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0 (토)

  • 흐림동두천 25.1℃
  • 구름많음강릉 27.5℃
  • 흐림서울 26.7℃
  • 흐림대전 28.1℃
  • 맑음대구 28.5℃
  • 맑음울산 28.2℃
  • 흐림광주 27.8℃
  • 맑음부산 27.2℃
  • 구름많음고창 28.1℃
  • 구름많음제주 30.6℃
  • 흐림강화 26.1℃
  • 구름많음보은 27.7℃
  • 구름많음금산 27.7℃
  • 구름많음강진군 28.0℃
  • 맑음경주시 27.3℃
  • 맑음거제 27.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일본 최고의 문인으로 뽑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이윤옥의 일본어 서재> 3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나는 배고픔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니, 그것은 자신이 의식주에 곤란을 겪지 않는 집에서 자랐다는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 ‘배고픔’ 이라고 하는 감각이란 무엇인가하는 궁금증에서 하는 말이다. 조금 이상한 말투지만 나는 배가 고파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초, 중학교 다닐 때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식구들이 달라붙어서 카스테라도 있고 빵도 있어.. 하고 떠들어댔기 때문에 나는 학습된 정신을 발휘해서 ‘배가 고프다’라고 중얼거리며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식사 시간이었다. 내 시골집에서는 열 명 정도의 식구가 각자 밥상을 받아 들고 두 줄로 마주보며 밥을 먹었다. 나는 막내라 가장 아랫자리에 앉아서 먹었지만 밥 먹는 방은 어둑어둑했고 그저 식구들이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밥을 먹는 모습에 나는 항상 썰렁한 생각을 하곤 했다.”

 

이는 다자이 오사무(太宰治1909-1948)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인간실격(人間失格)》에 나오는 글이다. 지금도 시골로 여길 만큼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아오모리, 그곳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술, 담배, 매춘, 좌익사상 등에 빠져 점차 타락의 길을 걷는다. 자살 시도만 다섯 번, 결국 그는 서른아홉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인간실격》은 자전적 소설로 그 배경에는 엄격한 가부장적 환경에서 자라면서 길들여진 고독과 소외감이 크게 작용했다고들 평한다. 대지주이자 중의원의원 집안의 7남 4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할아버지대부터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의 내력 속에서 늘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엄마 밑에서 유모 손에 성장했다.

 

다자이는 가나키 제일심상소학교와 아오모리 중학교, 히로사키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로 진출하여 도쿄제국대학 불어불문과에 입학한다. 부르조아 집안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모르던 그에게 수도 도쿄에서 펼쳐지던 프로레타리아 사상은 그에게 신선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시골집에서 보내온 돈의 출처가 고리대금업자이던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란 죄책감은 도쿄 유학 시절 내내 그를 괴롭혔다. 거기서 자전적 이야기인 《인간실격》이 탄생한다.

 

50엔!

 

한 뼘 크기의 신조사(新朝社) 문고판인 이 책을 산 것은 와세다대학에 방문학자로 갔던 1990년 말이었다. 와세다대학 캠퍼스에서 숙소인 오오츠카역으로 가려면 다카다노바바역으로 가야한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한 20분 이상은 걸어야 하는 도로가에는 헌책방가게가 줄지어져 있다. 나는 이 길을 즐겨 걸었다.

 

20분 정도면 역전에 도착할 거리지만 나는 헌책방 구경을 하느라 날마다 2시간 이상 이 거리에서 헌책 사냥에 공을 들였다. 서울에서는 시간에 쫓겨 일본 문학서적 한 권을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던 그 시절, 10엔, 20엔, 50엔 정도의 값으로 사들인 일본책들로 내 방은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말하자면 나의 일본문학 서적 탐독의 시작은 40이 되어서야 본격화 된 셈이다.

 

“나는 식사 시간을 두려워하면서, 그 어두침침한 방의 말석에 앉아 추위에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입에 밥을 소량씩 날라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왜 하루에 세 번씩 밥을 먹는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모두 엄숙한 얼굴로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식구들 틈에서 먹기 싫은 밥을 고개를 숙이고 먹어야했다.”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답지 않게(?) 다자이 오사무가 여린 감수성을 지닌 성격의 소년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누린 그의 아버지도 7남 4녀의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웠을지 모른다. 어쨌든, 다자이 오사무는 그런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아사히신문가 뽑은 <지난 1천 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이라 평가받는 10명 가운데 7위를 차지한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을 그가 자살하는 해였던 1948년 3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3일 후인 5월 12일 탈고한다. 그로부터 1달 뒤인 6월 13일, 그는 다섯 번째 애인 야마자키 도모코와 함께 다마카와강에 뛰어들어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39살 때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가운데 《인간실격》 , 《사양》, 《달려라메로스》, 《도쿄 팔경》 등은 우리말 번역본으로 나와 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人間失格)》1952년 초판, 1976년 67쇄본을 50엔에 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