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는 걸인에게 천사였고, 걸인은 창녀에게 천사였다

2016.02.18 10:39:31

[최운선 교수의 행복메시지 10]

[우리문화신문=최운선 교수]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1821-1881)가 쓴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생각해 낸 사상에 따라 인간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세상의 모든 법률과 제도, 또는 도덕에 따라 행동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켜야 할 세상의 규범을 간혹 무시하고 스스로 정치가라고 나서 행동하는 영웅심리의 초인들이다.

그런데 영웅심리의 초인사상을 품고 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사회의 쓰레기 같은 전당포 노파를 없애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영웅심리의 초인 사상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그는 노파를 살해하고 난 후, 자신이 과연 초인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의구심을 갖는다. 결국 그는 자신이 초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깨닫게 된 계기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소냐에 의해 인간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고서 부터이다. 희망을 갖게 된 까닭은 ‘어떻게 소냐와 같은 연약한 소녀가 창녀가 되어, 비참함과 고난의 생활을 하루하루 영위하면서도 그토록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는 참다운 모습 일 것이다. 그런데 초인사상에 매몰된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황폐해진 정신의 소유자가 가냘픈 소녀 앞에 속죄하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한 번도 초인이 되려 하지 않았던 소냐의 인간적 아름다움이 초인이 되려 했던 라스콜리니코프의 그 어떠한 정신보다도 위대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뇌를 통한 영혼의 정화(淨化)와 눈물겨운 참회가 없었다면 ‘죄와 벌’은 정말 한 젊은이의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메말라 가는 요즘 현실에서 진정으로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유는 영혼의 정화와 참회일 것이다. 다음은 어느 걸인과 창녀의 이야기이다.

삼십여 년을 길에서 구걸하며 살아온 걸인총각은 어린 시절 집에서 내쫒긴 선천성 뇌성마비 환자이다. 그는 정확히 듣고 생각하긴 해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구걸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걸인청년이 번화가 길목에 앉아 하루 종일 동냥 받는 것이 무려 4-5만원이라 해도 그의 허기진 배를 채울 길은 없었다. 그 까닭은 음식점 문안으로 걸인청년이 들어서기 전에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가 구걸이 아닌 당당한 손님으로 돈을 지불한다 해도 모든 식당들은 그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걸인총각은 온 몸이 떨리고 몸이 뒤틀려, 수저로 밥을 먹는다 해도 입에 들어가는 밥알보다 흘리는 밥알이 더 많아 주위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영업에 지장을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해 그는 항상 서럽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기적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성경 한 권을 다 외우며 30년 간 교회 주변을 맴돌며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아왔다. 그렇게까지 진실하고 두터운 신앙심으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걸인의 육체적 허기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장가드는 일이란 더욱 상상조차 못해 볼 일이었다. 그토록 자신을 향해 문을 꼭꼭 걸어 닫은 매정한 사회, 그래서 그가 찾아갈 곳은 오직 창녀촌뿐이었다. 그 까닭은 걸인이 혼자 생각하기를 “내가 돈을 내놓으면 음식점처럼 나를 문전박대하진 않겠지,”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는 창녀촌에 와서 어울리지도 않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주문 한 가지를 더 했다. 먹여달라고……. 그런데 이 걸인의 이야기를 듣고 ‘돈이면 독한 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어느 한 창녀가 밥 한상을 차려왔다. 그리고 먹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인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나를 내쫓지 않고 이렇게까지 영접해 준 저 여인이야말로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걸인은 말했다.

 

“다... 당시인이 바... 바로 처... 천사야...” 그 말을 듣고 창녀는 깜짝 놀랐다.

 

   
▲ 걸인은 밥을 먹여주는 창녀에게 천사라 했고, 창녀는 그런 걸인에게 "그런 당신이야말로 천사다"라고 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뭇 남성의 천대와 사회의 냉대만을 받던 내가 천사라니!’ 그런데 걸인은 ‘당신이 바로 천사라고’ 우긴 것이다. 창녀로서는 일생 처음 듣는 이 고상한 말에 그만 감격했다. 그 감격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창녀를 천사라고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정말 천사에요...” 둘은 서로 참회와 진실의 고백을 했다.

“나의 천사...” 그 후 두 사람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4백여 명의 축하객들의 눈물과 축복 속에서.. 그들은 지금 장사를 하고 있다.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고도 매일 밥을 먹여주는 아내가 있어 걸인은 이 세상은 에덴동산이라 찬양한다. 또한 온갖 수모를 당하지 않고도, 살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 여인은 이제 남성들을 저주하지 않고 진심으로 남성을 사랑할 수 있어서 매일 축제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들을 그토록 새롭게 탄생시킨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걸인을 구한 것은 사회복지 정책도 아니요, 자선도 아니요, 교회도 아니었다. 바로 창녀였다. 그리고 창녀를 구한 것은 윤락방지법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영웅심리의 정치가도 아니었다. 바로 걸인이었다. - 나눔터에서 빌려온 글 -

그렇다. 눈물겨운 영혼의 정화와 참회.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창녀의 길을 선택해야 했던 한 여인과 그러한 여인을 이해하고 배려를 해 주어 삶의 희망을 준 걸인. 우리사회는 지금도 돈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음지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무조건 법적으로만 처벌하고 있다. 걸인과 창녀의 이야기는 인정이 메말라가는 현실에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간다운 이야기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작품의 진가를 더해 가는 문제작인데, 그 이유는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성찰해 볼 것은 초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시켜도 죄가 되지 않으며, 더욱이 초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목표인 인류를 위한 일에서는 얼마든지 평범한 사람들을 짓밟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초인이기 때문에 수없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 속으로 몰아넣어 희생시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도 범죄자로 지목되어 형벌을 받아야 하고, 작은 도둑질이라도 벌을 엄하게 받아야 한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를 흘리게 하고도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영웅심리의 초인들이야말로 정말, 사회적 모순이 아닐까 한다.

이제 선거철이다. 요즈음과 같은 선거철에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영웅심리의 국회의원 출마자들은 이제부터라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초인사상인 영웅심리에서 벗어나 낮은 곳에서, 음지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고뇌를 통한 영혼의 정화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최운선 교수 woodheave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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