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2026년 2월 26일(목) 새롭게 단장한 서화실의 문을 연다. 새 서화실은 전시 구성과 운영, 공간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철마다 백미를 뽑아 교과서에 수록된 익숙한 명품을 상설전시로 공개하는 한편, 대표 서화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주제전시를 열어 계절마다 관람객들이 다시 찾는 서화실로 변모할 계획이다. 재개관 첫 전시에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신묘년풍악도첩>(보물)을 비롯해 보물 10건을 포함한 70건의 전시품이 선보인다.

새로운 전시 구성
서화는 옛 글씨와 그림을 일컫는 말로, 종이와 붓, 먹이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탄생한 예술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글씨와 그림의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書畫同源)’이라는 인식이 이어져 왔다. 새로 단장한 서화실은 도입부에서부터 ‘글씨와 그림이 하나’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에 보이는 거친 붓질을 크게 확대한 표제 벽은 관람객이 글씨와 그림의 경계에서 서화의 의미를 사유하도록 이끈다.
전시실은 서화 1~4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화 1실은 서예, 서화 2~4실은 회화 전시로 구성하였다. 서화 1실에서는 이전보다 서예 작품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전시하여 우리 서예의 정수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현대인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는 서예 문화를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명필과 누구나 아는 역사적 인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글씨는 곧 그 사람(書如其人)’이라는 전통적 인식 속에서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1418~1453),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 추사 김정희,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글씨에서 필획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글씨를 쓴 사람의 인품과 정신을 함께 느껴보길 권한다.

서화 2~4실의 회화 전시도 새롭게 구성하였다. 기존의 시대와 장르 구분을 넘어 ‘감상’과 ‘실용’이라는 그림의 기능적 성격에도 주목하였다. 순수 감상을 위한 회화와 궁중장식화, 기록화와 초상화 등 제작 목적에 따라 작품을 구분함으로써 조선 회화의 다양한 층위를 제시하고자 했다. 매화의 정취를 담은 전(傳) 신잠(申潛, 1491~1554)의 〈탐매도〉와 김명국(金明國, 1600~?)의 〈달마도〉, 조선시대 초상화를 대표하는 이명기(李命耆, 1756~1813 이전)의 〈서직수상〉(보물), 궁중장식화〈일월오봉도〉와 〈모란도>는 우리 그림의 깊이와 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옛 시와 비평문을 병치하여, 동시대 사람들의 열렬한 서화 애호와 작가의 인간적 면모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철 백미와 주제전시: 계절마다 다시 찾는 서화실
새롭게 달라진 서화실은 ‘N차 관람’이 필수다. 1년에 3~4회 이루어지는 교체전시마다 반드시 봐야 할 서화 작품 2~3점을 뽑아 “시즌 하이라이트(철 백미)”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이를 통해 교과서에 수록된 익숙한 작품과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또한, 주제전시도 강화하여 서화 3실에서 교체전시마다 새로운 주제전시를 선보인다. 올해는 재개관을 기념하여 주요 작가와 시대를 조명하는 4번의 주제전시를 개최한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아! 우리 강산이여!”(2.26.~4.26.)을 시작으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5.4.~8.2.),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8.10.~11.29.), “조선 모더니즘: 조선 말기의 회화”(12.7.~’27.2.28.)가 이어진다.
첫 주제전시인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는 겸재 정선(1676~1759) 탄신 350돌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진경산수의 시작을 알리는 초기의 기념비적 작품인 <신묘년풍악도첩〉(보물)과 노년의 걸작인 〈박연폭포〉(개인소장)를 철 백미로 소개한다. 또한, 정선의 오랜 벗이자 한국적 인물화와 풍속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 1687~1761)의 대표작 〈설중방우도〉(개인소장)도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박물관은 앞으로도 타 기관이나 개인 소장품도 초청 전시하여, 평소에 쉽게 만나기 어려웠던 명품을 지속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서화의 미감을 재해석한 전시 디자인
전시 공간은 전체적으로 단아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도록 연출하였다. 짙은 먹빛과 하얀 종이의 색감을 공간의 기본 색조로 삼아, 수묵의 농담이 스며드는 듯한 분위기가 전시장 곳곳에 배어있다. 전통 한지와 직물의 질감을 살린 재료는 작품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호흡하도록 설계되어, 절제된 색채 속에서 서화의 고요한 미감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기술과 현대적 감각을 접목한 연출 기법도 주목할 만하다. 문인의 이상적 공간을 형상화한 ‘서화가의 창(窓)’은 섬유공예가 임서윤 작가가 직물 작품을 설치하여, 정갈한 서안(書案)과 맑고 투명한 직물이 놓인 공간 속에서 글과 그림으로 자신을 수양하던 서화가의 일상과 정신세계를 시각화하였다. 이 밖에도 붓과 먹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자연의 숨결을 담은 장 줄리앙푸스(Jean Jullian-Pous)의 영상은 서화실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을 묵향이 감도는 시간으로 이끌 것이다. 또한 ‘포스코1%나눔재단’의 후원을 받아 최신 3D 적층 인쇄 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옛 비석의 벽’은 현대 기술로 옛 비석의 글씨를 재현하여 우리 옛 글씨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대한 풍경을 펼쳐 보인다.
모두가 함께하는 서화 감상
서화 감상은 기본적으로 시각적 경험이지만 새로운 서화실에서는 청각과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도 서화를 감상할 수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박물관”이라는 국립박물관의 지향점에 맞추어, 촉각과 청각을 결합한 다감각 체험 공간을 조성하였다. 박물관 소장의 주요 회화 작품을 촉각 교구재와 그림해설로 경험하고 감상에서 느낀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번 재개관과 연계한 특별 강연도 마련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서화실 재개관과 겸재 정선 탄신 350돌을 기려 “겸재 정선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3월 10일(화)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강연 참석은 박물관 누리집에서 3월 3일(화)부터 사전 신청을 받는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서화실에서 관람객들이 우리 서화의 값어치와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고, 국민이 사랑하는 서화 작품을 언제나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