, 2013년 간벌작업이 이뤄졌다. 백로들은 인근 유성구 궁동공원(2013년), 서구 남선공원(2014년), 서구 내동초등학교(2015년) 등에서 번식하다가 2016년 다시 카이스트 북쪽 기숙사 뒤편 숲으로 돌아왔다.

 

백로가 다시 돌아오자, 대전발전연구원은 백로 연구를 했다. 백로 10 마리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백로는 매일 5~32㎞를 날아다니며 먹이활동을 한다. 겨울이 오면 전라북도 새만금을 거쳐 4,675㎞ 떨어진 중국 당양 등으로 날아간다는 걸 확인했다. 봄철 소음은 알에서 깬 새끼들이 먹이를 요구하는 소리인 것도 확인했다.

 

백로가 사는 숲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사람이 사는 아파트를 만들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백로가 사는 숲의 주인은 누구일까? 한반도에 인간이 정착하기 훨씬 전부터 백로는 숲에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숲에서 백로를 쫓아낼 것이 아니라 사람과 공생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백로의 집단 서식지를 정부가 매입하여 조류보호구역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엉뚱한 상상 하나: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백로에게는 희소식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