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만으로 3박4일을 견디다

2016.07.16 13:20:05

퀸스타운에서 테 아나우까지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과 쿡 산 등반 2]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마음껏 잤다. 일어나 보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창 너머로 패러글라이더가 보인다. 베란다에 나가 보니 어제 케이블카 타고 오른 산 정상에서 출발한 패러글라이더가 여러 대 날라 다니고 있었다. 땅에서 사는 우리는 땅 위에서도 할 것이 많은 데 굳이 하늘과 물속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나는 무섭기도 하지만 하늘을 날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활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것은 좋아한다.



멋진 경치를 보여주는 퀸스타운 고갯길


오늘 할 일은 퀸스타운 고개 산책길(Queenstown Hill Walkway)를 걷는 것이다. 돈 드는 활동은 나도 아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걷는 것 외엔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도를 보니 그 언덕은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체크아웃이 11시라 짐을 숙소 로비에 맡기고 길을 떠났다. 길을 따라 30분 남짓 걸으니 입구가 나온다. 길은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오르면서 호수의 경치를 보니 어제 케이블 카 타고 올라가서 본 경치보다 훨씬 근사하다.


그러나 이것도 정상에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날씨는 매우 맑아 산 아래 모든 전경이 매우 잘 보인다. 높디높으면서 경사도 매우 급한 산 아래에 짙은 청색의 물이 잠겨 있는 호수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심까지 너무 잘 어울리는 여러 폭의 그림이 전개된다. 감탄 외에의 말은 차라리 아름다움을 해치는 것 같다. 산책로의 전체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내려오니 두 시가 되었다.





마을을 둘러싼 호수와 산


퀸스타운은 근처 애로우 타운에서 1860년대에 금광이 발견되면서 형성되어진 도시이다. 인구는 19,000여 명이며 해발고도 300미터 정도에 위치하고 와카티푸 호숫가에 있다. 이 호수는 가장 깊은 곳의 깊이가 무려 380여 미터나 된다.


버스 터미널이 따로 없다


착해 보이는 말레이시아 사람인 매니저의 친절을 뒤로 하고 다음 숙소로 갔다. 미리 예약을 했지만 이틀 계속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없어 하루씩 예약을 해야 했다. 첫 날은 예약할 수 있는 호텔이 이 호텔뿐이라 숙박비가 너무 비싸도 예약했지만 두 째 날은 다른 싼 곳이 있었다. 그 곳은 백패커스라는 곳이다. 시설은 모텔이나 호텔처럼 좋지는 않지만 저렴하여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많이 이용한다.


두 번째 밤을 보낼 숙소(Absoloot Accomodation)는 시내에 인접한 호숫가에 있어 최고의 위치였다. 우리가 묵은 2인실은 창밖으로 케이블 카가 오르내리는 산이 보이고 아담했다. 가격은 어제 방의 1/4 정도인 8만원으로 만족도는 가격 대비 어제의 그 숙소보다 이 방이 훨씬 낫다.


세 시간이나 걸은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우선 잠을 청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일요일인지라 토요일 저녁보다는 좀 한산했다. 내일은 테 아나우(Te Anau)로 가야 해서 미리 어디서 타는지 확인했다. 이곳엔 따로 버스 터미날이 없다. 심지어는 버스표를 파는 곳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어제 묵은 숙소에서 매니저에게 물어 그가 인터넷으로 예약을 대신 해주었다. 가격도 버스 회사마다 달랐다. 우린 10시 45분에 출발하는 제일 비싼 45달러짜리 표를 예약했다. 빈자리가 다섯 자리뿐이었다.


나흘 내내 비를 예보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시 호수주변을 산책하다 진풍경을 목격했다. 두 마리의 검은 개가 주인이 들어간 가게 밖에서 완전 부동자세로 나란히 꼼짝 않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훈련을 저리 잘 시켜놓았는지 놀라운 한편 그 훈련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저 개가 사람이라면 바람직한 일일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퀸스타운에서 아름다운 추억만 갖고 테 아나우로 떠났다. 버스는 23인승으로 제 시간에 왔다. 빈 자리가 서너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예약한 이후로 아무도 안 한 것 같다. 버스기사가 친절하기도 하다. 버스 뒤에는 짐을 싣는 트레일러를 달고 있어 배낭은 모두 트레일러에 실었다.



짐만 따로 싣는 트레일러를 달고 있다


버스는 11시에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또 손님을 태웠다.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한참을 가더니 호수는 사라지고 멀리 높은 산과 가까이 구릉이 보이며 곳곳에 소와 양이 풀을 뜯고 있다. 여기 가축들을 보면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공장에서 생명체를 마구잡이로 찍어내다시피 하는 그러한 취급을 받고 있지 않다. 이 넓은 들판 위에 많지 않은 수가 있으니 서로 경쟁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경쟁만 하는 사회는 차라리 없는 것보다 못하다. 경쟁이 중요하긴 하지만 상부상조 하지 않는 경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킬 뿐이다. 차라리 경쟁이 없어 좀 부족하더라도 천천히 사는 것이 물자가 풍부한 곳에 살면서 시간의 여유도 없고 빈곤을 느끼며 사는 것보다 좋지 않은가?


1시 반쯤 되어 테 아나우의 트래킹 안내센터에 도착했다. 비가 온다. 버스는 모든 승객을 각자의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준다. 킹스게이트 호텔(Kingsgate Hotel)에 짐을 풀었다. 늦게 예약을 해서인지 이곳 역시 싼 곳을 찾을 수 없어 이 호텔을 예약했다. 하룻밤에 17만원인 만큼 시설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안내센터에 가니 트래킹 하는 내내 비가 온다고 일러준다. 그것도 강한 비(heavy rain)라고. 기상예보가 그렇게 나왔다고 한다. 맥이 빠진다. 예전 루트번 트랙을 걸을 때도 매일같이 비가 왔는데, 또 비야? 할 수 없지. 비에 철저히 대비할 수밖에.


배보다 더 큰 배꼽! 옷값의 두 배를 들여 수선하다



만일에 대비해 가져온 1회용 우비를 점검해 보았더니 한 귀퉁이가 찢어져 있었다. 그것을 붙이려고 테이프를 사려 했는데 테이프 값이 5달러이다. 즉 4천 원 정도로 우비 값 2천 원의 두 배나 된다. 찢어진 곳 수선하고자 구입한 비용의 두 배를 들여 수선하다니! 배보다 배꼽이 이렇게 커도 되나? 하지만 그렇게 했다. 아내의 옷이 방수에 부실해서 방수되는 옷을 샀다. 비는 줄기차게 온다.


산에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선 사 먹을 수 없다. 3박 4일간 아홉 끼 될 식량을 모두 준비해 가야 한다. 그래서 필히 무게와 부피가 작은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주식은 모두 한국에서 컵라면이나 컵밥 등 가공식품만 준비했고 여기서 마른 과일을 조금 샀다.



이규봉 교수 gblee@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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