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는 대형 육식공룡이 짝짓기를 위해 구애행위를 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화석을 미국 콜로라도주의 백악기 지층에서 세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미국 콜로라도대학교가 우리나라 남해안 공룡화석산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 비교연구로 시행한 공동학술조사(2011~14년)의 최종 결과물이다.
육식공룡의 구애행위 화석은 약 1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서부 2곳, 동부 1곳에서 최소 50개 이상 확인된 이 화석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대형 육식공룡 수컷의 구체적인 구애행위의 방식과 장소를 제시하고 있으며, 암컷 공룡들이 수컷들의 구애행위를 통해 상대를 선택하는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을 보여주는 실증적 근거이다.
▲ 중생대 수컷 육식공룡들의 짝짓기를 위한 구애행위 복원 모습
이번 연구결과는 거대 몸집을 가진 육식공룡의 구애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세계 최초로 제시한 획기적인 성과로, 국제 저명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7일 자로 발표되었다.
논문이 게재된 Scientific Reports는 “Nature”의 자매지로서, 자연과학 전반과 임상과학을 아우르는 잡지다. Nature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한다면, Scientific Reports는 보다 광범위한 전공분야와 관련 분야의 학자들은 물론 과학애호가들과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이 있을 만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며, 관련 분야에 큰 전환점이나 기념비적인 과학적 사실을 규명한 논문들을 주로 싣는다.
* 논문명: 육식공룡의 구애행동 - 백악기 공룡들에 의해 만들어진 대규모의 과시행동 장소의 발견과 조류처럼 땅을 긁는 특별한 행동(Theropod courtship - large scale physical evidence of display arenas and avian-like scrape ceremony behaviour by Cretaceous dinosaurs)
구애행동이 남긴 공룡화석은 크게 골격화석과 흔적화석으로 나뉜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공룡의 이빨이나 뼈가 모두 골격화석이며, 이를 통해 공룡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정확한 생김새를 알 수 있고 그 공룡의 크기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골격화석을 통해서는 해당 공룡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흔적화석(trace fossils)은 공룡이 살면서 남긴 모든 흔적들이 화석이 된 것으로, 공룡의 발자국, 공룡의 알, 공룡의 배설물, 공룡이 삼킨 위석, 그리고 피부흔적, 땅굴을 파서 남겨진 서식지의 흔적까지 포함된다.
흔적화석을 통해서는 공룡이 어떤 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먹이를 먹었고,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등 여러 행동학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곧 공룡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구애행위가 남겨진 장소가 화석이 되었다는 것은 발로 땅을 파던 흔적이 남겨진 것으로, 흔적화석에 해당한다.
▲ <1억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육식공룡 구애행위 화석
이번 연구 결과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수컷 육식공룡들이 짝짓기 시기에 짝짓기 상대로 선택받기 위하여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구애행동을 했다는 첫 증거이고, 구애 행동을 한 흔적 화석들이 대단위 장소로 발견된 사례로 최초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공룡 흔적화석이 공룡뼈화석이 알려주지 못하는 새로운 과학적 정보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룡 흔적화석의 중요성을 확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수많은 공룡의 발자국과 알둥지화석들이 발견되고 있고, 공룡이 살던 시기에 함께 살았던 익룡과 새의 발자국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는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남해안 화석산지에서 공룡의 발자국 이외에 다른 여러 종류의 공룡이 남긴 행동의 증거들이 새롭게 발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뛰어난 보편적 가치(OUV)"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진(왼쪽에서 3~5번째)이 화석을 발굴하는 모습
연구를 수행한 국제공동탐사대는 한국과 미국 연구진을 중심으로, 캐나다·중국·폴란드 연구자들로 구성되었으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화석의 최초 발견, 분석 연구, 3차원(3D) 사진측량, 국제비교연구 등 연구 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현장 발굴조사는 미국 국토관리부(Bureau of Land Management)의 조사·발굴허가 승인을 얻어 진행되었다.
이번 연구는 앞으로 우리나라 공룡화석 관련 분야의 연구 역량과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화석산지의 학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 해석이 어려웠던 공룡의 습성과 행동학적 특징을 규명할 수 있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지정·관리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공룡화석산지는 경남 고성·진주·사천·남해, 전남 화순·보성, 전북 군산, 경기 화성 등 모두 16곳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룡·익룡의 발자국을 비롯하여 공룡의 알둥지와 피부 흔적, 새발자국, 공룡·익룡의 뼈와 이빨 등 수많은 화석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로운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