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신을 만드는 장인 ‘화혜장(靴鞋匠)’

  • 등록 2018.03.18 22: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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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77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금이야 신을 만드는 장인을 보기 어렵고 거의 기성화를 신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조선시대만 해도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장인을 일러 토박이말로 갖바치라 했고 한자말로는 화혜장(靴鞋匠)’이라고 했지요. 화혜장은 목이 있는 신발 ()’를 만드는 화장(靴匠)’과 목이 없는 신발 ()’를 만드는 혜장(鞋匠)’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에 화장은 16, 혜장은 14명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하지만 가죽신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의 대부분을 서양 구두가 차지함에 따라 갖바치의 명맥도 거의 끊겼습니다. 그러나 전통신을 만드는 것은 가죽을 주재료로 하여 수십 번의 제작공정을 거쳐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완성되는 것이기에 문화재청은 전통신을 만드는 장인곧 화혜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하여 전승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의 종류로는 코와 뒤축 부분에 흰 줄무늬를 새긴 주로 남자들이 신던 태사혜(太史鞋), 여자신으로는 앞코에 구름무늬를 놓은 운혜(雲鞋), 코와 뒤꿈치에 당초무늬를 넣은 당혜(唐鞋)가 있으며, 검정빛 융으로 만든 흑혜(黑鞋) 따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른 땅에서는 이런 태사혜, 흑혜, 운혜, 당혜를 신었지만, 진땅에서는 물이 스며들지 않게 들기름에 절은 가죽으로 만든 진신을 신었지요. 한편, 궁궐에서 신었던 궁혜(宮鞋)와 사슴 가죽으로 만든 녹피혜(鹿皮鞋)는 아무나 신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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