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에서 ‘애국가’로

2017.10.25 11:34:29

[김연갑의 애국가를 찾아서 15]

[우리문화신문=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보전하세

 

이 후렴이 탄생 된지 120년이 되었다. 곧 오늘의 애국가 후렴이란 점에서 곧 애국가의 출현 120년을 맞은 것이다. 그런데 120년 전부터 현 애국가가 탄생하는 1907년까지는 무궁화가’, ‘무궁화노래’, ‘애국가로 그 이름을 달리하며 불렀다. 이 번 회에사는 이 무궁화가의 미디어상의 전승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무궁화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 지식인들은 계몽운동으로 국민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자주독립 국가로 가야함을 역설했다. 학교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언론도 이에 앞장섰다. 그래서 애국계몽 노래들을 발표하여 널리 보급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가운데 19071030일자 대한매일신보 잡보에 무궁화가라는 곡명의 4절 노래가 한글판과 국한문판에 동시에 게재되었다. 이 역시 이 신문의 자주독립을 각성시키기 위해 무궁화를 수록했다.

 

셩ᄌᆞ신손 오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슈려 동반도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대한으로 기리 보젼

. 츙군 일편단심 북악치 놉고  열심의긔 동치 깁헤

. 쳔만인 오ᄌᆞᆨ  나라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

.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국민동락 만만셰에 태평독립

(순한글판)

 

一 聖子神孫 五百年은 우리 皇室이요 山高水麗 東半島우리 本國일세

(후렴)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大韓으로 길이 保全

. 忠君一片丹心 北岳치놉고 愛國熱心義氣 東海티 기페

. 千萬人 오ᄌᆞᆨ 한마나라士農工商貴賤업시 職分만다

. 우리나라 우리皇室 皇天이 도으샤 國民同樂 萬萬歲泰平獨立

(국한문판)

 

한글판과 국한문판에 게재된 전 4절 가사는 앞에서 살핀 1899629일자 독립신문 잡보란 방학예식 기사에 수록된 것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무궁화 노래가 한자형 무궁화가로 바뀐 것이다.

 

2. 도산본 애국창가집 14

19991월 기증된 안창호 소장 자료 가운데 낙장 되어 표제와 핀권이 없어 간행년도를 알 수 없는 애국창가집 수록 가사이다. 부록의 내용 중 19047월 창간된 대한매일신보 시사평론같은 것이 수록되어 있어 1905년 또는 1906년에 발행 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최소한 1907년 이전에 발행되었고 본다. 왜냐하면 1907년 작사된 현 애국가가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렇게 추정한다. 여기에는 곡명을 십ᄉᆞ편 무궁화가로 되어 있다.

셩ᄌᆞ신손 五百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수려 동반도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아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대한으로 길이 보죤

.  열심의긔 북악갓치 놉고 츙군 일편단심 동치 깁헤

. 쳔만인오직 ᄆᆞᆷ 나라롱공상 귀쳔업시 직분만다

. 우리나라 우리황뎨 황텬이 도으샤 군민공락 만만셰에 태평독립

 

도산본 애국창가집이란 필자가 편의상 부여한 책명이다. 안칭호 소장 자료라는 점에서 이후 이 노래가 미주지역 주요 행사에서 애국가또는 무궁화가로 전승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의미 있는 자료로 보게 된다.

 

3. 공립신보(共立新報)애국가



 

1908311일자 공립신보에 순종 탄신을 기리는 건원절(建元節) 경축 기사에 앞에서 살펴온 같은 가사 4절이 수록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곡명이 애국가로 되어있다.

 

셩자신손 오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슈려 동반도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三千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젼

. 튱군 열셩의긔 북악갓치 놉고 애국 일편단심 갓치 깁허

. 쳔만인의 오직 맘 나라사랑야 사롱공샹 귀쳔업시 직분만 다

.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만민동락 만만셰에 태평독립

 

우선 곡명이 애국가라는 사실과 미주지역 매체에 나타난 현상이란 점이 주목된다. 이 현상은 1930년대 미주 지역 행사 식순에 애국가로 등장한다는 사실에서 이의 전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신문이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한 민족운동단체 공립협회(共立協會)의 기관지로 창간과 운영에 안창호가 관여한 사실도 의미 있다. 안창호는 현 애국가 작사자설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사 상에서는 일부 어사가 바뀌거나 변이 되었는데, ‘츙군 일편단심튱군 열셩의긔, ‘ 열심의긔애국 일편단심으로 바뀌었고, 4국민동락만민동락으로 변이 되었다. 노래에서, 특히 민요에서는 이런 정도의 변이는 소위 딸림형이라고 하여 새로운 가사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해외에서의 전이 현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승상의 변이 폭이라고 보게 된다.

 

4. 해조신문(海潮新聞) ‘애국가

해조신문 1908526일자에 국가란 곡명의 4절 가사가 게재되어 있다. 러시아 우리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신문에 수록된 것이니, 공립신보가 미주지역 상황을 알려준 것과 같이 러시아 우라디보스토크 교민사회의 애국가 상황인 것이다.

셩ᄌᆞ신숀 오년은 우리 황실이오 산고수려 동반도우리 본국일셰

(후렴) 무궁화 삼쳔리 화려강산 대한사대한으로 길이 보젼

. 츙군 열셩의긔 북악치 놉고  일편단심 동치 깁허

. 쳔만인의 오직 ᄆᆞᆷ 나라농공샹귀쳔업시 직분만다

. 우리나라 우리황실 황텬이 도으샤 만민공락 만만셰에 태평독립

 

이 해조신문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것으로 3개월간 간행되다 폐간 되었다. 그런데 이 신문의 편집진에는 미주 공립신문에서 파견된 이강(李剛)이 편집을 맡았다. 이를 통해 곡명을 애국가로 쓴 것을 공립신문과 같은 해외 전승 현상으로 보기 보다는 공립신보와 연관이 있다고 보게 된다.

 

이 자료는 이후 2~4절까지를 김인식(金仁湜) 작사로 표기한 1910년 발행 잡자 보중친목회보(普中親睦會報) 愛國歌 KOREA’로 발표하였다. 이후 이 잡지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되어 해외 기록에 그대로 전승된 경우가 확인 된다. 이어 19111013<안창호 환영식 절차 팜프렛>애국가 1, 신흥무관학교 교관 원병상(元秉常) 수기 신흥무관학교 에 학교에서 조회 때 애국가를 불렀다고 기록했다.

 

또한 19238월 조직된 참의부(參議府, 만주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조직한 항일 무장독립운동단체) 내에서도 애국가로 불렀다고 기록했다. 또한 19264월 중국 길림성 반석현(盤石縣)에 소재한 한족노동당 국어교과서에 일본어 번역 36 애국가로 수록되어 있다.

 

이상의 자료들에서는 1897813일자 영문판 독립신문 <Editorial Notes> 최초의 출현으로부터 작사자 윤치호 표기 없이 일부 술어 또는 어구가 변이 되어 전승되었다. 이는 노래의 확산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시대상황과 맥락적 편이에 의해 불렀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김연갑 아리랑학교 교장 art-arir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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