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연세대학의료원(세브란스 병원) 본관 1층 미술관 <세브란스 아트 스페이스>에서는 한국의 의학과 고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한 올리버 알 에비슨(1860~1956) 서거 6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의사 에비슨은 누구인가? 에비슨은 1893년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 선교사로 한국으로 건너와 1935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40여 년 동안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통해 한국의 의학과 고등교육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의사이다.
에비슨이 한국에 건너오기 9년 전인 1884년 조선에는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설립되었다. 제중원의 설립 계기는 1884년 12월 4일 미국의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1858~1932)이 갑신정변 때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고 있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하여 생명을 구했는데 이를 계기로 고종의 시의(侍醫)가 되었고 알렌의 건의로 조선에는 1885년 4월 10일 재동(현재 헌법재판소)에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후 1886년 3월 29일, 제중원의학교를 열어 최초의 서양의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1893년 한국에 들어온 에비슨은 처음에는 제중원을 맡아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러다가 그는 좀 더 규모가 큰 병원을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하던 중에 ‘세브란스’라는 강철회사 사장을 만나 그의 기부금으로 1904년 남대문 밖 복숭아골에 병원을 세운 것이 오늘의 세브란스병원이다.
에비슨은 한국의 위생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의사와 간호사의 양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1899년 제중원의학교를 개설했다. 이 학교는 처음에 지원자들이 별로 없고 가르칠만한 적당한 한글교재가 없어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에비슨은 김필순과 함께 해부학서적을 번역하는 등 의학 발전에 온 힘을 기울였다.
또한 한국인 교수 가운데는 박서양도 있었는데, 박서양은 에비슨 선교사의 치료로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백정과 천민에게 복음을 전했던 백정 박성춘의 아들이다. 에비슨은 이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의학발전에 열정을 쏟은 뒤 병원장을 그만두면서 다른 선교사들의 거센 반발에도 한국사람 오긍선을 자신의 후임으로 뽑았다. 그리고 자신은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1935년 12월 2일 귀국길에 오른다.
이에 앞서 에비슨은 언더우드의 뒤를 이어서 조선기독교대학(현 연세대학교)의 교장으로 1916년부터 18년을 일하기도 했다. 33세 때 한국에 들어온 에비슨은 42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다가 1935년 은퇴 후 귀국했으며 1956년 플로리다주에서 9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귀국하기 전 1928년 3월, 세브란스 구내에는 에비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동상이 건립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헌납된 뒤 1966년 6월 다시 동상을 세웠다. 에비슨이 한국 의학 발전에 쏟은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해마다 에비슨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으며, 2013년에는 에비슨을 기리기 위해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올해는 ‘에비슨 서거 60주년’을 맞아 기념전시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