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한 상강

2016.10.23 11:28:09

[한국문화 재발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霜降)”이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르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 단풍은 하나둘 떨어져 지고 나무들은 헐벗어 간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이다. 상강이야말로 가을 절기는 끝나고 겨울로 들어서기 직전이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다. 또 이때부터는 슬슬 겨우살이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식물, 植物)들은 자람을 멈춘다.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로 들어가는데 들판과 뫼()는 깊어진 가을을 실감케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殘柳溪邊凋病葉 露叢籬下燦寒英 却愁老圃秋歸盡 時向西風洗破).” 위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권문해(權文海, 1534 ~ 1591)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글인데 상강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있다.

 

세종실록22(1440) 613일 기록에 보면 봄의 경칩과 가을의 상강에는 둑제(纛祭)”를 지낸다는 말이 나온다. 둑제란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軍令權)을 상징하는 둑() 곧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는 군기(軍旗)에 병조판서가 주관하여 지내는 나라의 제사다. 이 제사는 유일하게 무관들이 주관하여 지내는 제사로 문신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상강 즈음엔 삭막한 서릿발의 차가운 세상이다. 하지만 국화 뿐 아니라 모과도 상강이 지나 서리를 맞아야 향이 더 진하다. 꽃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향기는 느끼는 자의 몫이며, 상강을 맞아 그 진한 국화 향을 맡을 수 있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감국(甘菊)'이라고 불리는 노란 국화로 만든 국화차는 지방간 예방에 좋은 콜린, 대사에 필요한 에너지로 쓰이는 아데닌이 풍부하여 이때 마시면 좋을 일이다. 또 상강 무렵엔 비타민CA, 탄닌, 칼륨과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고혈압 예방에 좋은 감을 먹어 좋을 때이고, 그밖에 상강 즈음 먹어서 좋을 먹거리엔 살이 쪄 통통한 게도 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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