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직언하다 죽임을 당한 ‘홍귀달’

  • 등록 2018.01.29 23:22:17
크게보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4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세종대왕은 임금 자리에 있었던 30여 년 동안 신하들의 직언 구하기를 마치 목마른 것같이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언로를 열고 소통에 충실하였던 덕분에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는 칭송을 듣는 것이 아닐까요? 반면에 두 번의 사화로 피바람을 불게하고 최악의 폭정을 자행하다가 반정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연산군은 귀를 닫고 직언을 하는 신하는 기피했다고 하지요.

 

특히 대사성지중추부사대제학대사헌 등에 올랐던 홍귀달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하여연산군이 자못 싫어하였습니다. 홍귀달이 상소를 올리면서 조금도 숨김없이 궁중 비밀까지 캐내고 풍자하였으니 결국 연산군은 그를 경기감사로 내쫓았지요. 그뿐만 아니라 무오사화 직전 열 가지 폐단을 지적한 글을 올려 간하다가 사화가 일어나자 좌천되었습니다.


 

더더구나 연산군은 홍귀달의 손녀딸이 용모가 출중하다는 소문을 듣고 궁에 들이라고 하자 홍귀달은 이를 거역하여 결국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귀양 가게 됩니다. 이때 그는 내가 본래 함창 농사꾼에서 재상 지위에 올랐는데, 본래 내가 가졌던 것도 아니니 출세한 것도 아니요 실패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옛날로 되돌아 갈 뿐이니 무슨 원망이 있겠는가?”라면서 태연히 떠났는데 단천에 이르러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직언하는 신하를 곁에 두지 않은 연산군은 결국 쫓겨나고야 말았습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